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베트남 전쟁과 나 / 이성오 (한베진실상)
작성일자 2018-08-16
2008 8월 7 - 20:27 익명 사용자


베트남 전쟁과 나 / 이성오 (한베진실상)








2005년 봄 실시한 베트남 전쟁 종전 30돌 맞이 수기공모 대회 [베트남 전쟁과 나]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이라크, 사랑해요 아버지, 힘드셨조 어머니" 당선작을 싣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나



 

이성오





베트남 전쟁과 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베트남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01년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베트남 진료단’ 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그렇지만 그 전쟁이 나하고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 안되었다. 여기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나 사이의 숨어있으면서도 연결된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장면 1 <학교 수업시간>



학교 다닐 때 참전군인 출신 선생님들이 말씀해주시던 용맹한 한국군인들과 국사선생님이 설명해주시던 미국은 대공황을 세계 대전을 통해서 극복했고 일본이 지금처럼 발전하게 된 계기는 한국 전쟁이었고 한국이 이만큼이나마 발전하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문이었다는 설명정도였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찌들어있던 나에게는 그냥 경제발전의 수단이었던 나라...공산화된 나라...그래서 우리나라도 베트남처럼 되면 안 된다는 그런 논리에 물들어서 그냥 잊어가면서 대학에 들어왔다.





장면 2 <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의 마드리드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나타내는 그림



이전까지 인권과 관용이 넘실대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이렇게 무자비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왜 저렇게 죽였을까?



미국영화 ‘타이타닉’ 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유물을 찾던 발굴자가 이런 대사를 읊었다.



“난 지금까지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난 그때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이름을 가진 비 무장한 민간인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면 3 <늑대와 춤을>



대학교 때 본 영화이다. 이전까지 난 인디언이라고 하면 헬기의 이름으로도 쓰이는 ‘아파치’나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인디언, 그리고 서부영화에서 등장해서 죽으면 통쾌해지던(악당이었으니까) 존재였을 뿐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서 처음 생각해 낸 것이 있었다.



원래 땅의 주인은 대대로 그 땅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의 싸움은 정당한 싸움이었고 명분이 있는 존재들이었고 약자였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 냈다. 이상했다.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장면 4



나의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이곳은 동학혁명의 발상지이다. 동학농민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고 지금 이곳에는 그 전쟁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어릴 때부터 내 고장의 조상들은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외세에 저항했던 훌륭한 조상들이었다.





장면 5 <미라이 박물관>



2001년 난 미라이 박물관에 갔다. 그곳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에 미라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났던 미군에 의한 마을 주민들의 학살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래도 난 한 가닥 마음의 위안은 있었다. 여기에 한국군은 없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생각이었다.





장면 6 <증오비>



마음이 ‘쿵’ 하고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미라이 박물관에서 가졌던 한 가닥의 위안은 그대로 사라졌다. 증오비를 앞에 두고서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한국군에 의한 만행이라거나 제국주의의 희생물이라든가 이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장면 7 <전쟁박물관>



베트남 호치민시에는 전쟁 박물관이 있다. 여기에서 한 장의 사진... 미군 옆에서 서있으면서 가슴에 태극기를 선명하게 그린 한국군....



고야의 그림에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과 나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주는 결정적인 사진이었다.



그것은 나의 ‘업보’ 이었다.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서 무참히 학살당한 동학혁명의 후예이고 인디언의 학살을 통해 머리 속으로 땅의 주인을 생각하고 우리가 죽이지 않았으니 마음의 안심을 찾고 그들을 아파하는 것으로 그때그때 나의 가슴 속 깊이 있는 책임을 회피하고 관련을 부인했던 나에게 마치 ‘주홍글씨’ 의 낙인이 지울 수 없게 찍혀진 사진이었다. 피하려고 피하려고 해도 점점 더 상세한 증거를 들이대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베트남 전쟁은 더 이상 나와 관련이 없는 먼 옛날 얘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게 나에게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어버린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그 낙인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낙인이 너무도 아픈 것이라는 것 또한 이제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