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교과서 자료관
작성일자 2018-08-16

교과서 자료관

오사카 교외의 사카이시에는 아주 조그만, 그러나 특별한 박물관이 있다. 교과서 자료관은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 발간한 <평화박물관ㆍ전쟁자료관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박물관이다. 당연히 이 안내책자를 참고로 하여 작성한 우리의 원래 일정에도 교과서 자료관 방문 일정은 잡혀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안내인으로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평화학을 공부하는 김혜옥 선생 등은 안가면 정말 후회하게 된다며, 아시아 평화박물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답사팀의 선발대로 먼저 오오사카 공항에 내린 나와 이수효 사무처장을 이 작은 박물관으로 데려갔다.
 




 

 


교과서자료관이 위치한 주택가와 자료관 외부 전경





일본에 도착하여 처음 찾게 된 평화박물관, 그러나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작은 박물관. 주택가에 자리 잡은 교과서박물관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았다. 작고 낡은 건물, 그러나 박물관의 이름은 일본어 뿐 아니라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도 쓰여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서 ‘평화 인권 어린이센터’라고 쓰인 한국어 간판을 보자 인천공항을 떠난지 다섯 시간도 채 안되었지만 반가왔다.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실평수로는 너댓평이나 될락 말락한 별로 크지 않은 방이 나왔다. 벽에는 온통 각종 단체의 집회나 행사를 알리는 안내문들이 원래의 벽이 어떤 색깔이었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양 옆으로는 자료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도 계단 칸마다 서류함이 두 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작은 공간에 많은 자료를 복잡하기는 하되 지저분하지도 않고, 사람을 질리지도 않게 하면서 잘 담아 놓고 있었다.



 


















바깥의 간판에서도 한국어가 눈길을 끌었지만, 2층과 3층에서도 한국과 관련한 전시물이 많았다. 2층의 한 쪽 벽, 에어콘 바로 옆에서 우리는 뜻밖에 서울교대 재학 중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미 제국주의의 압박을 받고 있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항의로 자결한 박선영 열사의 사진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인 구례 소의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교과서 자료관의 창립자이자 관장이자 큐레이터이자 사환인 요시오카 가츠코(吉岡數子) 여사는 자신이 방문한 외국의 평화박물관 중 특히 인상 깊은 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깊은 연대의 마음을 이렇게 표시한 것이다.



 


교과서 자료관의 요시오카 가츠코 여사











박선영 열사의 사진





3층은 2층의 3분지 2 정도 되는 넓이였는데 역시 빼곡하게 여러 가지 자료로 가득 차있었다. 일본에서는 여러 차례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는데, 이런 논란의 중심에는 언제나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자기네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미화한 일이 자리 잡고 있었다. 3층의 한쪽 벽은 강화도조약, 청일전쟁, 명성황후 살해사건, 러일전쟁 등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주요 사건들이 반절지 크기의 판넬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령 강화도사건의 경우에는 판넬 상단에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다음, 시기별로 해당 사건에 대한 서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의 변천상이 6장의 복사물로 전시되어 있다.

 


강화도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판넬





이 박물관에는 일본의 교과서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교과서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요시오카 여사가 외국을 방문할 때 틈틈이 사 모으거나 외국의 벗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권수가 많지 않았으나 한국과 북한의 교과서도 있었으며, 중국의 한국사 교과서도 눈에 띄었다.



요시오카 여사의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이 놀라웠다. 더구나 한국에 대한 전시는 관점도 일본의 군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비판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요시오카 여사께 연유를 물었더니 그는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조선에서 태어났고 자라기는 만주에서 자라다가 1944년에야 일본에 왔다는 것이다. 워낙 어린 시절에 조선에 살았기 때문에 조선어를 못한다고 그는 수줍게 말했다. 조선에 대한 내용이 아주 훌륭하다고 인사를 드리자 그는 조선에 관한 전시물은 재일동포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공을 재일동포 친구들에게 돌렸다.



허름한 박물관의 외양과는 달리 교과서 자료관은 속이 꽉 찬 박물관이었다. 여기에 전시된 교과서는 값으로 따진다면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전시된 판넬들도 아주 실용적인 것으로 액자의 가격은 일화 380엔에 불과한 것이며, 6종의 교과서를 복사하는 등 전시용 판넬 1개의 제작 경비는 한국 돈으로 1만원을 넘지 않는다. 교과서 자료관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판넬이 수백장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들은 하나하나 모두 요시오카 여사가 손수 제작한 것인데, 어떤 계기가 있을 때 교과서 전시관에 전시하기도 하지만, 다른 평화박물관이나 집회에 판넬을 가져 가 전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미가요와 일장기에 관한 여러 장의 판넬은 나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만들었다. 2-3년 전 태극기의 변천사에 관한 짧은 글을 쓴 뒤,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비롯한 국민의례를 둘러 싼 문제가 제기될 때면 나는 종종 방송사나 신문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곤 했는데, 내가 가진 짧은 지식과 비교해 본다면 요시오카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판넬들이 훨씬 체계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지만 알차기 짝이 없는 박물관은 요시오카 할머니와 남편이 퇴직금과 적금을 털어 넣어 건물을 사들여 마련한 것으로, 정작 두 부부는 연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이 박물관의 전시물 하나하나를 보면서 우리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일로 생각하고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판넬 하나하나를 만들기 위해 낡은 교과서 한 장 한장을 뒤적이는 작업은 단지 사명감만이 아니라 취미이고, 즐거움이고, 생활이어야 가능했을 것이며, 그런 삶의 수십 년이 녹아든 것이 현재의 교과서 자료관이다. 전시물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 쏟은 정성이며, 한 푼의 돈이라도 절약하려는 알뜰함이며, 그러면서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전문성이며, 그야말로 인권 평화운동가들이 적은 돈을 갖고 평화박물관을 세우려할 때 모범이 될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 바로 교과서 자료관이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찾은 곳이지만, 평화운동가들의 작은 박물관을 꿈꾸는 우리 입장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런 경험을 한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뒤에 다른 큰 평화박물관을 돌아 본 뒤에 더욱 뼈저리게 느낀 것이지만, 큰 박물관들이 예산 등 유지비 때문에 진짜 평화의 목소리를 못낼 때, 교과서박물관은 어떤 다른 눈치보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뚜렷이 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가지 교과서박물관을 돌아 본 뒤 느끼는 걱정은 요시오까 할머니께서 아직은 건강하셔서 다행이지만, 세월이 흘러 할머니께서 노쇠해지신다면 누가 과연 할머니만한 열정과 전문성을 갖고 이 작은 평화의 성채를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 방문일: 2004년 6월 18일 (금)

* 방문자: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2004 일본 평화박물관 답사팀'

* 작성자: 한홍구 상임이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