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파병 40주년
작성일자 2018-08-16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파병 40주년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파병 40주년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의 활동을 돌아보며
 

윤충로
한성대학교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원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운영위원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 전쟁은 한반도의 분단을 공고화했던 ‘한국전쟁’이며, 또 한 번의 전쟁은 1965~1973년까지 8년여에 걸쳐 반공의 십자군 이름으로 수행된 ‘베트남전쟁’이었습니다. 두 전쟁 모두 한국사회를 뒤흔든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한국사회는 아직도 전쟁의 여진(餘震)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전쟁, 냉전이념, 군사주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경험했던 전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념, 군사주의, 경제성장 등으로 정당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작아 큰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인원 32만여 명이 참전하였고, 5,000여 명이 전사하였으며, 11,000여 명이 부상당한 베트남전쟁은 한국사회에서 잊힌 전쟁이 되어버렸고, 전쟁의 상처 역시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올해로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30년, 최초로 베트남에 전투병을 파병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세월을 약으로 삼아 망각의 강물 속에 흘려보낼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딱지가 앉았다고 할지라도 몸에, 기억 속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전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포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젠 사회에서 잊혀져 ‘그들만의 전쟁’이 되어 버린 고통스런 전쟁의 유산을 ‘우리의 전쟁’으로 감싸 안고, 진정으로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때입니다.



전쟁의 상처를 돌아보며
베트남전 종전 30돌, 한국군 참전 40돌 기념 강연회
또 하나의 전쟁 - 전쟁의 기억과 상처




 

  



올해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나와우리’와 더불어 전쟁의 상처를 돌아보기 위한 작은 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4월 25일에 있었던 「베트남전 종전 30돌, 한국군 참전 40돌 기념 강연회」였습니다. 이 강연회는 베트남전쟁의 상처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 속에 녹아 있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전쟁을 둘러싼 ‘큰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꼈던 것,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들의 몸과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전쟁의 모습을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잊고 지낸, 아니 외면했던 지난 전쟁의 현재 모습을 직시하려는 시도였으며, 더 이상 전쟁이 남겨놓은 고통스런 짐을 개인과 그들의 가족만이 짊어지고 가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토론회의 첫 발표자는 김영만 선생님이었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베트남전쟁 당시 자신이 사살했던 포로에 대한 기억으로 아직도 고통스러워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사살한 포로의 어머니가 죽을 들고 찾아 왔을 때 선생님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벌어졌던 베트남전쟁, 부산항에서 출발하여 베트남까지 가는 배 안에서 침묵으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대신 드러냈던 참전장병들에게 베트남전쟁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을까요? 김영만 선생님은 전쟁의 공포와 슬픔, 그리고 지금까지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상처를 들려 주셨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는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 단체연합 정책국장인 우석균 선생님이었습니다. 우석균 선생님은 ‘고엽제와 베트남전쟁’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고엽제 환자들에게 베트남전쟁은 현재도 계속됩니다. ‘슬로우 블릿’(느리게 날아오는 탄환)으로 불리는 고엽제 문제는 현재에도 참전군인들의 건강을, 나아가서는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는 직접적인 병증을 보이는 고엽제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까요?



우석균 선생님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지만 임상심리학자이신 조용범 선생님께서는 전쟁으로 인한 외상(Trauma)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흔, 그러나 끊임없이 떠오르는 전장의 기억과 고통들, 그 속에서 아직도 베트남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지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MBC의 김영호 피디님은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점과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쟁에는 왜 갔고, 누가 갔으며, 그들이 느꼈던 전쟁은 어떤 것이었을까? 김영호 피디님은 베트남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참전군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기억들과 침묵함으로써 기억의 고통으로 피하려고 하는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베트남전쟁의 상처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개인의 고통을 사회화하려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4월 25일의 토론회는 베트남전쟁의 상처를 사회적인 문제로 가시화하려는 작은 시도였으며,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로 활발한 토론과 논의가 가능했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한국사회 - 제1회 심포지엄
정신의학자가 본 전쟁의 상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용어일 수 있습니다. PTSD는 “인간의 의지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파국적, 압도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이후에 나타나는 정신병리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전쟁, 고문, 강간, 목숨이 위협당하는 끔찍한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납니다. PTSD에 노출되게 되면 우울, 불면, 정신적-감정적 마비, 알콜중독, 자살, 사회적 부적응,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 다양한 병증이 나타나게 됩니다.



1988년 미국 의회 보고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가운데 30%가 PTSD를 경험했고, 그 중 15%는 그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일한 전장에서 전쟁을 경험했던 한국군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PTSD에 대한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PTSD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은 개인의 성격문제로 돌려졌고, 사회적인 관심이나 치유의 필요성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4월에 1차 토론회 이후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전장의 악몽과 정신적 상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의학자가 본 전쟁의 상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기획하였습니다. 사실 사회문제에 대한 정신의학적 접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PTSD를 공식적인 의제로 설정하고 베트남전쟁 문제를 다루는 것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뜻있는 정신의학자 선생님의 참여와 도움, 관심있는 분들의 배려로 심포지엄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심포지엄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10월 7일 개최하였습니다.



첫 발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정혜신 선생님이 진행해 주셨습니다. “악몽에 시달려요. 내가 시체가 되어 있고, 그 얼굴이 나에게 달려들더라고요. 폭탄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나기도 했어요”. “도와달라고 외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나는 그리로 가지 못했다. 내 다리가 그쪽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나는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분노하면서… 나라는 인간은 그 당시 그 현장에서 이미 썩어 없어져버렸다. 나는 거기서 드러누워 버렸고, 그 후 일어날 수 없었다”. 정혜신 선생님은 피면담자들의 고통스런 고백을 눈물로 청중들에게 옮겨주셨습니다. 피면담자의 고통이 면담자에게 전이되고, 다시 청중들에게 전이되는 과정은 그러한 고통이 지닌 무게와 깊이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발표는 진범수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전쟁의 상처, 뇌의 흔적’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발표에서는 PTSD의 흔적인 뚜렷한 외상으로 뇌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람들의 몸에 상흔으로 남아 있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면서 정신적 상처가 육체적으로 각인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발표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사회-전쟁의 사회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조중근 선생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조중근 선생님은 세 사람의 전쟁 참전자의 이야기를 통해 PTSD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이것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PTSD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함을 제기하였습니다.



발표자 이외에도 평화재향군인회의 김성전 사무처장님께서 ‘월남참전 용사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연구토론 자료’를 제공하고, PTSD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전쟁이 남겨놓은 고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PTSD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PTSD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서도 나타나며, 그런 면에서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전쟁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PTSD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제기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고, 올해의 심포지엄은 앞으로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많은 과제들의 첫 장을 연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슬로우 블릿’을 멈추어야!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베트남전쟁 종전 30주년, 파병 40주년을 맞이하여 베트남전쟁을 새롭게 조명하고,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전쟁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을 성찰해보고자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해 가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참전군인과 그들의 가족이 겪었던 고통에 눈뜨게 되었고, 전쟁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일들로 많은 고민을 한 한해였지만 베트남전쟁 문제에 대해 한정한다면 올해 한해는 단지 고통을 돌아보는 것으로 소중한 시간을 모두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해를 준비하며,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보다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활기차고,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 미래를 위해 인권, 평화, 생명권을 소중히 생각하는 모든 분께 말씀드립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사회는 그 사회의 심장으로 날아오는 ‘슬로우 블릿(느리게 날아오는 탄환)’을 보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이젠 눈 떠야 합니다. 군사주의, 냉전, 발전주의로 치장하고 우리의 평화, 인권, 생명권을 위협하는 ‘슬로우 블릿’을 이젠 직시하고 멈춰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 평화박물관이 ‘슬로우 블릿’을 막을 방패막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 평화박물관의 기틀을 세워나가길 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전쟁으로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분들의 안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