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31
제목 [강연] 인간 박정희와 그의 시대 (2018-10-26)

10.26일 저녁 7시 30분, 역사책방에서 <인간 박정희와 그의 시대>라는 주제로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39년전 오늘, 조금 있다가 40분쯤에 죽어요. 여기서 얼마 머지않은 곳이었겠네요.
이날은 이토히로부미의 제삿날이기도 합니다.”로 강연의 운을 떼신 한홍구 선생님.
 
당시에 대학교 2학년이었던 선생님은 10월 27일 날 박정희의 사망소식을 듣고 슬펐다고 합니다.
“우리가 끌어내렸어야 했는데.” 라고 생각했었대요.



무참히(?) 공개되는 박정희의 성적표...
사범학교 : 에엥? 73명중에 73등/ 70명 중에 69등
대구 사범학교 꼴찌가 만주군관학교에서는 우등생이 되는 반전.
그렇게 황국 신민 교육을 열심히 받은 우등생 박정희는 무럭 무럭 자라서


일본군 육사가 됩니다.

그의 이런 이력을 근거로 "박정희는 친일파다"라고 많이 이야기 되는 데,
사실 1945년 전까지 박정희가 친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에겐 친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황국신민의 인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갈고 닦았으나....
그 출세의 사다리였던 일본이 망했지 뭡니까. 준비운동만 열심히 한 셈이지요. ^^;;


일본의 군국주의의 모범 청년 박정희는
명치유신의 지사들 처럼 조국군대화를 이루고 팠습니다.




그래서 정보장교들과 함께 516 군사반란을 일으키죠.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의외로



매카시즘이었다고 하네요.

63년 선거당시 박정희는 좌익 경력이 문제가 되어, 윤보선 후보에게 "빨갱이다" 공격을 받았다고 해요.
사진은 발끈했던 박정희의 당시 연설문 광고......... 요즘 말론 참 띵문이네요. ㅋㅋ

그해 대통령 선거는 유례없이 표차이(15만표)가 적었던 해로 기록됩니다.

한홍구 교수님 왈
"박정희가 전라도에서 30만표 이겼다. 그땐 지역감정도 없었다. 오히려 호남좌익표로 박정희가 당선된 것 아닌가 한다.
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한 말이다."




군국의 아들이 독재자가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병영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시절의 사진들...




지금 강남 부동산 불패의 신화역시 그 시절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삼성동의 땅 한평이 30원 으로 자장면 한그릇 값이었대요.
저기 밭갈고 계시는 저분, 저때 자기 땅 갈고 있었던 거면 엄청난 부자가 되셨을 거라고...

국가가 나서서 한 강남의 부동산 투기 역시, 박정희 시절의 유산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것은




보이시나요?

군대에서 죽어간 이땅의 아들들.
이승만 때야 전시이니그렇다 치지만, 박정희 통치기간 사망자 수는 유난합니다.
 
이라크전에서 죽은 미군이 1년에 약800여명임을 감안하면,  
박정희 독재는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과 다름 없습니다.



쉬어가는 타임으로 70년대에  유행했던 반공 웅변 영상을 보았습니다.
정말 '악마'같은 시대였다고 생각이 들어요.

결국 그는 최측근에 의해 비극 적인 최후를 맞게되죠.




불금! 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사료를 겻들여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처럼 강연을 진행해주신 터라,

밤 10시가 넘었는 데도 많은 분들이 자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오늘의 강연이 끝이아닙니다.
평화박물관의 다양한 (복사본이 아닌) 원본 사료들로

당분간 통의동 역사책방에서는 '박정희와 유신'을 추억(?)하는 작은 전시회가 열려요.




깊어가는 가을, 한 번쯤 보러가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관련 링크 바로가기 클릭)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11-05
조회수 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