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59
제목 사는게 감옥 같다면: 유쾌한 감옥 The Tales of Prison Life -오로빈도 고슈
2012 2월 8 - 11:35 익명 사용자

유쾌한 감옥 The Tales of Prison Life_ 오로빈도 고슈





목차



앨리포어 감옥 이야기

감옥과 자유

인도민족의 이상과 세 가지 기질

새로운 탄생

우타파라 연설

옮긴이 해제

옮긴이 후기







오로빈도에게 듣는 평화의 메시지





간디 이전에 인도의 완전 독립을 부르짖었던 인도의 ‘스리(영적 지도자)’ 오로빈도. 그는 옥중에서 영적인 평화를 얻었지만, 현실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한다. 이 책은 그가 폭탄 테러의 배후라는 누명을 쓰고 정치범으로 옥살이를 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의 옥중기가 빛나는 이유는 그가 옥중에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현실세계의 문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사색하였기 때문이다. 구차한 소개보다는 그의 말을 빌어 표현해보고자 한다.





후일 나는 푸나의 <인도 사회 개혁자>라는 잡지가 어려울 것 없는 내 발언 하나를 비꼬아 “요즘 우리는 감옥 안에서 ‘신 내림의 과잉’을 보게 된다”고 논평했음을 알게 되었다. 명성이나 쫓는 인간들의 무지한 자만심과 왜소함이란! 손톱만한 학식, 손톱만한 재주를 가지고 우쭐대는 모습은 얼마나 딱한 것인지! 감옥이 아니고, 오두막이나 검소한 수련원들,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 속이 아니라면 도대체 신께서 그 모습을 나타내실 곳이 그 어디일 것이란 말인가? 부자들의 화려한 사원? 아니면 쾌락을 좇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부류들의 안락한 침대 속? 신은 학식이나 명예, 지위, 대중의 갈채, 겉이 번드르르한 세련됨이나 멋들어짐을 높게 보지 않으신다. 가난한 자들에게 그 분은 동정심 많고 자비로운 어머니의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모든 사람들, 모든 나라들, 비참하고 가난한 자, 타락한 자와 죄인들 속에서 그 분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삶을 그 분을 향한 봉사로 바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그 분은 깃드신다. 그렇기에 무너졌으나 이제 바야흐로 일어설 준비가 된 나라, 그러한 나라의 종복들이 갇혀 있는 독방 감옥 안이야말로 신께 가까워질 수 있는 곳이다. (p. 49)





오로빈도가 말하는 평화는 비폭력과 정신승리를 통해 얻는 평화가 아니다. 치열한 물질적, 정신적 투쟁을 근간으로 하는, 수단으로서의 평화이다. 오로빈도가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이동’과 ‘변화’가 없는 정지의 상태에 다름아닌 평화가 아니라, 평화를 쟁취하는 행위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일종의 행복,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복의 상태이다.

이러한 행복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져서는 선문답이 될 수밖에 없다. 오로빈도는 끊임없이 활동했고, 현실세계에 평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열심을 내었다. 역자(김상준)는 이러한 지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영성’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할 말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눈을 감는 것은 오히려 영성과 무관하다. ‘영성’이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다. 반대로 현실을 가장 깊이 대면하고 음미하는 것이 영성이다. 현실 밖에는 자신도 타인도, 그리고 영성도 없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현실의 고통과 모순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와 그 의미가 지닌 맥락을 무욕하게 집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영성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로빈도의 이 책이 감동을 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오로빈도의 영성은 항상 현실 모순의 집중점, 가장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p.277)





그가 그리는 평화에는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 평화는 외부적인 평화이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인도라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받고 있는 폭력과 착취에서의 해방이다. 영국을 몰아내면 된다는 명쾌해 보이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해방 노선의 차이와 기나긴 시간동안의 지배를 통해 만들어진 지배에 대한 익숙함. 이것은 하나의 방법으로 협력하여 평화를 추구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은 서로가 그리는 평화의 상이 조금씩은 달랐을 것이기에. 오로빈도는 인도의 영국에 대한 완전한 독립을 꿈꿨고, 좀 더 쉬워보이는 길을 택한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극단성 때문에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두 번째 평화는 내적인 평화이다. 외부의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여러 갈등들로부터, 미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그는 감옥에서 미쳐가는 자신을 바라보았고, 감옥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구제국의 폭압적 시스템을 극복하고자 마음먹는다. 아래는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옥중기의 일부이다.





수감 전에 난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동안 명상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이런 독방에[서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 긴 시간 동안 명상을 해보려 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천 갈래로 끌려 나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스리는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는 집중할 수 있었지만 더 길어지면 몸이 피곤해지면서 마음이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마음이 여러 종류의 생각들로 가득 찬다. 그러나 아무 대화 상대도 없고 마음을 모을 생각 거리도 없어지게 되면, 아무런 생가가 없는, 견디기 어려운 상태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점차 생각할 능력을 잃어간다. 수많은 불분명한 상념들이 마음의 입구에서 떠돌지만 그 문은 닫혀있다. 한두개의 상념이 그 문을 돌파해 들어오기도 하지만, 마음 내부의 침묵에 맞닥뜨리고는 그만 공포에 질려 조용히 다시 달아나고 만다.(p.68)



마음이 생기와 안정을 잃게 되자 고통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난 생각 중이었는데 생각의 흐름들이 끝없이 밀려들더니 갑자기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무질서하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조절하는 힘이 멈춰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p.76)



우선 신은 독방에 수감된 수인들이 미치게 되는 마음의 상태를 내게 보여주셨고, 이를 통해 내가 서구 수감 행정 체제의 비인간적 잔인성에 맞서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내 동포와 세계를 그와 같은 야만적인 길에서 벗어나 더욱 인간적인 수감 조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내 온 힘을 다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p.73)





오로빈도에게 현실세계의 평화와 마음안의 평화는 멀리있지 않은 것이었다.



오로빈도는 외적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 감옥에 갇혔고, 그 감옥 안에서 내적인 평화를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외적 평화에 대한 소망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강하게 불타올랐고, 내적으로 성취한 평화의 상태를 통해 이전에 비해 훨씬 담담하고 평안하게 이를 이루어갔으리라.



실은 우리내의 평화도 그러하다.

누구나 평화를 꿈꾸고, 그러기를 위해 조금씩 움직여가겠지만,

평화는 궁극적인 소망이 아닌, 지복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단순히 쓰고 버려도 되는 수단이 아닌, 이 수단이 계속해서 전체의 과정 중에 없으면 안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외적 평화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평화를 통해 그리는 것은 내적 평화, 허무와 증오와 슬픔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이 산 생에서의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 그리고 평화를 통해 바라는 지복이다.



한평생을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땅의 평화를 위해 싸웠던 그를 떠올리며, 나의 삶과 나의 살아가는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해본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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