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50
제목 [답사] 2020 박물관 답사 1, 박찬희 선생님과 안중근 기념관-남산 후암동

2020년 겨울,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

 

2020115일 수요일

박찬희 선생님과 안중근기념관 - 남산 후암동 답사


지난해 성황리에 진행되었던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2020년에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전 호림박물관 학예사이신 박찬희 선생님과 안중근기념관과 남산 후암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우선 답사를 시작하는 장소는 안중근 기념관이었습니다.

기념관 안 로비에서 처음 모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입구를 찾기 어려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 외에도 건물에 들어오기까지 받았던 인상들을 잠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박물관에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중 하나가 설계라고 합니다.

이 박물관이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건축가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죠.


안중근기념관의 외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또 기념관을 들어오면서 우리 눈으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조금 높은 곳에서 안중근기념관을 찍은 사진을 보면 건물이 묵직한 12개의 박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단지동맹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더불어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분들 입니다.

 



<대한국인 안중근>
이 작품은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로 활동 중인 강익중 화백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옳은 일을 짓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보거든 구해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잡는데 힘쓰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안중근 의사의 어록입니다.





<안중근 의사 좌상>

안중근 의사의 좌상입니다.

이 좌상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안중근기념관과 비슷한 성격의 공간인 백범김구기념관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요.

백범 김구 선생의 좌상과 거의 동일하게 보이지만

좌상의 크기, 공간과 배치가 주는 영향 때문인지 안중근 의사의 좌상이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단지> 







<안중근 의사 가문도>

이 전시물은 어떤걸 보여주고 있나요?

안중근 의사 가문이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걸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직계가족에는 훈장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안중근 의사의 첫째 아들 안문생은 어릴 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아버지 없는 삶이란 힘들었을 것입니다.

김구 선생님께서 그의 가족에게 신경을 쓰셨다고 하나, 쉽지 않았겠지요.

안준생은 시찰단의 일원으로 조선에 있는 신라호텔의 박문사가에 방문했습니다.

박문사가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찰로, 안준생이 이토의 아들을 만나 그에게 사죄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안중근 의사에게는 독립운동이라는 영광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가족사는 비어있는 칸으론 남아있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천주교>





<안중근 의사의 서재>






<시모시자,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아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다.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분노를 짊어진 것이다."


사형언도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가 전한 말을 '죽으라'였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조마리아 여사의 일화는 당시 언론에서도 회자가 되었는데요,

대한매일신보 뿐 아니라 일제의 아사히 신문에서도 두 사람의 소식을 실으며,

'시모시자 :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제목을 달았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하얼빈 의거와 안중근 의사의 법정 투쟁과 순국에 관한 내용이 이어졌고,

전시 마지막에는 옥중유묵 기획 전시와 추모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념관이 다른 박물관과 다른 점은 바로 추모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백범김구 기념관과 제주4.3 기념관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각자 서로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을 꾸며두었는지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안중근 기념관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남산을 내려가며 후암동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남산의 조선 신궁 터를 함께 돌아봤습니다.

서울역에서부터 올라오는 수 많은 계단과 상광장, 하광장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그 당시 사람들이 이 높은 신궁까지 올라오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유명했던 드라마 때문에 이 계단이 '삼순이 계단'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조선신궁의 흔적 중 하나입니다.




조선 신궁은 이렇게 드문드문 흔적만 남긴 채 어떻게 사라졌을까요?



후암동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골목골목 다니며 그냥 스쳐 지나갔을 자리들에 잠시 멈춰서서 박찬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심은 신층시장에 들러 자유롭게 나눠져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며 답사를 안내해주신 박찬희 선생님과 다른 참여자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긴 답사 일정 중에도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셔서, 더욱 알찬 답사가 되었습니다.






후암동 골목 108계단입니다.

108계단은 일제가 해방촌에 '경성호국신사'를 지으면서 참배길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계단 양쪽으로는 가정집이 줄서있고, 이 근방 학교와 버스 정류장을 오가는 통행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사는 사라졌지만, 우리 일상 속에는 아직도 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생겨 이전보다는 편하게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언덕을 내려와 골목에 들어서니, 적산가옥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도 보입니다.




용산 미군기지 앞을 지나갑니다.




이 맨홀은 뭔가 특별해 보이지 않나요?

네모입니다.

이 자리에는 최근까지도 일제시대 때 사용했던 맨홀뚜껑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경성부 제2기 휘장이 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테두리는 일제 때 흔적 그대로입니다.




이곳은 <지월장> 입니다.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운영중이라고 하는데요,

지월장 내 한 테이블에 써있던 한문 덕분에 이 곳의 역사가 밝혀지게 되었는데요.

지월장의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경성에서 제일 잘 사는 아이들이 다녔다던 삼광초등학교 앞에서

선생님이 준비해오신 자료를 함께 보며.

일제시대 부촌이었던 후암동의 과거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적산가옥의 흔적들




이곳은 현재 건축 사무실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요,

이전에는 정미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후암동 골목골목을 돌며 과거 후암동, 남산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답사지는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배성호 선생님과 함께 뵙겠습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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