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49
제목 역사는 길 위에 있다

2012 1월 10 - 12:31 익명 사용자





작가의 발길이 닿은 구석구석에는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 갔으나 수십 년 동안 암흑 속에 방치되어 온 이름 없는 조선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1945년 8월 15일, 식민지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였고,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2011년 12월 14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1992년부터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수요일마다 계속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1,000회를 맞이한다. 20년 동안의 절절한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맞은편 일본대사관 창문의 블라인드는 언제나 굳게 내려져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10대 소녀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히노마루(日の丸)’만이 여든을 넘긴 할머니들을 아래로 굽어보며 말없이 펄럭이고 있을 뿐이다. 할머니들에게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흔히들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로 치부해 버리거나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여기기 십상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도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들도 식민지 민중의 삶을 고스란히 견뎌 낸 어머니, 아버지의 역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이 자신들의 침략의 역사를 망각하고 은폐하려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를 잊고 사는 이들은 비단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 소중한 가르침을 얻기보다는 오로지 돈벌이에만 내달리는 천박한 이 사회의 망각과 무관심, 국가의 직무유기로 아직도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살아 온 역사를 말하지도 못하고 고통만을 가슴에 안은 채 하나둘씩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여기 이름도 없이 잊혀 간 식민지 조선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우리들의 망각과 무관심을 채찍하며 역사 속으로 그들 민중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소중한 노력이 있다.

 






야마구치현 우베시 초세이 해저 탄광
굴뚝 형의 탄광 구조물인 피어(Pier 탄광의 배기구이자 갱도의 물을 뿜어내는 배수구)로 해저 탄광 내에서 폭발이 일어나 일하던 노동자 183명(조선인 134명)이 수장된 곳이다.

사진가 이재갑은 16년 동안의 끈질긴 작업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들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어 강제노동으로 고통받은 일본 땅 곳곳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국전쟁 이후에 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또 하나의 한국인”), 한국전쟁 전후에 대규모로 민간인이 학살된 대표적인 현장인 경산 코발트광산(“잃어버린 기억”), 1910년부터 1945년 사이에 한국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식민지의 잔영1-한국 속의 일본풍경”) 등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동안 줄곧 소외되고 배제되어 온 역사 속의 기억, 그리고 그 속에서 잊혀 가는 사람들을 기록해왔다.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沖縄)섬의 요미탄촌(読谷村)에는 강제노동으로 죽어 간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세운 ‘한(恨)의 비’가 서 있다. 작가는 이곳을 찾았을 때 숙명적인 역사와의 만남을 경험하게 된다.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808번지’ 자신의 본적지와 같은 곳에서 끌려와 강제노동 끝에 돌아가신 희생자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약주를 한 잔 걸치신 할아버지께서는 일본으로 끌려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마을 사람들이 끌려갔다는 일본의 그 곳이 어디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으며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와 흥얼거림이 오키나와의 ‘한(恨)의 비’에 새겨진 조선인 희생자의 이름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살아있는 역사로 복원된 것이다. 식민지의 역사를 기록하는 이 작업이 자신에게 숙명으로 다가 온 순간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순간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물이 맺혔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에서 이 작업을 위해 배를 타고 떠났을 때는 아직은 조금 막연하기도 했고 알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것(혼자 떠나는 길이었기 때문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앞으로 이 작업은 막연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내가 해야만 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길 위에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이재갑 -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가 후쿠오카(福岡), 나가사키(長崎), 히로시마(広島), 오사카(大阪), 오키나와(沖縄)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어다니며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은 결실의 기록이다.



후쿠오카의 야하타(八幡)제철소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홍보관에는 당시 광부의 모습을 한 모형에 얼굴을 대고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 그 어디에도 이곳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간 조선인의 기록은 없다. 회색빛 작업모에 회색빛 작업복을 입고 있는 얼굴 없는 광부의 모습에서 작가는 ‘긴 칼을 옆에 차고 조선인을 노려보는 군관’을 떠올렸다. 근대 일본 철강 산업을 이끌어 왔다고 자랑하는 제철소의 홍보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을 일본 사람들을 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세이 해저 탄광 위령비
마을 앞에 있는 공동묘지로 해저 탄광에서 일했던 183명을 위한 위령비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조선인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지옥의 섬, 군칸지마(군함도, 軍艦島)’-공식 명칭은 하시마(端島), 군함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미츠비시(三菱)가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자랑하는 탄광이 있는 섬이다. 1910년대 중반 일본 최초의 철근 아파트가 들어섰고, 탄광 경기가 좋을 때는 도쿄 인구의 9배를 넘었으며, 섬 안에 병원, 학교, 영화관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섬이다. 1974년 폐광이 되어 무인도로 방치되었던 이 섬은 2009년 1월 일본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산업유산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세계유산임을 자랑하는 이 섬의 공식적인 역사 어디에도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당시 이 섬의 양 쪽 끝에는 강제연행된 조선인과 중국인의 숙소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저항할 것을 두려워하여 각각 섬의 양쪽 끝에 기숙사를 두었고, 작업시간도 서로 엇갈리게 하여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너무나 열악한 작업 환경이었기에 노동자들에게는 ‘지옥의 섬’, ‘감옥의 섬’으로 불렸던 이 섬에서 저 멀리 눈에 보이는 육지를 향해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은 거의가 물에 빠져 죽거나 일본인 관리자에게 붙잡혀 맞아 죽었다. 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 숙소에서 언제 돌아갈지 모를 고향 땅을 그리며 고된 노동에 신음하던 조선 사람들의 설움이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에 실려 오는 듯하다.



작가의 발길이 닿은 구석구석에는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갔으나 수십 년 동안 암흑 속에 방치되어 온 이름 없는 조선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해저 탄광의 사고로 수장된 채 죽어간 사람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굴뚝 아래에서 아직도 신음하고 있으며, 낯선 땅의 무연고 납골당에 방치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희생자들은 고향에 들르지 못해 저승길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비석하나 없이 발길에 채일 듯한 작은 돌무덤으로 남아있는 조선 사람들의 묘지, 그들이 남긴 동굴 벽면의 선명한 곡괭이 자국은 가혹한 노동의 증언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작가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땅에 남겨져 지금 이 순간에도 차별과 싸우면서 고난을 희망으로 일구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의 삶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삶터를 빼앗길 위기에 맞서 당당하게 지켜낸 우토로의 고즈넉한 풍경과 일본 땅에서 민족학교를 지켜 온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힘찬 기상에서 ‘상처 위로 핀 풀꽃’처럼 고난의 역사를 이겨낸 희망을 발견하였는지도 모른다.

 



후쿠오카 조선 초중급학교
2004년 4월 이전까지 사용하던 후쿠오카 조선 초중급학교 운동장으로 우리 정서가 스며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우렁찬 기상과 힘이 느껴졌다. 현재는 기타큐슈 오리오 역 근처로 이전했다.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기억하는 증인들이 하나둘씩 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지금, 이제 역사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우려는 자들, 숨기고 망각하려는 자들에 맞서 고난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복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역사 속으로 불러내는 일은 우리들 산 자들의 몫으로 돌려졌다. 상처위로 핀 풀꽃의 역사를 찾아 또 다른 길을 떠나는 작가와 함께 나도 기꺼이 동행의 길을 떠나련다.





전시: 평화박물관 space99(1월 11일~2월 1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99-1, www.peacemuseum.or.kr, 02-735-5811~2)





김영환

우리교육. 2011 겨울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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