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원폭 피해자 2세’ 김형률 아시나요? (한겨레 2015-05-21)
2015 6월 10 - 16:04 peace518


22일 부산서 10주기 추모문화제 
1945년 피폭자 자녀들 유전병 앓아 전국 돌며 피해자 2~3세 실태 알려 한국·일본 정부는 치료·보상 외면 환우회 “정부가 특별법 제정” 촉구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한국인 7만여명 등 68만여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한국인들은 일자리를 얻고자 일본에 건너갔거나, 일본 군수물자 생산 현장에 끌려간 이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만3000여명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을 앓는 이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태어난 자녀 중에도 유전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이들이 있었다.

원폭 피해자 2세들은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했을 때 체결한 청구권 협정으로 국가적 보상은 끝났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개인적인 지병으로 간주하고 치료와 보상을 외면했다. 원자폭탄 피해자 2~3세들은 냉가슴만 앓았다.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형률씨는 2002년 3월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자폭탄 후유증을 앓는 피해자 2세임을 밝혔다.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원자폭탄 피해자 2~3세들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원전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을 앓았던 그는 전국을 돌며 원자폭탄 피해자 2~3세들의 비참한 실태를 알리는 활동에 전념하다가, 2005년 5월29일 서른다섯번째 생일을 두달여 앞두고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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