교육·연구

번호 68
제목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008 5월 23 - 01:44 익명 사용자

평화와 음악 2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 중 가장 유명한 곡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평화의 사연을 찾아가 보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알함브라(원 발음으론 ‘알람브라’) 궁전의 역사의 뒤안길도 찾아가 보고 작곡가 타레가의 생애도 조금은 살펴야 할 것 같다.

 

 
 Alhambra


 

알함브라 궁전은 AD8세기경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살던 무어족 이슬람교도들이 13세기 스페인의 재정복 전쟁에 패해 남쪽 그라나다로 쫓겨가 살게 되면서 그 때부터 15세기 말까지 22대 술탄(이슬람 왕)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증축하여 성벽의 길이가 2km에 달하고 길이 740m, 폭 220m의 규모를 갖게 된 이슬람 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주는 애잔하면서도 화려한 왕궁이다. 왕궁은 맛추카, 코마레스, 라이온의 세 개의 정원을 기본축으로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로서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카사바(성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에 있는 장방형의 연못에서 내뿜는 분수의 물이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좌르르’ 하는 소리와 기하학적인 아름다운 곡선의 반복으로 수많은 포도송이를 방불케 하는 궁전 내부의 천정 장식은 타레가로 하여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본 음형을 3연음 트레몰로로 일관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스르 왕조의 이 그라나다 왕국마저 1492년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두 가톨릭 부부 왕의 연합군에 점령당하여 유럽에서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의 운명을 다하게 된다. 당시 통일의 대업을 눈앞에 둔 두 왕은 스페인에 남아 있는 이슬람교와 유태교 세력을 축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감성적이며 섬세했던 그라나다의 왕 무함마드12세는 백성들의 종교, 재산권, 상권을 유지시켜 달라는 조건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카스티야의 속국이 되는 길을 택했다. 무함마드12세에게는 굴욕이었겠지만 아름다운 왕궁과 백성들을 지키고 싶은 그라나다 왕과 알함브라 궁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반해 버린 스페인 왕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최선의 타협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후일 바다 건너 모로코에서 숨을 거둔 무함마드 12세가 세라 네바다 산맥의 남쪽으로 달아나며 마지막으로 왕궁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곳은 지금 ‘한탄의 고개’라고 불린다.



타레가(Francisco de Asís Tárrega y Eixea, 1852-1909)는 유아 시절 무정한 보모의 손에서 내팽개쳐져 하수구에 빠져서 시력이 현저히 약해졌기 때문에 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타레가의 아버지는 타레가가 기타와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분방한 성격의 어린 타레가는 곧잘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게 학교와 레슨을 버리고 식당과 술집에서 기타를 치며 돈벌이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먼 길을 나서서 길거리를 전전하는 아들을 찾아 다시 학교로 데려다주곤 하였다고 한다.



마드리드 음악원을 졸업한 타레가는 1882년 마리아 호세 리조와 결혼하고 바르셀로나로 가 살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예술 후원가인 부유한 과부 콘차 부인을 만난다. 부인은 그를 간신히 설득하여 가족과 함께 자기 집으로 와서 살게 하였고, 몇 년 후 그를 그라나다로 데려가 알함브라 궁을 관광하도록 해준다. 이 여행에서 타레가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Recuerdos de la Alhambra>의 테마를 착상하게 된다. 알함브라 궁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타레가의 마음에는 왕국을 빼앗기고 ‘한탄의 고개’에서 멀리 왕궁을 바라보며 눈물짓던 무함마드 12세의 심정과, 이제 콘차 부인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미 결혼한 몸이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아파해야만 하는 자신의 심정이 혼연일치가 되면서, 또 그 왕궁에서 그 옛날 있었을 수많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들을 추상하면서 음악사에 길이 남을 영롱한 선율이 결정체를 이루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왕궁과 백성들의 생명을 다치지 않기 위해 굴욕을 감내했던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과, 부인을 슬픔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자기의 사랑을 희생시킨 타레가, 아니 타레가 뿐 아니라 처자식, 남편자식을 버리지 않기 위해 새로 싹튼 사랑을 희생시킨 이 세상의 수많은 선남선녀는 모두 숭고한 평화의 사도들이며 그들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아름다운 선율을 깊이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그들 모두에게 눈물을 뿌려 흠모와 존경과 사랑을 바치련다.



만년의 타레가는 왕실 음악가의 자리에 초청받고서도 이를 사양하고 은둔의 수도사처럼 오직 작곡과 기타 주법의 개발에만 전념하다가 1906년 중풍을 맞아 우반신이 마비되었고 3년 후인 1909년 12월 15일에 58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연주 가운데 곡 해석이 가장 탁월한 Pepe Romero의 연주 동영상
 



필자 약력

1954 대구 生

서울대학교 성악과 졸업 및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2-2004: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대) 작곡과 음악학전공 전임교수 역임

한국음악학學會 부회장 역임

민족음악협의회/대구민예총 이사

평화박물관 운영위원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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