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51
제목 가난에 빠진 세계 (이강국)

2012 1월 27 - 16:55 익명 사용자


목차
들어가는 말_가난 , 그 힘겨운 이야기

제1장 여전히 가난한 세계

1. 당신은 가난한가
(1) 가난이란 무엇인가
(2) 절대적 혹은 상대적 빈곤선
(3) 가난의 현실
(4) 빈곤의 경제학

2. 세계 속의 가난한 사람들
(1) 전 세계에 만연한 가난
(2) 아프리카의 비극
(3) 경제가 침체된 개도국의 가난

3. 선진국의 숨겨진 가난
(1) 미국-부서진 아메리칸 드림
(2) 일본-갈라지는 열도
(3) 유럽-사회통합을 가로막는 가난
(4) 통계에 나오지 않는 가난

4.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가난
(1)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2) 경제 성장과 빈곤의 두 얼굴
(3) 전 세계적 양극화

제2장 가난의 경제학

1.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1) 경제성장, 만병통치약인가
(2) 자원, 종교 그리고 경제 성장
(3) 경제 정책과 거시 경제

2. 가난을 딛고 경제 성장으로
(1) 경제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2) 가난의 악순환 끊기
(3) 국제 사회의 협력과 도움
(4) UN 밀레니엄 개발목표와 아프리카 돕기

3. 소득분배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기
(1) 양극화, 성장의 덫
(2) 성장 대 분배에서 성장과 분배

4. 빈곤층에 도움이 되는 성장
(1) 평등주의적 발전과 동아시아의 기적
(2) 잠을 깨는 용, 중국의 성공
(3) 세계은행이 얻은 교훈-빈곤층을 위한 성장

제3장 우리 안의 가난 - 한국의 현실

1. 가난과 양극화의 덫
(1) 가난에 빠진 한국
(2) 아, 양극화!
(3) 강남불패와 부동산제국

2.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가난
(1) 구조조정과 전면적 대외 개방
(2) IMF의 역사적 쇼크와 노동시장
(3) 구조적 저성장과 양극화의 심화

맺는말
감사의 글

더 읽어야 할 자료들

평화에 대한 논의는 한 사회가 소속된 경제적 상황을 벗어나서는 오롯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여겨집니다. 객관적인 자료와 분석을 간결하게 정리한 이 책은 개발-인권을 이야기하기에 적합하다는 일반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러한 일반적인 평가와 조금 방향이 다른 소개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참고가 될까하여 덧붙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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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빠진 세계
-행복이 빠진 가난의 경제학

뻔한 요약

이강국의 『가난에 빠진 세계』는 신자유주의 흐름이 가속화된 세계에서 개방 일색의 경제정책이 국부 증가를 위한 해결책으로 대두되면서 벌어진 가난의 가속화에 대해 다룬 책이다. 국가중심의 분배를 통한 소비 촉진과 경제 활성화를 의도한 케인즈주의의 실패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IMF 등의 세계 금융 기구는 개도국에 금융 지원을 해주는 대신 시장 개방과 국가의 통제 제한을 조건으로 달게 된다. 그렇게 무역 개방이 이뤄진 후 증가된 전 세계적 가난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아시아-아프리카의 고질적 가난이 더욱 심해진 것뿐만 아니라 개방을 통해 시장 혁신을 추구한 남미의 경제 붕괴, 선진국 내에서의 소득 격차와 상대적 빈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가 지지하는 시장개방이 경제성장을 위한 해답이 아님을 보여준다.
심화되는 가난의 해결책으로 저자는 분배와 성장의 균형을 말하고 있다. 완전한 시장의 자유화가 아닌 일정정도의 국가의 개입을 통해 제도의 성장과 부정부패의 척결,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안에서는 조세 개혁 등을 통해 부동산 등의 불로소득과 투기에 대한 제제를 가하고 금융의 공정성 회복을 통한 서민 경제 지탱, 비정규직 문제 등의 근로빈곤 해결,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 문제의 해결 등을 가난 극복의 방안으로 들고 있다.

머리로 사유하는 가난의 문제

풍부한 수치자료와 간결한 문구로 격찬 받고 있는 이 책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책이 나온 시기 이후 붕괴된 미국 금융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자. 그의 입장은 새로운 세계경제적 사건의 유무와 상관없이 단호하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이미 지적하였다.) 하나는 저자가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고 둘은 그가 저녁거리로 700원짜리 삼각김밥과 900원짜리 컵라면 사이에서 고민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는 것이다(확신은 못하지만 그러리라 짐작된다). 그는 가난에 빠진 세계를 치밀한 통계수치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냉철한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는 독자로서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독자들로서는 보편적인 문제점을 낳게 된다.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이 문고판임에도 읽는대 한 달이 걸렸고 간단한 독후감을 쓰는 대에도(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오늘까지 친다면) 한 달이 걸렸다. 물론 개인적으로 경제학 관련 서적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맑스의 정의감 넘치는 경제학적 분석과 밀의 인간애로 가득한 경제학 서적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는 단순히 경제학 관련 책이었기 때문에 싫은 것은 아닐 터이다. 마음을 울리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가난에 대한 논의가 실제 가난을 품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각종 통계와 책상 위의 자료들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가난에 대한 분석은 정말 가난해서 배를 곯는 사람이든 상대적으로 가난해서 움츠러든 사람이든 마음에 닿지 않는다. 이 책의 결말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해법의 출발점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라고 했지만, 정작 이 책은 그 지점까지 갈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할 사람은 같은 책상머리타입, 혹은 강남에 부동산을 갖고 있고 외제차를 굴리며 내년도 입안건을 생각하고 있을 정치 관련자들일 것이다. 만약 그런 정도로도 좋다라면, 그것도 좋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라고.

경제학과 행복의 관계

평생에 배부른 학자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외국인 여행자로 아테네 학당에서 공부를 했고 알렉산더의 스승이기도 했고 평생을 분쟁과는 거리를 두고 나름 편안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그가 윤리학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한 경제학적 바탕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고, 돈은 그 행복을 위한 수단이다’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 말은, 심지어 나름 배부르게 살다간 학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 말인 즉 경제학을 건설하는 토대, 그 출발점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가난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학은 중요하다. 행복을 위한 수단 중 하나인 돈이 모자라면 인간은 불행할 가능성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엇을 위해 이를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면, 그리고 그 논의를 바탕으로 시작되는 구체적인 세부분석의 과정에 있어서도 이 목적에 대한 고찰이 기거하지 않는다면, 방대한 자료도 적합한 처방도 의미를 잃게 된다. 목적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그렇게 흔들린 마음이 그 책을 통한 연대와 변화를 낳기 때문이다.
만약 가난의 문제가 단순히 누구의 이익도 걸리지 않은 퍼즐조각 맞추기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라면 저자와 같은 방법도 좋다. 퍼즐을 다시 맞춰서 되면 좋고, 안되도 다시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가난은 이기로 뭉친 퍼즐조각이다. 마치 주식을 나눠갖고 자신의 것을 뺏기지 않으려 하듯이 퍼즐 조각을 움켜잡고 있는 이들이 한가득이다. 즉, 가난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와 지극히 연관되어 있다. 스스로 증대해가는 자본의 흐름 속에서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사람들, 이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든 500억 달러 기부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또 다른 이익을 위한 수단이다. 강한 집념과 이기심,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의 문제를 때어낼 수 없게 만드는 인간의 마음이다.
맑스는 경제철학수고를 집필하면서 그 바탕에 인간이 누릴 행복을 끊임없이 꿈꾸고 있었다. 상품으로부터 분리된 생산자가 갖는 괴리, 노동에서 창조의 기쁨이 사라진 노동소외에 대한 분석은 새로운 세상, 좀 더 살만한 세상, 구조화된 이기와 소외를 극복한 유적존재들의 세계를 그려낸다. 자신의 경제학이 행복에 대한 수단으로서 집필된다는 것을 서술 내내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러한 노력은 가난에 빠진 세계를 뒤흔들었고, 한때나마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울렸으며, 설혹 그 결과가 방법적으로 실패했다 칭해지는 지금에도 그 의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마음을 울린 경제학의 힘이다.
밀이 자유론을 집필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라틴어를 땐 천재이자 공부벌레인 밀은 감정이 배제된 이성적 사유의 세계에서 메말라가고 있었다. 정신적 질환으로 죽어가던 그를 살려준 것은 감정, 헤리엇 테일러와의 사랑이었다. 그녀가 유부녀였든 뭐였든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밀의 머릿속에 공백으로 비어있던 ‘삶의 목적’을 채워준 것이다. 목적은 이성적이지 않다. 그것은 계산과 논리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그것을 행함으로, 그것을 추구함으로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정의 문제인 것이다. 새롭게 배운 행복 속에서, 밀의 자유론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이 책 속 구절들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화폭에 반한 이후의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마음 속 한켠에 간직하게 된다.
경제학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며,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 중 하나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행복은 마음의 문제이고 마음은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기에, 이 마음을 무시한 경제학은 인간을 움직일 수 없다. 설혹 가난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학이라 하더라도.

무엇이 가난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니, 다시 말해본다면, 무엇이 가난한 나를-그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무보증 월세 10만 원짜리 발 뻗으면 벽에 닿는 옥탑방에 살다가 지금은 애인들에게 얹혀살고 있는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공감, 그리고 같은 가난을 지고 가는 이들과의 연대이다. 공감은 가난으로 불행해질 수 있는 삶을 그럼에도 살아가게 만들 힘을 주며 연대는 그러한 가난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밥을 굶지 않을 수단을 마련해준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심한 가난은 잦은 우연으로 찾아온다. 가난한 사람은 문 앞에 버려진 어린 고양이를 쉽게 외면할 수 없다.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기에. 사치품이라 처리되어 보험처리도 안 되는 골절된 고양이의 수술비를 내고 나면 그의 통장잔고는 바닥을 친다. 그럼에도 그가 좌절해서 삶을 놔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기 위해 없는 와중에 자신의 돈을 조금씩 풀어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문제가 나타난다. 무엇이 가난한 그-나를 불행하게 만드는가. 그러한 가난으로 나타난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그는 불로소득도 없고 팔아치울 부동산도 없다. 결국 시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노동력을 팔게 되는가. 그 사회에서 활성화되어있는 시장이다. 그나마 그는 가난했던 부모가 아득바득 벌어들인 돈으로 약간의 교육을 받았고, 그 교육을 팔아서 가난한 그는 사교육, 그 중에서 요즘 돈이 된다는 10대 초반을 타겟으로 한 출판시장에 뛰어들어 저작권양도를 전제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책을 별다른 행복 없이 쓰게 된다. 그렇게 시장은 공급자를 획득하고, 그렇게 나타난 공급자는 자신의 자녀가 자신의 가난을 되물리지 않기 위해서 없는 돈을 쪼개 수요자가 된다. 시장의 수요공급이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행복의 수요공급은 하락세이다.
가난한 사람은 당장의 삶이 급박하여 지금과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꾸기 어렵다. 더한 가난은 자꾸만 찾아오고 그 가난들을 하나하나 기워 막다보면 한웅큼씩 시간이 흘러가있다. 결국 기존의 시장과 그 시장 안에서의 불평등은 유지된다. 가난한 사람은 평생에 걸쳐 그 가난 때문에 불행해질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난에 빠진 세계’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상식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그러나 ‘가난에 빠진 세계’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르게. 이미 구조의 구성품으로서 기능하는 그에게, 이미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거대한 세상의 틀에 대한 신사적인 이야기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알았어, 그래서? 하고 넘기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마음에 와 닿지 않으면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의 삶과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난에 빠진 세계’ 4쇄 기념 파티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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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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