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2015 평화기행>하미학살 생존자 할머니에게 평화를 배우다
작성일자 2018-08-17


<2015 평화기행>하미학살 생존자 할머니에게 평화를 배우다





“한국군을 용서했다. 위령비는 열지 않는 게 좋겠다. 한국 사람들이 비문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머리가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있다.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전쟁과 민간인 학살은 왜 일어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통킹만의 자작극으로 일어난 베트남 전쟁, 정통성 없는 정권의 비위맞춤으로 제안되어 돈 벌기 위해 참여한 전쟁이니 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고 전쟁 물자를 공급하는 군수산업자만 배가 불렀을까? 전쟁을 겪는 베트남 백성이나 용병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다.

구수정 선생님의 설명이 뇌리 속에 뱅뱅 돌며 우울해지기도 한다. 생존자분이 하신 말씀에 학살의 그날에 있었던 장면 장면이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느리게도 빠르게도 재생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우리가 위령비에 참배를 하고 향을 피울 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참 귀한 사람들이야” 라고 하셨다는 말씀이 인상에 남는다. 피해자 입장의 촌로이지만 너그럽게 바라보시는 마음 씀씀이가 깊어서 보통 사람인 내가 외려 부끄럽다.









하미위령비-위령비 전경, 연꽃무늬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13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하미학살을 사죄하는 뜻으로 건립한 하미 위령비. 참전군인복지회에서 후원한 이 위령비는 건립과정에 ‘한국군 학살’을 담은 비문에 대한 충돌이 빚어졌고, 현재 비문은 연꽃무늬로 덮여 있다.


하미학살의 생존자이셨던 할머니의 이야기는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딸이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니 자신이 부상당한 줄도 몰랐던 모성애도 마음 아프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일화도 눈물겹다. 학살의 주역인 한국군에게 구걸한 돈을 다리미로 다리면서 아들들에게 하셨다는 말씀 “이것이 인생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인상을 쓰면서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은 더욱 아닌 걸로 들린다. 그야말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구걸을 하면서 백가지 생각이 드는 접었던 마음을 다리미로 펴는 힐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당장 올라오는 미움, 원망, 좌절을 다리미로 펴면서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라는 무언의 교육을 아들들을 앞에 앉혀놓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돌아가실 때 “한국군을 용서했다. 위령비는 열지 않는 게 좋겠다. 한국 사람들이 비문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 고 말씀 하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보살 같은 마음 씀씀이가 참전군인 복지회의 생색내려는 마음과 자신의 과오를 백 퍼센트 납작 엎드려서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옹졸함과 대비되어 씁쓸하다.

처음부터 잘 못 꿰어진 단추였다면 단추를 전부 다시 풀고 다시 단추를 채우자. 일제 강점기의 일본 만행 욕할 것 없이 우리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윈윈이다. 다음 세대가 선대의 원죄를 안고 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청춘을 바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해 오신 구수정 선생님께 존경을 보낸다. 신작로로 편히 가실수도 있었으련만 가시밭길을 택해 걸어오신 20년 세월이 있었기에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한홍구 교수님도 마찬가지이다. 강의로, 저서로 한길을 걸어오신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이제 개인의 몸이 아니니 건강 챙기셔서 횃불 들고 앞장서서 걸으셨던 길 후배들이 꺼뜨리지 않고 따라오도록 지켜보고 가르쳐주시길 빈다. 7박8일 웃고 울었던 도반들에게 감사드린다.











신영옥(평화박물관 회원, 숲 해설가)


이 글은 1월30일부터 2월6일까지 7박8일 동안 진행된 평화박물관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가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 중 등장하는 구수정 선생은 베트남 사회적 기업 아맙 본부장으로 평화기행을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평화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