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희생자 유해를 창고에... 인간으로서 예의 아냐" (오마이뉴스, 110625)

"희생자 유해를 창고에... 인간으로서 예의 아냐"

 

[인터뷰]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송기인 신부

 

김성수(wadans)

등록 2011.06.25 21:32수정 2011.06.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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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진실위 위원장 근무시 서봉만


 

송기인 신부는 내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에 있을 때 내 상관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상관보다는 항상 신부님으로 생각했다. 송기인 신부가 1기 진실위 위원장의 임기를 끝마치고 진실위를 떠났을 때 내가 가장 감동스러웠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분이 자신의 장관급 위원장 2년치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한 시민단체에 기증하고 나간 것이다.

 


 

진실위를 떠나며 송 신부가 남긴 한마디가 아직 내 뇌리에 남아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는 잘못을 고백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문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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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신부는 경남 밀양에 산다. 나는 송 신부를 생각할 때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 이 생각난다. <밀양>을 보면 살인범인 가해자는 피해자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거나 용서를 빌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진실위에서 다룬 수많은 민간인학살 사건이나 인권침해 사건의 많은 가해자들도 그렇다. 그 가해자들 대부분은 잘못을 고백하지 않을 뿐더러 피해자에게는 용서도 빌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그런 행위를 전혀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비인간적 악행을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정당화, 합리화하고 미화한다.

 


 

가해자가 용서를 빌지 않는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 주긴 아주 어렵다. 또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판을 치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화해의 다리를 놓기는 불가능하다.

 


 

송 신부는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그래도 세상은 전진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정의가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위로가 된다. 다음은 지난 19일 경남 밀양에서 송기인 신부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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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 현판식 서봉만

 

 


 

"이영조 위원장, 자기 추천한 이들 의도를 너무 의식"

 


 

- 진실위 1기 위원장을 지내고 그 후 바깥에 나가서 진실위 2기와 3기 활동을 지켜보셨다. 전반적으로 진실위의 과거사정리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사를 정리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여 작업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른 나라 경우도 거의 예외 없이 민간단체들이 노력하면 정부가 따라가는 형국들이었다. 우리나라도 반세기 동안이나 줄기차게 유가족들이나 뜻 있는 사람들이 내세운 요구가 관철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구에 응답해 정부나 국회가 입법의 결단을 내린 것은 다른 나라에도 모범이 될 법하다고 평가한다.

 

 

물론 '과거사법'이 미흡한 법이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실위는 원칙을 지키며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2~3기 활동을 비교하자면, 2기의 안병욱 위원장 때는 너무 완벽하게 사건을 처리하려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기 이영조 위원장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다른 생각'으로만 일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진실규명이 가능한 사건까지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 향후 우리나라에 과거사정리 기구가 또 필요하다고 보시나?

"'과거사정리기본법'에는 진실위 활동 종결 후 '과거사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 후속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조항에 따른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미의 칠레나 아르헨티나가 그렇다.

 

 

민간인학살과 관련해 이미 발굴된 피해자분들의 유해 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에서 세금을 들여 발굴한 유해인데 지금 같이 창고 같은 데 방치해두는 것은 고인들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 죄 없는 고인들을 제대로 모셔야 하고 적절한 기념사업과 위령사업도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와 책임이다. 지금 충북대학교의 가건물에 임시로 안치하고 있는 6000여 구의 유해부터 당장 제대로 된 영구적인 장소로 모셔야 한다."

 


 

- 진실위 3기 이영조 위원장 체제에서 조사관이나 직원들 또는 다른 위원들과 이영조 위원장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 초기부터 함께 일해온 훌륭한 정치학자인데, 애초부터 지향점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순수하게 이름 그대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에 목표를 두기보다는 정계 진출 등을 고려해서인지, 자기를 추천한 측의 의도를 너무 의식하지 않았는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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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위 첫 개토제 서봉만

 

 


 

바닥에서 큰절 하던 할머니... "말 못할 보람 느껴"

 


 

- 진실위에서 공식적인 종합보고서가 나왔는데도 조만간 전 진실위 조사관들이 자신들 입장에서 쓴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백서 발간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

"국력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생각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 자비를 털어서 백서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전 진실위 조사관들의 생각은 넉넉히 이해가 간다. 전 진실위 조사관들이 낼 백서는 기존에 나온 진실위 종합보고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도 할 터이니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 위원장 역임 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 않은 일이어서 열정만으로 하려니 처음에 착오 등이 생긴 것도 있었다. 애초의 법안대로 남아공의 경우처럼 공개청문회를 열 수 있었거나 조사관들의 조사권한 등을 강화했더라면 훨씬 진실규명 활동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진실규명 성과와 능률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족하고 아쉬운 상황에서도, 내가 위원장을 했을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 때라 그랬는지 행정부나 다른 정부기관 등 주위의 협조가 좋았다. 일부 수구 언론을 제외하고는 언론들의 협조도 많았다. 지금도 이에 감사드린다. 또한 당시 특히 일부 유족들의 희생적인 헌신과 노력의 덕을 많이 보았다."

 


 

- 진실위 일을 하시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

"나는 1990년을 전후해서 간첩조작사건 희생자분들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분들의 억울함을 어디에서도 어떻게도 풀어줄 수 없었다. 무력감을 참 많이 느꼈다. 그런데 진실위가 설립되고 업무가 시작되자 바로 그분들이 진실규명신청을 해와서 보람을 느꼈다.

 


 

시골의 한 할머니는 보도연맹 누명으로 평생을 숨어 살았다. 그래서 유복자를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다. 그런데 진실위가 설립되고 나서 나를 친히 찾아 오셨는데, '이제 국가가 이 한을 풀어주니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내 손을 꼭 잡고 바닥에서 큰절을 하셨다. 그때 나는 가슴이 뭉클했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참 말 못할 보람을 느꼈다."

 


 

- 선진국의 수준은 경제력이나 국방력보다는 인권의 수준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인권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시나?

"우리나라의 인권수준은 괜찮은 편이라고 느낀다. 특히 고발정신은 시골 촌부들까지 확실해서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가 60배 정도 많다고 한다. 누구도 억울함을 안고 살려고 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한 걸음 넘어 생각하면 요원하다. 이를 이기는 길은 깨어 있는 전체 국민의 의식이다.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다 밝은 사회를 위해 스스로가 희생하는 정신이 있을 때 인권은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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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신부와 남아공 진실위 관계자 서봉만

 

 


 

"과거 덮어둔다고 사회 화합되는 것 결코 아냐"

 


 

- 과거사정리와 관련하여 대통령, 국회, 또는 유가족들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

"이 시점에서 주고 싶은 말은 없다. 말을 할 때에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인데, 지금 말한다고 해서 결과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상은 전진한다. 정의가 비록 당장 이뤄지지는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도 항상 이 꼴이 아닐 터이다. 발전이 정지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시동이 걸릴 테고 그런 시기까지 참는 지혜도 필요하다."

 


 

-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과거사정리와 관련하여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과거사 문제로 그 분과 에피소드를 남길 만한 기회는 없었다. 진실위 출범 때에 그리고 퇴임(1기와 2기 교체) 때에 청와대에 모였지만 공식적 자리뿐이었다. 그분이 모두발언에서 '미흡한 법이라서 애로가 많겠지만 열심히 해달라'는 말씀을 했다. 그분이 정치인이 되기 훨씬 전에 변호사로서 만날 적에 '신부님, 우리나라가 국력을 한껏 끌어올리려면 과거사를 정리해야 됩니다' 하는 얘기를 나누기는 했었다."

 


 

- 과거보다는 현재, 현재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사회분열만 일으키는 과거사정리가 왜 필요하냐고 비난하는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가?

"과거사정리가 사회분열만 일으킨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사정리는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해주고 싶다. 예컨대 죽산 조봉암 선생 후손들이나 그를 추종했던 분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가족 등, 진실이 밝혀진 분들은 이제 국가나 사회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떳떳한 시민으로 밝게 살게 되지 않았는가. 종기는 터뜨려야 완치가 된다. 과거를 덮어둔다고 사회가 화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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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송기인 송기인

 

 

* 송기인 신부 : 1938년 부산 생. 부산원예고와 가톨릭대 졸. 1972년 사제서품. 1970년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며 박정희정권을 향해 유신철폐와 민주회복을 요구. 197631일 명동성당 '3·1민주구국선언' 참여. 부산인권선교협의회장·부산민주시민협의회장 등 역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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