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50년 흘렀지만 학살 생생... 기억 전하는 게 소임" (오마이뉴스 2015-04-06)
2015 4월 21 - 14:56 peace518


"저는 학살이 일어난 날 누이동생과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저 또한 수류탄 파편이 온 몸에 박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습니다.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큰 수류탄 파편은 제거했지만 지금도 제거하지 못한 파편이 온 몸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24시간 다리가 저리고 밤이 되면 통증이 심해져 저는 밤마다 들판을 달립니다. 달리면 통증이 좀 덜해지기 때문입니다. 수류탄 하나가 이렇게 평생을 괴롭힐지 정말 몰랐습니다.(중략)
탄 아주머니는 배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 등 가족 다섯 명을 잃었습니다. 오빠도 한쪽 엉덩이가 날아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탄 아주머니는 학살이 일어난 날 창자가 튀어나온 부상을 입고 고통도 모른 채 오직 엄마를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왜 그런 잔인한 학살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6일 오후 국회의사당 정론관에서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피해자 응우옌떤런(남·64)씨와 응우옌티탄(여·57)씨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올해는 베트남전 종전 40주년을 맞는 해지만, 민간인 학살피해자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들 앞에 선 응우옌떤런씨는 1966년 2월 13일 새벽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에게 닥친 끔찍한 악몽에 대해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베트남 중부 빈딘성(省, 우리의 도에 해당) 따이손현(縣, 우리의 군에 해당) 따이빈사(社, 우리의 면에 해당) 안빈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파월 맹호부대)은 응우옌떤런씨와 어머니, 여동생 등 세 식구를 포함하여 25가구의 마을 사람들 전부를 한곳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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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6629&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고통과 기억의 연대|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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