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2015년 1월 합천 방문기
작성일자 2018-08-17

2015년 1월 합천 방문기









지난 1월 9일, 합천을 방문하여 한국 원폭 2세 환우회의 한정순 회장, 진경숙 사무국장과 함께 원폭 2세 환우들을 만나러 갔다.

이날 만난 원폭2세 환우들은 다운증후군, 정신지체, 시각장애 등 갖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게다가 모두 합천에서도 외곽인 마을에 흩어져 있었다. 연로한 부모와 그들이 없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중년 자녀의 조합, 이것이 합천 원폭 2세 환우의 전형이다.

-합천군 초계면 택주씨네. 피폭자 아버지를 둔 문택주(64세)씨는 정신지체에 시각장애, 청각장애까지 가졌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다리 근육이 뻣뻣해져 이젠 걸음마저 불편하다. 왜 몸 곳곳이 말썽을 부리는지는 병원에서도 알지 못한다. 큰 소리로 부르며 집으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우리를 맞이한다. 택주씨를 돌보던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원에 가신지 1년이 다 돼간다. 어머니의 소망은 “나 없어도 우리 아들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현재 택주씨는 동생인 종주씨와 도우미의 도움으로 겨우 지내고 있다. 종주씨는 택주씨보다는 건강하지만, 그도 시력을 점차 잃어가는 상태라고 한다. 불편한 몸을 움직여 교회에서 받았다는 귤도 내어주고, 뭔가 얘기도 하려는 것이, 택주씨는 이날따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러나 그와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은 어려웠다. 함께 간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과 진경숙 사무국장이 중간 중간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거의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일까? 평소보다 많은 말을 한다고 한정순 원폭2세환우회 회장이 귀띔했다.

-합천군 율곡면 낙민리, 진영씨네. “진영아, 영현아” 진경숙 사무국장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서자 허진영(48)씨가 수줍게 나온다. 진 사무국장은 진영씨의 외사촌 시누이다. 진영씨와 남편인 정영현(48)씨는 다운증후군 환자로 각각 우울증과 위암을 앓았다. 진영씨의 어머니와 영현씨의 아버지가 피폭자였다. 이날은 남편인 영현씨와 시어머니가 잠깐 외출하고 진영씨 홀로 집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다. 진 사무국장은 “외숙모가 안 계시면 밥을 굶기 일쑤다. 전기밥통의 코드 꽂는 일조차 힘들어한다”고 했다. 간단한 청소, 빨래 널기 등은 시어머니가 알려주어 하지만, 집안일의 대부분은 시어머니가 돌본다고 한다.

이날 원폭 2세 환우들과의 만남을 도와준 원폭2세 환우회의 한정순 회장과 진경숙 사무국장 역시 원폭2세 환우다. 한정순 회장은 15세 때부터 ‘뼈가 녹는 아픔’을 겪었다. 대퇴부무혈성괴사증으로 서른두 살이던 1990년 오른쪽 왼쪽 엉치뼈에 인공관절을 이식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지 올해로 70년째이다. 또한 광복 70주년이기도 하다. 그 당시 갓난쟁이도 이미 70이 넘을 시간이다. 피해를 입었던 1세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연로하다. 원폭 2세 환우들은 혼자서 끼니를 챙길 수도, 바깥 출입을 할 수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도 없다. 부모가 자식들의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1세들은 일본으로부터 원호수당과 인도적 차원의 의료지원이라도 받았지만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지원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분들에 의지해 살아온 앞으로 혼자 남을 2세 환우들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다.

지난 17대 국회부터 원폭피해자 및 그 자녀에 대한 의료 및 생활 지원 및 실태조사, 추모·기념 사업 시행 등이 골자인 특별법이 제출됐지만, 17, 18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 제출된 4개 법안은 계류 중이다. 한정순 회장은 말한다. “부모·형제·자매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어요” 원폭 70년이자 광복 70년이 되는 올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진정한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1세 관련 원호 수당 등의 지원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직접 끈질긴 소송 전을 벌인 끝에 쟁취한 결과로, 한국 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합천 평화의 집 : 2010년 3월 1일,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원폭2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마련하였다. 방 2, 부엌 1, 거실 1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이지만, 원폭 2세 환우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활동과 원폭2세 환우들을 위한 트라우마 치료 등이 진행되는 소중한 곳이다.

·원폭2세 환우 : 건강한 원폭2세와 구별하여, 장애를 가진 원폭2세들을 ‘원폭2세 환우’라고 한다. 원폭2세 환우의 특징은 건강하게 태어나도 성인이 되면서 시각·청각 등 장애가 오거나 정신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피폭 2세의 질병 유병률은 일반인에 견줘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빈혈이 88배, 심근경색·협심증이 81배, 우울증 발병률이 65배나 높았으며, 여성 또한 심근경색과 협심증 81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양 64배, 천식 23배, 빈혈 21배, 정신분열증 18배에 달했다.


 

(글/사진_평화박물관 김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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