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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은 보도연맹사건 유해발굴 보고대회, 최소 40구 발굴 (통일뉴스, 190425)

보은 보도연맹사건 유해발굴 보고대회, 최소 40구 발굴

 

충청북도,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유해발굴에 나서

 

청주=임재근 객원기자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9.04.25 23:34:52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제6차 유해발굴, 충북 보은군 아곡리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대회25일 오전 11, 충북미래여성프라자에서 진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지난 37일부터 17일까지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에서 충청북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유해발굴조사단)이 공동으로 진행한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대회가 진행되었다.

 

25일 오전 11, 충북미래여성프라자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제6차 유해발굴, 충북 보은군 아곡리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대회가 유족과 유해발굴조사단, 충청북도 관계자, 충청북도의회 의원, 충북지역 시민사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날 보고대회에서 유해발굴조사단은 유해발굴 보고서를 통해 아곡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최소 개체수는 40구라고 밝혔다. 유해발굴조사단은 최소 개체수는 식별이 가능한 모든 뼈대를 살펴 가장 많이 출토된 뼈의 수를 말한다,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해발굴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유해들은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다 보니 보존상태가 나빠 주로 긴 뼈들만이 남아 있었고, 개인을 가늠할 수 있는 유해들은 3구에 불과했다. 40구의 최소개체 중에 28구의 경우, 머리뼈와 골반의 특징 및 사지 뼈의 굳센 정도를 통해 성별과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는데, 28구 모두 남성으로 가늠되고, 주로 20~30대의 청장년이 주를 이뤘다.

 


보고대회에서 유해발굴조사단 박선주 단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박선주 단장 뒤편 화면에 보이는 양팔을 든 채로 발굴된 유해 사진은 희생자들이 3~4m 정도 옮겨져 매장된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에서 많은 총상흔이 발견되었고, 탄두와 탄피도 발견되었다. 유해매장지에서 발굴된 총탄류가 M1과 카빈 탄두와 탄피인 점으로 보아 가해자는 군인과 경찰로 보인다고 유해발굴조사단은 밝혔다.

 

또한 발굴된 카빈탄두의 뭉툭한 것으로 보아 가까이에서 사살된 것으로 가늠되고, 발굴 현장에서 출토되는 탄두와 탄피가 다른 매장지에서 출토되는 수보다 적은 것은 학살된 장소와 매장된 장소가 같지 않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보고에 나선 유해발굴조사단 박선주 단장은 양팔을 든 채로 발굴된 유해 사진을 보여주며, “희생은 바로 옆 개천 뚝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희생자들을 끌어다가 바로 이 지점(유해발굴 지점)에다가 쌓은 것이라며, “20~24제곱미터 밖에 안 되는 곳에 40여구의 시신을 쌓았기 때문에 유해가 23층으로 층층이 쌓여서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아곡리 유해 매장지에서는 모두 136점의 유품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朴魯賢이란 이름이 전서로 인각된 플라스틱 계통의 도장이 출토되어 신원확인 여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도장의 주인인 朴魯賢(박노현)이란 이름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청원 국민보도연맹 사건결정문 희생자 명부에서 확인되어 유족을 찾아내어 유전자 검사를 시도했다. 도장과 인접한 2구의 유해와 동생 박노선의 유전자 검사 결과 형제 관계라는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접한 다른 유해에서 새로운 시료를 채취해 2차 조사를 진행 중에 있어 유해의 신원을 찾아낼 가능성도 기대하고 있다.

 

출품된 유품으로는 버클, 라이터, 안경, 담뱃대, 구두주걱, 시계, 거울, 빗 등이 포함되어 있어 희생자들의 신분이 당시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해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朴魯賢(박노현)의 도장. 도장이 발견된 인근 유해와 박노현의 동생, 박노선의 유전자 감식을 진행했으나 안타깝게도 형제 관계라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지금은 인접한 다른 유해에서 새로운 시료를 채취해 2차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발굴조사단은 이번 조사는 그간 청주청원유족회의 노력과 충청북도가 전국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유해발굴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번 발굴을 통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라며, 유해발굴을 통해 보은군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이를 통한 도민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더불어 국가차원의 진상규명 및 입법화 요구의 기반을 마련하고, 역사정의 실현 및 사회통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기민간인희생자 충북유족회 박찬영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아곡리에서 유해를 발굴할 때 뼈 한 조각이 나오면 저 시신은 어느 누구의 부모 형제일까, 혹은 우리 부모 형제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며, 한 조각 한 조각 상자에 모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철통같이 약속을 해 놓고도 이제 와서 예산이 많이 들어가느니 현실에 맞지 않느니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저의를 알 수 없다‘2018년 상반기 중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재개를 통해 과거사 전반의 미해결 사건 접수 및 진실규명 조사 착수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과제 내용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추도사는 박찬영 회장이 입원을 하게 되어 최익준 부회장이 대독했다.

 


충북 보은군 아곡리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대회도중 한 유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발굴을 함께 진행한 충청북도의 이시종 도지사도 추도사를 보내왔다. 이시종 도지사는 이번 유해발굴이 69년 동안 차가운 땅속에서 어두운 세월을 보낸 희생자들의 영령과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앞으로 도에서도 민간인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아픔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의 추도사는 충청북도 자치행정과 강전권 과장이 대독했다.

 

아곡리에서 발굴된 희생자 유해와 유품은 지난 327, 유가족과 도 관계자 및 발굴단원들이 참석하여 간단한 제례를 올린 후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옮겨 봉안했다.

 

한편, 아곡리 유해 발굴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여성 2명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 중턱도 유해발굴을 위해 해당 지점을 3×8m 넓이에 깊이 50cm 정도 십자(+) 형태로 트랜치(trench)를 넣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제6차 유해발굴, 충북 보은군 아곡리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보고대회에는 유족과 유해발굴공동조사단, 충청북도 관계자, 충청북도의회 의원, 충북지역 시민사회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발굴조사단은 “1950년 학살 당시 트럭 두 대에 희생자들이 실려 아곡리에 왔다는 증언이 있다, “아곡리 방앗실 현장에서 40명의 유해가 출토된 것은 당시 트럭 한 대에 탈 수 있는 최대 숫자로 가늠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머지 한 대에 실린 희생자들의 매장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발굴 현장 옆에 있는 주유소 밑에 묻혀 있다는 주변 주민들의 주장을 심도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발굴이 끝난 현장을 잘 보존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매장지 현장 앞에 있는 회사 정문을 조금 안쪽으로 옮기고, 길가에 현장을 알리는 표시판 등과 위령 조형물들의 설치를 통해 국민들이 찾고 기억하는 장소로 만들 것을 건의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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