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박물관 답사기
작성일자 2018-08-16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박물관 답사기

교과서 자료관 관람을 마친 우리 일행은 교토로 가서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뮤지엄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아시아의 평화박물관’이라는 주제로 일본 각지의 평화박물관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도 아직 평화박물관을 세우진 못했지만, 중국의 남경학살박물관, 베트남의 혁명전쟁박물관과 함께 초청을 받았다. 의사, 핵과학자, 경제학자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 평화학연구자가 된 국제평화뮤지엄의 안자이(安齋) 관장은 아시아와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평화박물관 관계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평화박물관 회의에서 중국에서 온 남경 학살기념관의 관장은 매우 격한 어조로 일본의 학살만행과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했다. 과거를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정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이 조금은 공허하게 들린 것은 중국의 행동에 대한 자기반성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남경대학살의 참극을 당한 남경은 당연히 자신이 당한 아픔을 세계를 향해 호소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호소가 단지 자신들의 피해만을 담을 뿐, 다른 사람의 아픔을 담아낼 여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런 호소는 자신이 당한 고통만 부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남경 학살기념관 관장이 목청을 높여 비판한 일본의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나, 유태인 학살의 아픔이 팔레스타인 침략으로 나온 이스라엘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본다. 중국의 이웃에서 중국과 오랜 인연 속에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이 너무 예민한 탓일까? 남경 학살기념관 관장의 지당한 말씀이 그리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베트남에서는 혁명전쟁박물관 관장이 참가했는데, 그는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박물관을 소개했다. 그의 영어는 유창했지만 그의 생각은 낯설었다. 고난에 찬 베트남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긴 하지만, 이름 그대로 이 박물관은 전쟁을 찬양하는 전쟁박물관의 계보에 속하는 것이지, 평화박물관과는 조금 주파수가 틀려보였다. 쓰라린 전쟁의 체험 속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평화를 갈구했을 베트남 인민들의 꿈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국가를 통해 그 승리의 의미를 공식적으로 기억하게 될 때는 입장은 다르다해도 전쟁기념관의 계보 속에 자리잡게 되는 듯싶어 조금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제평화뮤지엄은 리츠메이칸대학 캠퍼스 외곽에 자리잡은 3층건물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규모가 커 보였다. 그러나 전시공간은 지하의 1개 층 뿐이었지만,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상설전시의 주제는 크게 3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 테마는 <15년 전쟁의 실태>로 다시 ① 군대와 병사, ② 국민총동원 체제, ③ 일본인의 반전활동, ④ 식민지ㆍ점령지, ⑤ 공습ㆍ오키나와전ㆍ원폭 등 5가지 소주제로 세분되어 있었다. 두 번째 테마는 <제2차대전과 전쟁책임>으로 ① 제2차 세계대전, ② 전쟁책임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세 번째 테마는 <현대에 있어서 전쟁과 평화>로 ① 현대의 전쟁, ② 핵군비 경쟁, ③ 평화에의 발걸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의 수많은 평화박물관 중에서 리츠메이칸대학의 국제평화뮤지엄은 일본의 가해자로서의 책임에 대해 선명하게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몇 안되는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사실 전쟁을 찬미하는 전쟁기념관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박물관이나 전시물 하나하나를 놓고 본다면 전혀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같은 전시물, 예컨대 무운장구를 비는 글이 잔뜩 쓰여진 일장기나 일본침략군이 쓰던 무기를 전시한다고 하여도 그런 유물을 어떤 시각에서 어떤 설명을 달아 전시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또 이 곳에는 가해자로서의 일본 만이 아니라 침략당한 한국과 중국의 항일운동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리츠메이칸대학의 국제평화뮤지엄은 일본의 이웃나라 침략행위를 명백한 전쟁범죄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 내의 수많은 평화박물관 중에서 대학이 세운 유일한 평화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대학 측이 소개하는 국제평화뮤지엄의 설립취지는 “리츠메이칸 대학의 평화연구.교육의 누적을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전쟁체험을 말하는 운동에 담겨있는 국가적 바램에 호응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그 특징으로는

1.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의 평화문제를 생각하는 자료를 전시한다는 국제성과 현대성

2. 일본의 15년전쟁의 실상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반전ㆍ평화의 입장에서 분명하게 전달

3. 대학 박물관으로서 적극적 문제제기를 해나가며 리츠메이칸 대학의 평화연구ㆍ교육을 발전

4. 많은 시민의 참가와 협력에 의하여, 사회를 향하여 열린, 지역에 뿌리내린 박물관을 만든다

등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취지와 국제평화뮤지엄 당국이 제시하는 박물관의 특징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훌륭한 뜻이 과연 얼마나 구현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뮤지엄 당국은 이 뮤지엄의 특징으로 현대성을 들고 있는데, 이 박물관의 전시가 1960년대의 수소폭탄 금지나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으로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현대성’이 꼭 ‘현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국제평화뮤지엄에서 “미국은 베트남에서 나가라”라는 구호가 적힌 시위용품을 볼 수는 있었지만 “미국은 이라크에서 나가라”는 그 어떤 메시지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은 두고두고 쓴 맛으로 남아 있었다. 감동과 부러움을 지닌 채 박물관의 이런저런 전시를 보던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당연히 만날 것으로 기대하였던 이라크전쟁 이야기를 보지 못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평화박물관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 무엇보다도 평화를 위협하는 그 이야기가 빠진 평화박물관은 평화를 지키는 수단이 되기에는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리츠메이칸대학의 국제평화뮤지엄이 거둔 성취는 그 자체로서 아주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학이 평화연구와 교육에서 일본 내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훌륭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갖춘 곳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재의 이야기가 빠진 평화박물관은 너무나 아쉬움을 남긴다. 현재의 이야기가 생략된다면 현실의 평화운동과 결합될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렇게 될 때는 국제평화뮤지엄이 지향하는 바 “많은 시민의 참가와 협력에 의하여, 사회를 향하여 열린, 지역에 뿌리내린 박물관을 만든다”는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 방문일: 2004년 6월 19일 (토)

* 방문자: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2004 일본 평화박물관 답사팀'


* 작성자: 한홍구 상임이사(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