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72
제목 촛불 속에서
2008 7월 2 - 16:54 익명 사용자
 

 
 작은 기타 앰프를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쏭의 기타반주에 발걸음을 맞추었다. 어둠이 깊어가는 시간, 서울 도심의 도로엔 차가 아닌 무수한 촛불들의 걸음걸이가 이어졌다. 저 앞, 청와대 방향으로 길이 난 곳엔 경찰 버스가 걸음을 막고 있었다. '멈춘 김에 한판 놀아야지..' 기타 반주에 맞추어, 몸에 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 노래 할 때, 눈을 꼭 감고 부르는 습관이 있다. 온 힘을 들여 한곡을 마치고, 눈을 가만히 떴다. 사람들의 눈빛이었는지,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의 빛이었는지는 분간 못 하겠지만, 그 빛이 우리 주위를 빽빽하게 몇 겹으로 감싸 밝히고 있었다.
아.. 마치 그 느낌은, 맑은 날 인공적인 불빛이 사라진 밤하늘을 처음 대했을 때 같았다. 세상은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던, 경외스러움이라는 감성을 알게 되던 바로 그 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라고 이야기되긴 하지만, 그 제목이 그리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 신자유주의 반대 촛불집회, 각종 민영화 반대 촛불집회, 잘못된 정책에 의해 삶의 기반이 흔들려왔던 이들의 촛불집회...등등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촛불 집회라고 부를 것인지, 촛불 축제, 시민 혁명, 국민 MT라 부를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떤 이름이든 이번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 한사람 한사람마다 구체적 의미, 이름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여러 관점, 여러 층위의 주장, 사람들이 얽히고 설키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집회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는 도무지 정확한 예상을 할 수 없다. 몇몇 요소를 뽑아 예상을 해보려는 시도는 나름 있긴 한데, 다 그 나름의 이야기일 뿐이지. 오히려, 예상하고 있을 시간에 당장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미래가 결정되는데 더 중요할 것 같다. 2MB를 비롯한 권력가진 이들은 장마만 기다리고 있다고도 한다. 글쎄.. 장마가 오면 또 어떤 형태로 행동이 드러날까? 단순히 시청, 광화문 앞 집회에 다수가 모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 그렇게 될 때도 있을테고, 수많은 형태가 있을 수 있으니 단순히 말할 수가 없다. (또, 그 수많은 형태들 자체가 얽히고 설키기도 하겠지.) 어떻게 되어갈지 무척 기대되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든 찾고 싶다.
 
 

 
 난 길바닥 평화행동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과 함께, 'G8을 반대하는 사람들' 혹은 'G8 잡는 고양이들'이란 이름으로 함께 움직여 왔다. G8은 강대국 여덟 나라의 수장이 일본 홋카이도에 모여 신자유주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회담이다. 도심 대로 위 길바닥에서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 생태적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아 노래를 부르며, 일본에 갈 활동가 지원을 위한 모금을 하기도 했다.
가난한 활동가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어디 돈 많은 곳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은 스스로 껄끄러운 일이었기에, 현실적으로 모금에 대한 걱정은 항상 떠날 수가 없었다. 아.. 그런데, 촛불 속에서의 모금이 너무 잘 되었고, 아주 신이 났다. 단순히, 돈이 많이 생겨서 좋은 것이 아니다. 예전엔, 신자유주의 질서 어쩌구 저쩌구, 전쟁 반대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하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감상적으로만 듣거나, 머리 아픈 이야기 한다며 혹은 빨갱이 같은 소리 한다며 자리를 뜨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기 위해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야 했고.. 그런데, 서울 도심의 대로에서 똑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게 아닌가! 내 마음 속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신이 났다. 그리고,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는 것, 세상의 귀, 세상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2008년 봄에 시작해 세상을 얼마나 더 변화시켜 나갈지 알 수 없는, 촛불 집회, 축제, MT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말이 해도해도 끝이 없이 나올 것 같다. 권력 가진 이들의 파렴치함, 비틀어져 있는 세계의 상황을 함께 주시하며, 마음과 마음이 통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축제의 장은, 세상이 짐작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짐작할 수 없는 에너지를 세상에 주는 것이라 느껴진다. 세상이 열린다는 것,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또 다시 마음 속에 평화의 바람이 더욱 자라나게 한다.
 
 
글쓴이: 꼬미(길바닥 평화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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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촛불문화제. '개조심展'의 현수막을 재활용하여 사무처 활동가들도 참가했습니다.
이 사진은 채광일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찍어서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 밖의 사진은 꼬미 님께서 직접 보내오셨습니다.
블로그 웹진 <울렁증>에 실린 촛불집회 기사도 읽어 보세요.
http://www.ulung.net/tc/34
http://www.ulung.net/tc/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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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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