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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빚어진 정권교체의 흔적
작성일자 2018-08-16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빚어진 정권교체의 흔적

지난 3월 28일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 관련 한겨레신문 임종업 기자의 블로그에 있는 글을 소개합니다. - 평화박물관



제주 4.3평화기념관에서 빚어진 정권교체의 흔적



2008/04/18 09:40



제주4·3평화기념관은 인상적이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에 들어선 이 기념관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청나라 관료들이 쓰던 모자다. 혹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등장하는 마징가Z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기념관이 반으로 쩍 갈라지면서 독수리 5형제가 솟아오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든 이 기념관은 ‘공간’ 컨소시움에서 설계 건축한 것으로 4·3사료를 담는 거대한 그릇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사료부족을 장점으로 승화



지난 13일 들른 기념관 지하 1층 상설전시장에서는 가방을 둘러맨 학생들과 아이와 함께 온 학부모가 삼삼오오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었다. 상설전시장은 1949년 발생한 4·3의 경과를 시간순서에 따라 전시한 공간으로 ‘역사의 동굴’ ‘흔들리는 섬’ ‘바람타는 섬’ ‘불타는 섬’ ‘흐르는 섬’ ‘새로운 시작’ 등 6개의 관으로 구성돼 있다.



특징적인 것은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스크랩과 설명문이 많고 목격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많다는 점. 사건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나도록 쉬쉬 묻어둔 탓에 당시 정황을 말해주는 유물들이 대부분 멸실됐기 때문이다. 불탄 집, 피난했던 돌담, 유골이 발굴된 다랑쉬굴 등 모형 또는 재현물이 많은 것도 그런 탓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작가들의 회화, 미디어설치, 영상애니메이션, 부조, 조소 등 대형작품을 곳곳에 설치해 사건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사료부족의 단점을 되레 장점으로 승화시킨 획기적인 방식으로 꼽힌다.



감쪽같이 빠지고 가려진 작품들



출품 작가들은 박재동, 강요배, 고길천, 박불똥, 정용성, 문경원, 주재형, 오석훈, 김창경, 이가경, 김대중 등 11명. 제주특별자치도 쪽에서 발행한 안내책자에는 그렇게 나와있다. 하지만 만화가 김대중의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3관인 ‘바람타는 섬’ 가운데 ‘미군정, 강경방침으로 선회’라는 패널설명 맞은 편 벽에 설치하게 돼 있던 <오라리 사건과 제주 메이데이>라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자리는 벽색으로 칠한 베니어판으로 감쪽같이 가려진 채 텅 비어있지만 전시패널에 시선을 준 관객들은 빈 벽을 등진 채 다음 전시물, 즉 미군에서 조작한 ‘오라리 사건 기록영상’으로 걸음을 옮기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해 5월 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을 무장대의 소행으로 기록한 미군 쪽의 영상자료는 미군 쪽에서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사실은 군경 쪽에서 일으킨 것이며 배후에는 미국정부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이다.



김대중의 작품이 통째 빠진 데 비해 박불똥의 작품 <행방불명>은 일부가 가려진 채 전시 돼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 작품 역시 4·3의 폭력 진압 배후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서 작품의 한 가운데 콜라주된 이승만의 일러스트가 검은 판으로 가려져 있다. 또 설치작품의 측면에 비추게 돼 있는 이승만씨의 제주도 방문 사진 빔영상은 아예 꺼놓고 있다.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기는 마찬가지다.



두 작가의 말



“작품 설치공사를 맡은 업체 쪽에서 전화가 왔어요. 작품에 문제가 있으니 손을 봐 달라고요. △군인과 경찰이 악인으로 희화화돼 있다 △작품의 색조가 붉은 색으로 돼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백악관이 들어있는 점을 지적했어요. 제 작품이 조금 센 것을 사실이에요. 하지만 고칠 이유가 없다고 봐요.” 김대중씨는 당시 인면수심의 군경을 희화화한 것은 당연하고, 작품의 붉은 기운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피로 얼룩진 당시 정황을 상징한 것이며, 백악관은 미국의 개입한 정황을 만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 작품의 세 가지 이미지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옥에 갇힌 사람들’에 쓰인 여순사건 때 이미지와 빔으로 쏜 이승만의 제주도 방문사진이 1952년도의 것이어서 사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에요. 시신들 가운데 이승만 일러스트도 온당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세 이미지는 착오가 아니라 4·3과 무관치 않은 뿐더러 의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쓴 것이거든요. 이미지를 웹에 올리고 실제로 설치하는 과정에서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이러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대체하느니 차라리 빼는 것이 옳다고 봐요.” 박불똥씨의 반응이다. 박씨는 또 자신의 작품이 그런 식으로 가려진 채 전시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기념관과 자문위 쪽의 말



기념관의 전시와 관리를 맡고있는 4·3사업소 쪽의 설명은 다르다.

“작가들한테 작품을 의뢰할 때 정부에서 채택한 공식 진상보고서에 준해서 해 달라는 뜻을 분명히했어요. 거기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 들어있으면 당연히 수정보완해야지요. 민간 전시라면 다소 넘나들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4·3기념관은 관에서 운영하는 것이거든요. 오해의 소지는 없어야 합니다.” 진창섭 소장의 말이다.

전시 기획·자문위원인 박경훈씨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익의 공세가 심해지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기념관 전시의 특징은 작가들의 작품으로써 60년 공백과 사료 부족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애초 그런 방식의 도입에 민관이 모두 합의하고 시작했어요. 김대중씨 작품은 오라리 사건 조작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게 정황적으로 확실한 데 실제 사료가 없으므로 만화의 형식으로 커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 전에 있었던 작가와 전시기획팀 사이의 수차례 워크숍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원인과 해결책은?



이런 사태에 앞서 뉴라이트의 공세가 있었던 것은 사실. 뉴라이트 쪽이 올 3월 펴낸 대안교과서에서 4·3사건을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반란, 북한 김일성의 국토완정(완전정복)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기술했으며, 재향군인회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90여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국가정체성국민협의회에서도 3월말 전국 일간지에 광고를 내어 “평화기념관이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서술된, 날조·왜곡된 내용을 근거로 전시물을 제작하면서 남로당 폭도들의 만행을 축소·은폐하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부의 공식보고서조차 날조된 것으로 몰며 기념관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중립적 인사가 제시한 해결책은 이렇다. “4·3사건의 유족들이 그 작품을 보지 못했어요. 우익뿐 아니라 유족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서 평가하는 기회를 가진 뒤 전시 여부를 결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또 다른 인사의 말이다. “창작의 자유는 존중돼야 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갈등을 부를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사건의 피해자인 유족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쪽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상설전시관의 끝관인 ‘새로운 시작’ 말미. 비디오 단말기에는 지난 2003년 10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발언이 반복되어 틀어져 있었고, 길다란 출구 좌우에는 화해와 상생의 염원을 적은 쪽지가 무수히 달려있었다. 새 정부 들어 벌어지는 일련의 매카시즘 선풍은 4·19 직후 만들어진 4·3위령비인 ‘백조일손비’가 5·16 직후에 박살난 것을 떠올리게 한다.





* 출처: http://blog.hani.co.kr/dreamingmoon/15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