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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촉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작성일자 2018-08-17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촉구]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난 6월 1일 월요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광복70년, 원폭70년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발제로 특별법안의 대상인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의 시작부터 현황 그리고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이학영, 박홍근, 이목희 의원,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 등 특별법안 발의 의원과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참석하여 70년 동안 방치되어 온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통감하며, 지난 17·18대에서 폐기된 특별법을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꼭 통과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원폭 2세 지원 부분에 대해 1세의 공감을 끌어냈다는 큰 수확이 있었다. 성락구 한국인원폭피해자협회장은 지난 5월 10주기를 맞이한 고 김형률을 언급하며 원폭2세 환우 문제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원폭 2세 문제는 원폭피해 후유증의 유전적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되풀이하는 정부 입장 속에 피폭 1세대보다 더욱 더 소외되어 왔으며, 원폭1세들 또한 자녀들이 원폭 2세라는 것이 밝혀질 경우 결혼과 취업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2세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존재해 왔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정부의 도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태에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원폭으로 인한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으며 이는 원폭 이후 한국정부의 계속된 무관심과 무대책에 기인한 것이다. 원폭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무능은 원폭2세 문제로 이어졌다. 그나마 원폭 1세는 일본 정부로부터 수당과 진료비 등을 지원 받고 있으나 방사능 후유증 유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원폭 2세 환우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원폭 1세에 대한 지원 또한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수십 년 간 싸워 얻어낸 산물이다. 이들이 밀입국 등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소송 등을 불사할 때 한국 정부는 방관으로 일관했으며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이들을 지원했다.)

국내 원폭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는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정책과 태평양 전쟁에 그 뿌리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미국과 일본 정부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일본 정부의 보상을 끌어내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현 협정 제3조 부작위 위헌 확인”을 통해 한국정부가 원폭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 내렸다.)

한국 사회에서 원폭 피해자 문제는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 사회적 편견과 차별 등으로 우리 국민 또한 한국이 원폭피해국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한 칼럼에서 ‘일본 내 원자폭탄 투하를 신의 징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원자폭탄 투하가 신의 징벌이라면, 7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원폭피해자’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일본의 원폭피해자들과 달리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 식민지정책의 결과로 강제동원과 이주를 당했으며, 원폭피해를 입은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그 피해조차 보상받지 못한 채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는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

원폭 70년이 지나 원폭 1세대 대부분은 이미 사망하였으며 현재 생존자들 또한 대부분 고령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광복 70년으로 한국인원폭피해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 및 그 자녀를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일본정부에 피해 보상을 당당히 요청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또한 강제동원과 한국인 원폭의 역사를 기록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기억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