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나중에 섬나라 가서 다이빙만 하며 살자" (오마이뉴스, 170322)
"나중에 섬나라 가서 다이빙만 하며 살자"
제2회 한경희통일평화상 수상자 고 김관홍 잠수사
17.03.22 12:57 이향림(hyanglim87)


작년 6월 17일 고인이 된 김관홍 잠수사 앞으로 상이 수여되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 혼자 진도에 찾아온 20년 경력의 베테랑 잠수사였다. 현장에서 만난 24명의 다른 민간 잠수사들과 물때에 맞춰 매일 4차례씩 7월10일까지 290여 구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인원으로 작업을 한 탓에 이후 잠수사 일을 더 할 수가 없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육체보다 정신적, 마음의 고통이었다.


▲  시상식에는 수상자 고 김관홍의 추모영상이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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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조작의 피해자인 고 한경희의 자녀들이 만든 한경희통일평화상. 간첩으로 몰린 어머니에 이어 평생 간첩의 자식으로 몰려 힘든 삶을 살았던 한경희의 아들 송기수. 한경희 여사를 기리고, 더 이상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하지 않는 이 땅의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상이다. (관련기사: 제1회 한경희통일평화상 시상식에 가다)


작년 이요상 시민활동가에게 수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축하가 뒤따랐지만 지난 17일(금) 열린 올해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심사과정에서 목이 메어 서로들 말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회를 대표한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은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세월호운동'은 그 어떤 평화운동 못지 않게 분단체제 하에서 안보국가의 폭력성과 반시민성에 대항하고 있으며 연대와 헌사를 바치고자 고 김관홍 잠수사를 선정하였다"고 전했다.


세 아이들과 함께 한 그의 아내 김혜연은 "이 상은 국민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먼저 나서서 행한 민간 잠수사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는 세월호 가족들도 많이 참가하였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유가족 어머님들도 함께 했는데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 옆에는 공우영 민간 잠수사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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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년 경력의 공우영 잠수사 세월호 수색 이후 ‘민간잠수사의 수색 작업을 총괄적으로 관리·감독’을 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를 당하고 1년 4개월 뒤에 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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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해경을 대신해서 봉사했는데 내가 고소당한걸 보고 다들 난리 났었지. (함께 일한 잠수사들이) 돈을 걷어서 변호사비 대고, 언론사 많이 다니고, 목포와 광주에서 1년 넘게 재판하며 관홍이가 많이 도와줬다. (수색하던 잠수사들 25명을) 2014년 7월 10일에 쫓아냈는데 문자 한 통으로 통보를 받았다. 해경청장이 (292명을 수습한 우리에게) 작업방법이 바뀌어서 그동안 수고 많았으니 쉬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나를 고소하려고 잠수사들 모두 쫓아낸 것 같다."


공우영씨 뿐만 아니라 다른 잠수사들도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2014년 4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수색작업에 참가한 황병주 잠수사. 그는 김관홍을 세월호 수색작업에서 처음 봤다고 하였다.


"관홍이는 4월 23일에 와서 수색을 하다가 며칠 뒤 쓰러졌다. 병원에서 4~5일 입원하고 다시 들어왔다. 왜 다시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하며 다시 일을 했다."며 그때를 회상하였다.


"성격이 활발하고 동생이니까 형님들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서 솔선수범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의감이 남달랐다. 7월 10일에 수색을 못한다고 거의 쫓겨나오다시피 했을 때도 이춘재(해경경비안전국장)한테 우리가 왜 그만둬야 하냐며 제일 많이 따지고, 울고 했던 동생이었다. 공우영 잠수사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서도 노력 많이 하고, 사회적 연대와 활동도 많이 했다."


그도 현재 골괴사(뼈에 피의 공급이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줄어들게 되면서 뼈조직이 죽어가는 질환)를 앓고 있으며 신장 투석 중이다. 자신은 정혜신 박사의 도움으로 동료 잠수사들과 함께 5~6개월 상담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지만 지금도 수면제 없이 잠을 못자는 동료들이 많다고 하였다.


산재만큼만이라도 해달라


김관홍과 함께 292명을 수습한 민간 잠수사들 중에는 일을 못하는 사람,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잠수업계를 떠난 사람도 있다. 해경에서는 작년 12월 20일이 되어서야 보상을 해줬는데 24명 중에서 반 정도밖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


또한 골괴사를 인정해주지 않아 8명의 잠수사들이 행정소송을 진행중이다. 황병주씨는 "현재의 보상체계는 산재의 5분의 1도 안 된다며 산재만큼이라도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올해 2월 이재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민간잠수사 치료를 위한 법안이 통과된 상황이고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평소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을 했다던 김관홍. 그가 살아생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를 옆에서 가장 많이 지켜본 사람인 김혜연씨에게 대신 답변을 들었다.


나중에 섬나라 가서 가족끼리 다이빙만 하면서 살자


"남편은 아이들을 다 수습 못했다는 미안한 감정이 컸다. 공우영 잠수사님을 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치료를 해준다고 해놓고 자꾸 말을 바꾼 정부에 대해 배신감을 많이 느꼈다. 자원봉사자 차원으로 간 거였다. 그런데 해야 할 것을 못하게 하고, 방송은 틀리게 나가고, 하나하나 파헤치다보니까 여기서 살 바에는 섬나라가서 가족끼리 다이빙만 하면서 나중에 그렇게 살자고 말했다. 인양도, 수습도 잘 됐으면 좋겠다. 저도 애가 셋이니까 애들도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는 나라였으면 한다. 우리 큰 딸은 벌써부터 막내를 군대 보내야 하는 것을 제일 걱정한다."


벌써부터 군대 걱정을 하다니…. 나는 아이들 나이를 물었다. 큰 딸은 12살, 막내 남동생은 8살. 철이 너무 일찍 들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국가에 대한 느낌을 머리보다 가슴으로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이
아버지를 잃은 김관홍 가족을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을
동료를 잃은 잠수사들을 위로하며
서로 위로를 받는.


국가란 무엇인지, 개인의 아픔보다 먼저인 것인지, 국가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법칙, 의무, 지시 등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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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관홍, #김혜연, #민간잠수사, #한경희통일평화상, #세월호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9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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