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2013년 '미안해요, 베트남' 평화기행 사진모음
작성일자 2018-08-17

2013년 ‘미안해요, 베트남’ 평화기행 사진모음

‘미안해요, 베트남’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너무나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마주하며

평화박물관 운동은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겨울, 평화박물관은 처음의 마음으로 베트남을 찾았습니다.

그 길에서 하미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 팜 티 호아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다섯 명의 가족을 잃고 수류탄에 두 발목이 잘려 나간 할머니 앞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하미학살이 일어난 지 45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람들은 한 번도 찾은 적이 없습니다.

그 날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미학살 45주년 위령제에 참가했습니다.



한국사회에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알리는데 힘써온

한홍구, 구수정 두 분의 선생님께서 길잡이를 맡아 주셨습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3월 7일까지 진행된

베트남 평화기행의 사진을 모아봤습니다.





반레 시인 (출처 :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1.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존재의 형식을 묻다 - 시인 반레와의 대담



베트남의 전설적인 게릴라 출신이며 현재 시인이자 소설가, 다큐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반레. 반레 시인의 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죠. 전쟁의 슬픔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그의 작품 세계는 전쟁이라는 닫히지 않는 과거를 떠날 수 없는 그의 영원한 현재를 보여줍니다. 전쟁이 끝난 지 35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홀로 전쟁의 늪에서 문학과 예술을 빚어내고 있는 고독한 시인 반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반레 시인과의 대담 사진 더 보기





 전쟁증적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고엽제에 의해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







2. 전쟁박물관 탐방


박물관 이름을 직역하면 ‘전쟁증적박물관’으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죄악과 만행의 증거와 흔적을 기록하고 있는 곳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고엽제 피해 등 전쟁의 참상이 사진과 유물들로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미군의 편에 가담해 그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찌 땅굴 곳곳에 숨겨진 입구

3.구찌땅굴 체험



호치민시 서북부에 위치한 구찌땅굴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을 공격하는 루트로 사용하던 지하요새입니다. 전체 길이가 무려 250km, 깊이는 3~8m. 30년 전쟁으로 불리는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사람들의 강한 저항 정신과 의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따뜻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한홍구 선생님과 화가 응웬탄쭉, 아맙의 구수정 선생님





4. 한홍구 교수가 들려주는 베트남 전쟁과 평화 이야기 + 평화의 직선을 긋는 추상화가 응웬탄쭉과 함께 나누는 커피 한 잔



추상화가 응웬탄쭉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홍구 선생님의 '베트남 정쟁과 평화 이야기'를 듣고 응웬탄쭉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꽝아이성 밀라이박물관에서 밀라이 학살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아맙의 구수정 선생님



 5. 꽝아이성 밀라이박물관 탐방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저지른 밀라이(선미) 학살은 전 세계에 미군의 만행과 베트남 전쟁의 더러움을 폭로하는 반전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박물관에는 학살을 기록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살 당시의 마을, 도랑 등도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민간인 학살의 기억과 함께 그 고통을 이겨낸 주민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탄타오 시인 (출처 :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6. 꽝아이의 시인 탄타오와의 만남



베트남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탄타오 시인은 꽝아이성이 낳은 베트남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집니다. 전쟁의 상처와 고통의 기억 속에서도 죽음이 아닌 삶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최대 민간인 학살인 밀라이 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그 폐허 위에서 쓴 시 <밀라이의 아이들>로 베트남 작가동맹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시를 통해 사랑과 상생의 언어로 풀어내는 시인과 만나 함께 평화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배 중인 평화기행 참가자들


7. 슬픈 자장가의 마을, 빈호아사 한국군 증오비 참배



“..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1966년 12월 한국군에 의해 430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 마을. 이곳에는 아가의 꿈결에 새겨야 할 만큼 깊이 사무친 그들의 한이 자장가로 구전되어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고 새겨진 한국군 증오비도 서 있습니다. 평화기행 참가자들과 빈호아사 한국군 증오비 참배했습니다. 평화의 발걸음이 이어져 빈호아에 다시금 아름다운 자장가가 불리길 기원합니다.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율동을 따라 하며 웃고 있는 빈호아 초등학교 아이들 (출처 :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8. 빈호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여기 우리 고모할머니요! 응웬 티 니 65세". "저기 우리 막내이모요! 응웬 티 웃 25세". 위령비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가족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다 죽였어! (Giet het roi!)"라고 큰 아이가 말하면 "왜 죽였어? (Sao giet?)”라고 작은 아이가 묻기도 합니다. 빈호아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이자 1992년 일본에 의해 세워진 빈호아 학교에는 전교생 400명 중 54명이 민간인학살 희생자 직계 자녀들이 있으며 현재 <베트남과 한국을 이해하려는 시민모임>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글씨를 배우고 세상에 눈을 뜨면서 비문의 내용을 알아갈 빈호아의 아이들에게 한국 사람들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잘못을 후대에 넘길 수는 없기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과 만나 평화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빈호아학살의 생존자 도안응이아의 노래





9. 도안응이아, 이제 평화를 노래하고 싶네. 민간인 학살 생존자와의 만남



빈호아학살의 생존자 도안응이아와 만나는 시간. 학살 당시 생후 6개월 된 아기였던 그는 총탄에 쓰러진 어머니의 배 밑에 깔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빗물에 흘러든 탄약에 눈이 멀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피투성이 아기가 죽은 어미의 빈젖을 빨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제는 순하고 착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까지 있는 그의 남은 걱정은 단 하나, 하필이면 공부까지 잘하는 두 아이의 학비 댈 일뿐입니다. 감긴 두 눈으로 기타를 치며 평화를 노래하는 도안응이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10. 하미학살 희생자 가족, 친지들의 제례의식 “따이한 제사” 참가



하미 학살 45주년 위령제 참배

1968년 음력 1월 24일 한국군에 의해 희생당한 135명의 민간인을 추모하는 하미학살 45주년 위령제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하미학살 생존자인 팜티호아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살아생전에 한국인이 단 한 번이라도 위령제에 참석해 135명의 억울한 넋들을 위무해달라는 것입니다. 2001년 한국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의 지원으로 건립된 하미 위령비를 참배하고 그 비문이 연꽃으로 덮인 기구한 사연도 들어보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진정한 사과와 화해, 평화의 길을 생각해봤습니다.



참가신청 클릭











하미 마을의 생존자 팜 티 호아 할머니와의 만남





11. 팜티호아 할머니와의 만남



하미 마을의 생존자 팜 티 호아 할머니를 만난다. 전쟁 당시 할머니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고 당신도 수류탄에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사건 당시 마을을 떠나 있어 화를 면했던 할머니의 큰 아들은 전쟁 이후 농사를 짓다 건드린 지뢰에 두 눈을 실명해 장님이 되었습니다. 나머지 눈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웃고 울며 그 상처를 보듬는 시간을 가져 봤습니다.











남부 여성박물관에 전시된 사진





12. 남부 여성박물관 탐방



전쟁 이후 역사 속에 남성만 기록되고 여성은 사라지는 기억의 차별에 대항하여 베트남 남부 지역의 여성들이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모금을 해서 1990년 호치민시에 여성박물관을 건립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남성과 함께 총을 들고 싸웠던 여성들의 기록이 답겨 있습니다. 또한 전쟁에 관한 것 이외에도 베트남 여성들의 삶과 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었습니다.



 




13. 도이머이 세대의 중견 작가, 부이 콩 칸 화가와의 만남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으로 한국에 널리 소개된 바 있는 베트남 화가 부이 콩 칸은 페인팅,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베트남의 중견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견뎌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그늘 속에서 신음했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도이머이(개혁개방) 세대의 예술가로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칸의 작품 세계를 듣고 직접 퍼포먼스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칸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답가를 주고받으며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하미학살 45주년에 바치는 추모사>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아이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잠들어야 했던 부모님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길고 힘들었던 삶을 되돌아볼 틈도 없이 처참하게 쓰러져간 할아버지 할머니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살아남아 그 모든 비극을 견뎌내야 했던 유가족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살아남아 되돌아온 한국군의 불도저에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유가족님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역사의 비극적인 진실에 연꽃무늬 대리석을 덮어야 했던 하미마을 주민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늦게 왔지만 여러분의 그 아픔 앞으로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