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칼럼] 7월, 분노와 희망. 이만열 교수 (유코리아뉴스 2015-07-20)
2015 7월 22 - 11:13 peace518

[유쿄리아뉴스] [칼럼] 7월, 분노와 희망.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7월 4일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있던 날이었다.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광복과 더불어 분단된 남북이 분단 27년만에 자리를 같이하여 통일 문제를 두고 공동성명을 냈던 것이다. 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날, 서울 하늘은 구름이 짙게 끼었었다. 그러나 공동성명 소식이 호외로 알려지자, 서울거리는 잠깐이지만 환희와 설렘이 있었다. 나는 그 날 둘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며 신촌 어느 병원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호외로 뿌려진 그 신문의 활자는, 과장된 표현이지만, 대문짝만하게 보였다. 그만큼 민족의 통일을 기다렸기 때문이었을까.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그후 남북 사이에 통일의 대 원칙으로 수용된 세 '단어'는 이때 천명된 것이다. 비록 그 결말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유신정권과 사회주의헌법으로 결말나고 말았지만, 이 선언은 남북문제와 관련 정부간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이룩한 첫 성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6.15 공동선언을 헛되게 보내버린 남북은 7.4 공동성명 43주년도 의미없이 보내버렸다. 6.15 공동선언이나 10.4선언과는 달리, 7.4 공동성명은 남북 현 집권자의 아버지와 할아버기가 의논해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폐기처분에만 골몰했다. 이런 때면 역사공부를 왜 했는지, 자조섞인 회한이 눈 언저리를 적신다.
 
7월 16일, 분노와 희망이 교차한 날이다. 대법원의 판결과 ‘(가칭)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 소식이 동시에 들렸다. 분노는 고등법원이 판결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을 대법원이 원점으로 되돌렸기 때문이다. 주변 식자들의 분노와 탄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필칭 ‘법과 원칙’에 따라서 판결했다고 하겠지만, 국민의 상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대법관이 전원합의한 결정이라고 하니, 그게 사실이라면, 대법원에는 국민적 상식과 통하는 한 사람의 대법관도 없다는 말일까.
 
판단의 핵심이 된 트위터 계정이 담긴 파일 2개에 대해서 항소심은 '업무상 문서'로 판단하면서 44쪽에 걸쳐 논증했으나, 대법원은 그것이 ‘업무상 문서가 아니’라는 것을 ‘달랑 1장’으로 부인했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가. ‘달랑 한 장 분량’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대법원은 진실을 파헤칠 노력조차 기울였는지 의심된다. 민변이 이 판결을 두고 “대법원은 항소심의 사실 확정에 대해 아무런 오류도 지적하지 않은 채 막연히 그 증거능력을 부정했다”고 했고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한 것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대법원의 선거관련 재판과 관련, 또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대선이 선거법을 위반했다 하여 그 이듬해 1월 4일에 유권자 수천 명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이다. 이 소송은 아직도 그 재판기일이 잡혀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선거소송은 6개월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의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 6개월이 벌써 다섯 번을 되풀이했는데도 재판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국민으로서는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선거법 쟁송을 두고 대법원이 선거무효소송과 원세훈의 재판에 대해 갖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편은 아예 까뭉개버리고 다른 한편은 ‘무죄취지’에 가깝게 그것도 신속하게 하급심으로 되돌려보냈다면 거기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무효소송 재판을 빨리 서두르라고 그 앞에서 시위도 하고 대법관들을 직무유기죄로 검찰에 고발도 했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게 제67회 제헌절을 하루 앞두고 국민을 능멸하듯, 대법원이 내린 ‘선물’이다. 이럴 때 양승태 대법원을 향해 민초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탄핵청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대법관들을 위해서 오늘도 세금을 내야 하나.
 
7월 16일, 분노만 치솟은 날이 아니다. 희망도 함께 보였다. 이날 오전 10시에 프레스센터 19층에서는 ‘(가칭) 반헌법행위자 열전’ 편찬을 제안하는 민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제안문에서는 한국의 헌정사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국회프락치사건, 반민특위 무력화, 백범 김구의 암살, 6.25때 서울 시민들에게 “가만 있으라”고 방송한 뒤 다리끊고 도망간 이승만이 서울 수복 후에 피난 못간 수십만을 부역자로 몰았던 사건들을 열거했고, 이어서 친일반공으로 가려진 일제 고등경찰과 헌병 출신자 등 ‘공안마피아’들이 고문과 조작으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 장본인들이며 관피아의 중추세력이라는 것도 지적했다.
 
이들 중에는 정치인 경찰 공무원 경제인 언론인 외에 ‘법비(法匪)’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이들 헌법파괴세력에 대한 열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의 수록대상이 대부분 죽은 사람들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열전은 살아 있는 ‘반헌법행위자’들을 수록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존해 있는 동안에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지나간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는 달리, 이제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해 역사의 칼날을 겨루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맹자(孟子)’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들을 격려했다.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지으니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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