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46
제목 다시 강정마을 구럼비 너럭바위에 서서

2012 1월 4 - 17:30 익명 사용자

강정 중덕 바닷가에 1km 넘게 한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구럼비 그 너럭바위를 맨발로 걸어보셨나요?

바위에 드러누워 그와 연인처럼 다정히 숨결과 온기를 나눠 보셨나요?

부드럽게 감겨오는 그 다정한 안온함을 온몸으로 느껴 보셨나요?



바닷가 끝자락 평평한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파도가 전하는 바람의 말을 들어 보셨나요?

그 바람과 파도가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한라산은 그윽히 당신을 품듯 바라보고 있지 않나요?

... ...



김경훈, “어느 하늘 아래 땅 위에 이처럼”(부분),

김경훈 강정문편 江汀文片 <돌멩이 하나 꽃 한송이도>







2011년 7월, 구럼비 너럭바위에 서서



 

최병수 작가의 솟대들

올 해 초부터 강정마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생명평화결사’가 100일간의 순례를 시작하려고 찾은 강정마을에서 상황이 너무 심각하여 전국 순례를 일단 연기하고 강정에 눌러 앉았다는 이야기며 강정마을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구속되었다는 이야기, 해군기지 공사 강행을 위해 강제진압이 조만간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2008년 여름, 그러니까 3년 전에도 평화박물관 평화기행 길에 강정마을을 찾았다. 400년이 넘게 사이좋게 지내온 마을 공동체가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집과 반대하는 집들로 갈라져, 집집마다 걸려있던 태극기와 ‘NO 해군기지’의 노란 깃발.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둘로 가른 깃발들이 바람 거센 마을 하늘의 여기저기에서 펄럭이던 모습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구럼비 바위를 지키고 있던 최병수 작가의 솟대와 방사탑이 강정바다의 거센 물결과 찬바람을 이겨내고, 부디 이 구럼비 바위를 잘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만을 남겨두고 발길을 뒤로 했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쩌다 한 번 그 곳을 찾는 뭍사람들에게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의 나날들이었을지도 모를 3년의 시간이 강정마을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으리라.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려는 자들이 육중한 포크레인을 몰고 들이닥칠라 치면 마을에는 전쟁 때와 같이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들판에서 바다에서 일하던 주민들은 농기구를 내려놓고 그들과 맨몸으로 맞서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와야 했다. 너무도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뭍사람들에 제주도는 과연 어떤 섬인가?



마음 한켠에 무거운 짐을 안고 보내던 지난 7월, 다시 강정마을 찾았다.

피스보트를 타고 뭍에선 온 250여 명의 사람들이 강정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하기 위해 찾은 길이었다. 전날 서울에서 경찰청장이 서귀포 경찰서를 찾아 강경진압을 지시한 다음 날이라 긴장감이 한층 더하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함께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일정을 변경하여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주 섬을 찾았을 뭍의 아이들이 제주 섬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다는 ‘일강정’의 아름다운 바다와 구럼비 바위의 넉넉한 품을 느껴보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구럼비 바위(좌)와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강정 앞바다를 메울 콘크리트 삼발이(우)

마을 입구에서부터 경찰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임시 천막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강정 바다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 키 몇 배나 되는 콘크리트 삼발이가 바닷가로 가는 길에 육중한 몸집을 드러내고 길게 줄지어 있다.

구럼비 바위에 닿으니 해군기지 반대 싸움의 ‘아이돌’로 유명해진, 중덕 바닷가 이름을 딴 개 중덕이가 가장 먼저 반갑게 우리들을 맞는다. 바람 거센 바닷가에서 먹고 자며 구럼비를 지키고 있는 활동가들의 천막과 간이식당이 힘겨운 이곳에서의 삶을 말해 주는 듯하다. 구럼비 한 구석의 작은 천막에서는 문정현 신부님이 다소곳이 서각을 파고 계신다. 대추리 황새울에서 나오신 이후에 마음을 추스르려 시작하셨다 한다. 대추리에서 용산으로 그리고 다시 구럼비로 언제쯤 신부님이 길 위가 아니라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실 날이 올까...

제주 올레길 가운데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올레 7길이 이 곳 구럼비 바위를 앞에 두고 지나고 있다. 올레길을 따라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이 마련한 난장이 서 있다. 구럼비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나뭇조각에 정성스레 담고 있는 사람들, 바닷가에서 주은 나무조각들과 조가비들로 목걸이를 만드는 아이들, 시시각각 이 곳의 상황을 전국으로 세계 곳곳으로 인터넷으로 알리는 사람들, 한 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냉커피를 나누는 사람들, 바닷바람 시원한 평상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평화마을 강정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이곳을 찾기 전에 짐짓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왜 이런 평화의 마을을 그대로 두지 않는가. 바람과 파도와 구럼비 바위가 이곳을 유유히 거니는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진 모습을 왜 가만두려 하지 않는가.



가끔씩 올레꾼들이 지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다가가 해군기지를 막아내자며 이 아름다운 올레길을 지키자며 서명을 받느라 열심인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치는 사람들. 그 들의 등 뒤로 외치는 절절한 목소리가 너무도 쓸쓸하게 들려온다.

“올레길 걸을 자격 없다!”

그들이 만끽하는 제주 섬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과 이곳에 살고 있는 제주 사람들의 삶과 아픔은 어떤 이어짐도 없는지 모른다. 마치 TV속의 한 장면처럼...

 

까맣게 그을린 홍기룡 위원장(오른쪽)

임시로 마련된 대책위원회 사무실 구석에 앉아 있던 홍기룡 형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반색을 하며 맞아 준다. 가슴에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큼지막히 적힌 가슴띠를 두른 홍기룡 형은 ‘제주군사기지 반대 및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에서 행사가 있으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늘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 제주로 가시곤 했다. 작년 가을 인사동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 봄부터 바닷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지내느라 검디 검게 그을린 얼굴이 안쓰럽다. 성산 일출봉 아래의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다녀온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지내기에 힘들지 않았느냐 물으니, 비가 내리면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오히려 비가 반갑다며 예의 구수한 제주말로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구럼비 바위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신부님께서 “지금 감옥에 잡혀 간 사람들, 앞으로 잡혀 갈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을 잡아가는 경찰들, 공사를 강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며 인사하신다. 그 이야기를 웃으며 함께 듣다가 신부님께서 싸우는 사람들이 빨리 잡혀 가야 이 강정마을 싸움이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 하셨다며 형이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말없이 그냥 형의 두 손을 꼭 쥘 수밖에 없었다.

 

강정마을 생명평화미사

구럼비 바위를 배경으로 콘서트가 열리고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건네고 모두들 맨발로 구럼비 바위를 거닐어 바닷가로 나아간다. 이렇게 큰 바위가 하나의 몸뚱이로 이루어진 한 장의 바위라니 감탄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로 향하는데 발밑 바위틈으로 새하얀 소금가루가 눈에 띈다.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혀끝에 대어보니 짠 맛을 머금었지만 결코 짜지 않고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한 자연의 맛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대로 두기만 해도 바다와 태양은 어리석기만 한 인간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는데...



강정 앞바다의 구럼비 바위에 서서 범섬을 바라보며 뭍에서 간 모든 이들이 한껏 손을 벌리거나 두 손을 모아 이곳의 평화를 기원했다.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구럼비 바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범섬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일까.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먼 바다 만을 바라볼 뿐... 일본에서 온 평화운동가 마사키 씨의 고동 소리가 먼 바다로 애처롭게 울려 퍼질 뿐이다. 뿌~뿌~뿌~.

 

피스보트를 타고 강정마을에 모인 사람들

홍기룡 형과 구럼비 바위에 서서 어깨를 걸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저 몸조심하시라는 인사를 건네며 옮기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강정에 다녀와 페이스북에 미안한 마음을 몇 자 적었다.



강정에 다녀왔다.



다시는 구럼비 앞의 눈부시게 푸른 강정바다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 곳엔

이 세상 다른 어느 곳보다

평화로운 마을,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먼 남쪽 끝 강정의 평화를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할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지금 강정을 외면한다면

우린 두 번 다시 그 바다 앞에 설 수 없다.

 

 

지난 9월 2일 새벽, 홍기룡 형은 경찰에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이 땅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지금 강정은 이 땅의 가장 고통받는 곳이고 따라서 강정주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신념이며 신앙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후로도 평화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계속해서 나의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 홍기룡, 9월4일, 영장실질심사 최후진술에서







2011년 9월, 다시 강정에 서서...





9월3일 평화비행기를 타고 다시 강정을 찾았다. 바로 하루 전날인 9월2일 새벽 5시, 육지에서 대규모로 보내진 경찰은 강제진압을 벌여 해군기지 공사장 주위를 둘러 펜스를 설치했고, 그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연행해 갔다. 홍기룡 형도 예상대로 연행되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공항에 내리니 지난 제주 여행을 안내해 준 강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올 줄 알았어.”

강 선생님의 한 마디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지난 7월에 강정마을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생태관광을 안내하는 강 선생님의 사회적 기업에도 행정당국으로부터 갖은 압력이 가해졌다고 한다.

어제부터 갈 수 없게 된 구럼비 해안 바로 앞까지 법환포구에서 시작하여 올레길을 걸었다. 드디어 강정천에 다다르자 개울 저편으로 강정천을 따라 경찰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개울 이쪽에서 강정천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계의 눈길을 건네며 무전기를 쥐고 감시하고 있는 ‘견(犬)찰’들의 모습, 젊은 전경들이 개울을 따라 무표정한 얼굴로 띄엄띄엄 서 있다. 올림은어가 춤춘다는 천혜의 큰내(江汀川)에서 발걷고 더불어 물놀이를 즐기기는커녕 아무런 죄도 없는 시민들을 감시하며 줄지어 서 있는 무표정의 젊은이들을 보며 서글픔마저 들었다.



올레길을 마치고 평화콘서트가 열리는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한 무리의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해군기지 공사현장을 따라 새까맣게 진을 치고 있다. 그 뒤로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처럼 높다란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이제는 소통을 거부하는 이 시대의 슬픈 상징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명박산성이다. 그 옆으로는 아주 낯익은 저들의 전매특허, 사람하나 다닐 수 없게 촘촘히 앞뒤를 맞댄 경찰 버스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다.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현수막에 주민들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강정마을 폭력진압 제2의 4.3 도발하는 육지경찰 물러가라!!”

1948년 제주 섬을 피로 물들인 학살의 상처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제주 사람들에게 저들은 제2의 4.3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아 서로 지금도 그 때 일이라면 쉬쉬하며 지내는 제주 사람들에게...

뭍에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낯익은 풍경이 되어 버린 폭력 경찰의 육중한 방호복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모습이라고 옆에 있던 제주 분이 귀띔을 해 준다. 저렇게 다리에 뭔가를 차고 무장한 경찰들을 제주에서는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63년 만에 또 다시 뭍에서 온 토벌대, 저들은 아는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마을 운동장에 들어서자 아주머니들께서 나와서 앉아 계신다. 뭍에서 온 사람들을 반기러 부러 나오신 것이다. 절을 하는 어린이들에게 박수를 쳐 주시고, 올레길을 걸어 온 사람들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신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데... 너무 송구하고 죄송하여 인사를 받기가 부끄럽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에 얼마나 지치고 시달리셨을까, 표정 없이 끄떡도 안 하는 폭력 경찰과 중기계 앞에서 맨몸으로 맞서온 강정의 어르신들, 사람들이 잡혀가고 소환장이 날아오고 또 얼마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계실까. 마음이 아려온다.

멀리서 풍물대의 풍악소리가 울려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신다. 역사 속의 지독한 슬픔을 춤과 노래로 감내해 온 섬사람들의 억척스러움과 강인함이 눈물겹다.

곳곳에서 강정으로 모인 이들의 한바탕 대동놀이가 끝나고 평화의 기원을 담은 풍등이 저 멀리 강정마을 밤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이는 밤 그 밤별들을 친구삼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등으로 서늘한 땅 기운이 스며들어 아침이슬을 털고 잠에서 깨었다. 마을에 경찰들이 진입하여 구럼비 바닷가에 있는 활동가들을 끌어낼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에 들어서니 흡사 전쟁터와 같이 경찰들이 모든 골목을 가로막고 있다. 한가한 바닷가 마을의 일요일 아침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살풍경이다.

어렵게 샛길을 찾아 밭고랑 사이를 헤매고 구럼비 근처까지 닿았다. 저 멀리 망루가 보인다. 활동가 한 분이 쇠사슬을 몸에 걸치고 저항하고 있다는 망루가 바로 저기 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경찰들이 밭고랑 사이를 가로막고 나타난다. 괴로운 표정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왜 내 마을도 마음대로 못 다니느냐며 항의하는 마을 주민의 목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자신들도 괴롭다는 듯 경찰들은 고개를 숙이고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라며 손짓을 할 뿐이다.

샛길이 뚫려 당황하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여기저기 밭에서 무전기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경찰들이 뛰어 다니며 길을 막고 있다. 돌아오는 길을 잃어 헤매는 우리들에게 마을 아주머니 한 분께서 나가는 길을 알려주신다. 큰 길까지 일러주시며 건네주시는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가 외려 죄송스럽다.



일요일 오전, 마을 삼거리에서 미사가 봉행되었다. 엊그제 연행되었다가 풀려나오신 신부님의 말씀도 있었다. 열 두 시간을 경찰에 포위되어 꼼짝도 못했다는 이야기 가운데,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여 여경들이 지키고 있는데 용변을 해결해야 하는 치욕마저 당하셔야 했단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문정현 신부님의 절규는 오늘도 내 가슴을 후벼 판다. 신부님을 뵐 때마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대추리에서도 용산에서도 그리고 이 곳 강정에서도 나는 한 번도 신부님께 인사를 드릴 수가 없었다.

미사를 올리는 도중에 뒤쪽에서 마을 어르신 한 분이 큰 소리로 성을 내신다.

“여기가 내 땅인데 왜 사람들을 못 나오게 하느냐.”

미사를 올리는 사람들이 도로까지 나오자 경찰이 안으로 들어가라며 제지를 한다. 보다 못한 마을 어르신께서 이 땅은 내 땅이라며 목청을 높이신다. 3년 전 강정을 찾았을 때도 밭에서 일하다가 오셔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열성적으로 말씀을 해 주시던 어르신이다.



“왜 경찰 안 데리고 가?”

미사를 마치고 강정을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늘 그 곳을 찾을 때면 드는 마음이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겁다.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서귀포로 가는 어르신들이 제법 계셨다. 어디에서 왔느냐며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으시는 할머니들 손을 꼭 쥐어 본다. 다음에 또 올게요. 힘없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대답할 뿐이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천천히 말을 건네신다.

“서울서 왔어? 많이 왔는데 왜 경찰 안 데리고 가?”

흠칫 놀라 어물쩡 어물쩡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9.11테러가 일어난 뒤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시작했을 때,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가려했던 일본 본토의 학교들이 잇따라 취소를 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그 때, 오키나와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본토 사람들은 미군기지가 있어야 일본이 안전하다며,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존속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군이 절대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기지가 있어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군대도 민간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본군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의 뜻이라면 한국 정부 못지않게 굽실거리는 일본 정부도 헤노코(辺野古)의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15년 동안 주민들이 저항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뜻에 반하여 경찰을 비롯한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한 적이 없다.



“평화의 섬” 제주와 해군기지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본군에 의해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섬 곳곳에 무수한 상처를 입은 제주섬이, 4.3의 생채기가 채 아물지도 않은 제주 사람들이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지금 싸우고 있다.







김영환(평화박물관 활동가)

역사교육 2011 가을 94호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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