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폭심지
작성일자 2018-08-16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폭심지

설립배경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부지는 원래 나카지마라 불리던 구역으로 에도시대(1603-1868)에는 활발한 상업 중심지로 상품들이 하역, 판매되어 히로시마 내륙지방으로 보내지던 곳이었다. 메이지시대(1868-1912)에도 역시 정치, 행정, 상업의 중심지이자 시청, 현청 소재지였다. 원폭 투하당시에는 이 나카지마 구역의 7개의 쵸(丁. cho. 우리의 번지에 해당하는 단위)에 약 6,500명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8월 6일, 최초의 원자폭탄이 바로 이 구역의 상공에서 폭발했을 때 거주자 이외에도 수천명의 자원군인(volunteer army corps members)과 동원된 학생들이 소방도로 건설을 위해 건물해체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원자폭탄의 폭발과 함께 이 구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1949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도시건설법 발효에 따라 이 구역 전체가 "평화기념시설"로 결정되었고 이것이 바로 현재 평화기념공원으로 불리는 것의 시초가 되었다.

평화기념공원은 약 122,100 평방미터로 동경대 교수 단게 켄죠(丹下健三)외 3명의 다른 건축가에 의해 설계, 디자인되었다. (이 건축설계안은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는데 공모 당시 145개의 안이 제출되었다.)

공원의 남쪽 끝에는 세 개의 건물이 나란히 서있는데 바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의 본관과 동관, 히로시마 국제회의장이다.

이 공원은 원폭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조성되어 원폭 당시 지표면보다 대략 50㎝ 정도 위에 있다. 공원 안에는 당시 건물인 현청사의 주춧돌이 있어 이 구역의 지표면이 높아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추모비 및 조형물



- 피폭나무: 동관 뒷편에 위치. 이 나무는 원폭투하지점으로부터 약 1.3㎞ 떨어져 있던 것을 피폭 교육을 위해 이곳에 옮겨 심어 놓았다. 열선과 폭풍으로 잎과 가지를 모두 잃고 기둥 한쪽 면이 불타고 오염되어 죽은 줄 알았으나 이듬해 봄 가지가 싹을 틔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 종이학 동상(어린이 평화기념비): 2살 때 핵 방사선에 노출되었던 일본인 소녀 사다코 사사키는 10년 후인 1955년, 12살의 어린 나이에 백혈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 소녀는 종이학을 천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몸이 나아지고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다가 모두 다 접지 못한 채 1955년 10월 25일에 사망한다. 사다코의 친구들은 사다코가 못 다 접은 종이학 삼백쉰여섯 마리를 더 접어 사다코와 함께 묻어 주었다. 이후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다코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 동상을 세우게 된다. 종이학 동상에는 일본 및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종이학 1,000마리 묶음이 걸려 있다.

 





- 한국인 피폭피해자 위령비: 히로시마 원폭 당시 한국인 2만여명도 사망했다. 희생된 한국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조



우리의 종이학은 총보다 강하다!
서울~히로시마 평화의 종이학 대장정을 마치고
 / 프로메테우스, 2005.08.18 09:01



한일 양국의 '무시와 방치'...밀항서 법정투쟁까지
[원폭 60주년 특집-상] 한국인 피폭자들의 권리찾기 투쟁사
 / 오마이뉴스, 2005-02-13 11:17



내 사진에는 한국인 원혼들이 찍혔는가?
<일본 가는 길 57> 히로시마 헤이와키넨코엔(平和記念公園) 여행
 / 오마이뉴스, 2005-01-16 13:20



히로시마에 울린 '코리안' 청년들의 외침
"전쟁피해자의 시점에서 평화 만들자"
[히로시마현지보고①] 재일-한국 청년들의 '평화를 위한 호소'
 / 오마이뉴스, 2004-02-07 17:24



히로시마에서 한국인피폭자를 생각한다
[히로시마 현지보고 ②] 우리는 왜 기억하지 않는가
 / 오마이뉴스, 2004-02-10 20:37



"원폭피해자 역사는 재일동포 3세의 역사"
[히로시마현지보고③] 재일코리안청년연합(KEY)
 / 오마이뉴스, 2004-02-19 20:19

 




- 원폭돔: 원폭돔은 원래 히로시마현 상업전시관으로 1915년 건축되었다. 이 건물은 체코 출신 건축가 얀 렛젤(Jan Letzel)에 의해 설계되어 유럽 스타일로 건축되었다. 이후 히로시마현 상품전시관, 다시 히로시마현 산업장려관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전쟁 중에는 내무성의 추코쿠 시코쿠 지역 분소 및 히로시마 지역 및 일본 목재 통제 법인 사무소(the branch office of the Chugoku Shikoku Public Works Office of the Internal Affairs Agency and the offices of the Hiroshima District Lumber and Japan Lumber Control Corporation)로 사용되었다.



피폭 당시, 건물이 파괴되고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폭발이 건물 위에서 일어났고 돔형 철골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완파되지 않고 어느 정도의 건물 골격과 외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원폭 피해의 상징이 되었고 원폭돔(A-bomb Dome)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966년 히로시마시는 이 원폭돔을 영구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1996년 12월 5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폭심지: 폭심지는 정확하게 원자폭탄이 폭발한 곳으로 아래 사진의 병원(島病院)의 상공 600M 지점이다. 위에서 세번째 그림(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배치도)의 33번에 위치해 있다.

 







* 답사일: 2004년 6월 21일 (위 교육 프로그램 현황은 이후 변경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참고: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