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86
제목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
2008 12월 26 - 17:36 익명 사용자

평화와 음악 4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



평화가 여러 주체들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음악만큼 그 본질에 있어서 평화를 지향하고 구현하는 예술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통 서구예술음악이 가장 중요한 음악요소로 내세우는 화성도 성부간의, 각 음들 사이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동양의 예악사상의 악, 즉 음악도 화(和)와 대동(大同)을 목표하는 것이다. 여러 주체들이 자존과 위세와 이익을 앞세우면 갈등하고 반목하고 투쟁하게 되지만 상호 이해와 양보와 공생을 도모하면 모두가 조화하고 화락할 수 있다는 평화의 원리도 음악에서 남김없이 반영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발악이 극에 달했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고 그 발악은 일시에 강제진압되었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폭을 사용했지만, 그 피해와 참상은 너무 끔찍하여 다시는 인류에게 원폭을 사용해서도 원폭이란 것이 존재해서도 안된다는 전세계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히로시마라는 한 도시가, 이십만 명의 사람이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필자도 막연히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역사 시간에 배운 세계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하고 있다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가서 당시의 히로시마의 원폭 직전과 직후의 도시 전경 사진을 보고는 그 참상에 치를 떨게 되었다.


 

 
마루키 이리(丸木位里)/마루키 도시(丸木俊) <원폭의 그림> 15부 연작 가운데 제2부 <불>

만일 내가 사는 도시에 원폭이 떨어져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꼼짝없이 모두 같이 죽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의 당황과 공포와 전율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사랑하는 자식이 죽는 것을 상상하는 만큼이나 힘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상상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주는, 원폭 투하라는 한계적 상황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을 오늘 소개하고 싶다.



음악사에서 19세기의 폴란드는 쇼팽을 낳았고 20세기의 폴란드는 펜데레츠키를 낳았다고 말할 정도로 1933년생의 펜데레츠키라는 이 작곡가는 위대한 사람이다. 필자는 이런 사람을 생각하면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다. 너무 잘나서 질투가 나기 때문이다. 잘나고 위대해지는 일은 이제 포기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이런 사람들은 날 불편하게 한다. 펜데레츠키는 예술적 성취와 세속적 성공을 모두 거둔 사람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의 그의 위명에 맞설 사람은 몇 되지 않을 정도의 명성을 누렸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부까지 얻은 것이다. 허리 둘레가 56인치나 되는 이 사람이 폴란드에서 고액 납세자로 몇 손가락 안에 들고 그의 자택에서 파티를 열면 최소 5개국 이상의 수상들이 모이고 다름슈타트 음악축제 같은 국제적 음악행사들까지 주최하고 재정적 지원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생애는 성공가도만을 달렸다. 크라코프 음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본격적인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26세 되던 1959년에는 폴란드 작곡가협회가 주최한 작곡 콩쿨의 3개 부문 전부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전기(前期) 대표작인 <성 누가 수난곡>은 1965년에 완성되어 1966년에 지역 대성당에서 연주되었고, 1972-79년에는 모교 크라코프 음악학교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1973-78년에는 예일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1980년에 작곡한 <테 데움>은 조국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헌정되었고 로마 작곡대상을 비롯한 상이란 상은 전부 휩쓸었으니 실로 천재라 아니 부를 수 없는 사람이다.



한편 그의 교향곡 5번은 “한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고, 백건우, 정명훈 같은 한국 음악가들과도 협연하고 내한공연을 한 적도 있으며 그의 수제자로 한국인 청년이 지목되는 등 펜데레츠키는 유달리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곡가이기도 하다. 주변의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여 힘들게 살아온 폴란드와 한국의 지정학적,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펜데레츠키는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듯도 하다. 한편 초기 펜데레츠키는 사회성이 강한 참여주의적 예술가이기도 하였다. 그런 펜데레츠키가 12세 되던 1945년에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목도하였고, 그 15년 후인 1960년에 오늘 소개하려는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 Threnody for the Victims of Hiroshima>를 작곡하였던 것이다.



그의 작곡 생애의 초기 작품인 이 곡은 덩어리음-음괴(音塊, tone cluster)라는 기법을 사용한 전위적 작품이다. 전통적 화성이나 선율의 개념을 완전히 버리고 일정하게 단락 진 소리덩이를 52개의 현악기가 합주하는 이 음악은 音樂이 아니라 차라리 音愕, 소리놀람이다. 원폭 투하의 순간에 히로시마의 주민들이 느꼈을 극한의 공포와 전율과 경악과 참혹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소리들이 약 10분간에 걸쳐 우리의 귀와 온 몸을 장악한다. 그러므로 이 음악의 내용 자체는 평화와는 오히려 정반대이다. 다만 비참함의 끝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함으로써 평화를 갈구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루키 이리(丸木位里), 마루키 도시(丸木俊) <원폭의 그림> 15부 연작 가운데 제5부 <소년소녀>

다가올 대재앙을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트레몰로로 시작하여 폭격기의 음산한 비행음과 원폭 투하 직후의 섬광과 버섯구름을 그려내는 강렬한 포르티씨모의 음향,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비명과 절망의 탄식이 메아리치는 지옥 같은 광경, 핵폭풍이 휩쓸고 간 후의 폐허가 주는 처연한 적막감—작곡자가 꼭 이런 것을 묘사하고자 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이런 것들이 이 음악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어떤 음악가나 네티즌은 밤에 불을 끈 방에서 이 음악을 들으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고 권하기도 한다.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크지쉬토프 펜데레츠키 Krzysztof Penderecki’ 혹은 ‘Threnody’라는 검색어를 치면 적잖은 수의 관련 블로거에서 이 곡을 들을 수 있다.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권한다.



* 음악을 들으시려면 아래사이트를 참조하세요

http://blog.naver.com/ayaysir0?Redirect=Log&logNo=20044756782



필자 약력

1954 대구 生

서울대학교 성악과 졸업 및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2-2004: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대) 작곡과 음악학전공 전임교수 역임

한국음악학學會 부회장 역임

민족음악협의회/대구민예총 이사

평화박물관 운영위원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19
조회수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