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인터뷰]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분들과 구수정 박사와의 만남
작성일자 2018-08-17




[인터뷰]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분들과 구수정 박사와의 만남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는 1999년 베트남전진실위원회로 출발하여,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습니다. 특히 종전 40년이 되는 올해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 본 적 없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전시를 기획하였고, 함께 토론하고 한국사회 내의 깊은 사죄의 뜻을 전하고자, 전쟁 후 최초로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를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이번 초청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떤런(‘빈안학살’ 생존자)씨와 응우옌티탄(‘퐁니퐁넛학살’ 피해자)씨, 호치민시전쟁증적박물관장 후인응옥번 관장은 6박 7일간 서울, 대구, 부산을 오가며 분주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초청일정동안 베트남에서 오신 세 분들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동반자로 함께한 구수정 박사는 1993년부터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주제로 베트남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손님과 함께한 6박7일, 구수정 박사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최고의 기억

구수정 박사는 이번 초청행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으로 4월 7일 전시 오프닝과 리셉션 행사를 위해 녹색병원 건강검진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을 꼽았습니다.

“참전 군인들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서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조계사 앞에 참전 군인들이 집회신고를 하고 모여 있다는 사실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두 분(런 아저씨, 탄 아주머니)께 처음으로 알려드렸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참전 군인들을 맞닥뜨릴 수 있지만 경찰의 보호로 안전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두 분은 전혀 놀라지 않으시고 차라리 내려서 참전 군인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만나게 해 드리진 못했지만 그 심경은 알 것 같았어요. 이어서 런 아저씨는 이미 울먹이고 계시는 탄 아주머니에게 ‘이제부터는 (어릴 적 이야기를 할 때) 울지마. 울면 저 분들이 우리가 두려워서 우는 줄 알잖아. 그러니까 이제 울지마.’ 라고 말씀하시고는, ‘만약에 그래도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가 없거든 무서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고, 어린 시절 내가 구하지 못한 어린 남동생이 생각나서 우는 것이라고 꼭 말해’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두 분이서 함께 결연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다행히 충돌 없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지만 참전 군인들이 늘어서서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런 아저씨는 ‘전쟁도 격렬하지만, 평화도 참 격렬하구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런 아저씨는 지금 이 충돌을 전쟁과 같은 충돌로 보고 있지 않고, 이 충돌조차 평화로 가는 과정임을, 그 본질을 꿰뚫고 계셨어요.”

참전 군인을 만난 4월 7일 이후 런 아저씨는 증언을 하실 때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하시곤 했지만 끝끝내 눈물은 보이지 않으셨어요. 증언이 모두 끝나고 난 후에는 “나 안 울었어, 나 잘했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마도 런 아저씨는 참전 군인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너와 나, 서로를 들어주는 것

참전 군인들과의 관계는 민감하고 복잡합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4월 7일 예정되어 있었던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 이재갑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오프닝과 조계사 리셉션 행사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단체의 압력으로 장소 대관이 취소되었습니다. ‘참전용사를 모욕하지 말라, 민간인 학살 운운, 거짓말하지 말라, 우리는 민간인을 학살한 적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분들 또한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구수정 박사에게 굳이 참전 군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질문한 이유도 그것입니다. 구수정 박사도 “참 어려운 일이다”라고 운을 떼며 그 분들의 아픔과 억울함도 말을 걸고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습니다.

“나는 베트남에 있어서 그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 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그러나 베트남 피해자분들을 만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듯, 그분들과의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피해자분들을 만나 말을 걸고 듣고 있는 활동과 관련해서, 어떤 사람은 ‘우리가 피해자 분들을 한국에까지 초청해서 그분들의 상처를 들추면서 계속 증언을 시키는 일이, 과거의 악몽을 기억하게 만드는 잔인한 일이 아닙니까?’ 라고 질문해요. 그럼에도 저는 이 분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 이야기를 묻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가장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17년 동안 베트남에서 해 온 일은 큰 일이 아니라, 이분들에게 ‘예전에 어떤 일이 있으셨어요?’ 하고 묻고 들어주는 일 뿐이었는데도, 그 과정에서 저는 그 분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참전 군인과의 관계도 지금은 마치 벽 같아 보이지만, 그 분들도 분명히 누군가 들어주지 않은 억울함과 아픔이 있어요. 이 관계에서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말을 걸고 인정해주고 들어주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광복 70년, 그리고 베트남전 종전 40년

베트남 손님은 한국에 온 첫 날(4월 4일)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았습니다. 또 4월 8일에는 수요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베트남전진실위원회에서 김옥주, 문명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성금이 씨앗이 되어 활동하기 시작한 평화박물관에 아주 의미 있는 일정이기도 했지만,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은 올 해, 한국과 관련이 있는 각기 다른 전쟁 피해자의 만남은 역사적이었습니다.

나눔의 집에서 탄 아주머니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엉엉 우셨고, 할머니들은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가서 그런 짓을 하다니, 너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며 두 손을 꼭 잡고 안아주셨습니다. 이 날, 한국군의 총탄에 맞아 창자가 흘러나온 지도 모르고 엄마를 찾아 헤맸던 탄 아주머니에게 할머니들은 ‘희망 팔찌’를 선물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탄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한국군, 할머니들은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그것만이 다를 뿐입니다.”

전쟁을 겪었던 분들은 여전히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음에도 젊은 세대는 이를 마치 먼 과거, 먼 역사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에 구수정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겨우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 5.18 민주항쟁 35년, 그리고 그 전의 제주 4.3까지, 이 모든 것은 먼 과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옆에 있어요. 평화에 대한 추상적인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런 아저씨, 탄 아주머니를 실제로 만나면서 전쟁이 여전히 우리 옆에 있는 문제임을 깨닫고, 전쟁이 없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경계를 잃는 순간 우리가 먼 과거의 유물처럼 느끼고 있는 전쟁이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상처를 보듬는 방법

“초기에 한국에 이 문제(한국군 민간인 학살)가 처음 알려졌을 때 이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일로 당시에 많은 분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기도 했죠. 그런데 참 특이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광주(5.18), 제주(제주 4.3)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을 만나고 나서 그 충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는 단순하게 ‘피해자가 피해자를 만나니 말이 필요 없었다.’ 고 느끼지만 사실은 자신의 상처를 열어젖히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상처와 이야기를 하는 데에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이번에 베트남에서 나눔의 집을 찾으신 이 두 분은 달랐습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베트남 분들에게는 자신이 아닌 다른 피해자를 만나는 일이 생전에 첫 경험이었을텐데, 할머니들을 만나자마자 ‘나 아파요’ 가 아니라, ‘할머니들도 아프시군요.’ 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부분이 참 놀라웠고 감사했습니다. 내 상처를 통해서 남의 상처를 보고, 나의 고통을 통해서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어야 하지요. 이 분들이 이번에 그런 일들을 하신 거예요.”

이런 공감능력이 혹시 베트남 특유의 문화 사회적인 정서 때문인지 질문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베트남도 끊임없이 많은 전쟁을 겪은 민족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아왔던 분들이기 때문에 베트남 역사의 특수한 경험이 내면화 되어 있을 것이고 특유의 감성 때문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수정 박사는 그것보다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측면에 주목했고, 그와 관련해 런 아저씨가 한국에서 피해자분들을 만나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질 수 없었던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 ‘피해자의 역사성’ 등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주장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나가는 모습들이 큰 경험이었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수요집회에 갔다 오시고 나서는 런 아저씨는 베트남에 돌아가면 국회에 제안서를 보내겠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예전에 피해자 분들은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인정만 해주면 된다는 수준이었는데,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자각하고 또 정부에 제안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인 겁니다.”

평화

베트남에서 17년 동안 평화활동을 한 구수정 박사에게 평화는 ‘듣는 것’ 입니다. 언젠가 베트남에 온 한국의 아이들이 평화에 대해서 물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는 것은 힘듭니다. 게다가 상대에게 다가가 열심히 듣고 공감해주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수정 박사는 자신이 베트남에서 한 일은 열심히 묻고 마음을 다해 들어준 일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듣는 것’은 그저 소리를 듣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랑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 나의 마음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열려 있으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믿고 수용해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갑니다. 구수정 박사가 베트남에서 하고 있는 일은 아마 사죄의 마음, 미안한 마음, 그래서 사랑하는 일이라 단언합니다.

수많은 인파와 과격한 카메라 셔터 세례에 불안해하시는 탄 아주머니와 런 아저씨의 손을 꼭 잡으며 두 분의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던 구수정 박사의 미소가 떠오르는 봄입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간 런 아저씨와 탄 아주머니, 후인응옥번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장님, 구수정 선생님까지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을 찾아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인터뷰, 글_차홍선


고통과 기억의 연대|평화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