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58
제목 [답사] 박물관 답사 제2탄! 두번째, 변상철 선생님과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제2탄 

2019518일 토요일

변상철 선생님과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사 박물관 답사> 제 2탄의 두 번째 시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1탄 때 마지막 답사지가 서대문형무소였는데요.

저희 후원자님들 뿐 아니라, 현장에서 즉석으로 합류하게 된 수많은 관람객님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서대문형무소'를 다시 한 번 더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지금 여기에> 사무국장을 맡고 계신 변상철 선생님께서 안내해주셨습니다.


주말이기도 했지만,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이하여 찾으신 개인, 단체 관람객들도 많아 보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인물을 몇 명이나 알고 계신가요?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운동가들 뿐 아니라 광복 이후 민주화운동가들까지,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교적 최근 인물들까지도 서대문형무소를 거쳐갔다고 합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 1908~1987


1908년 경성감옥으로 개소하여 서대문감옥 -> 서대문형무소 -> 서울형무소 -> 서울교도소 -> 서울구치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된 이후 이 곳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관했습니다.


1945년 이전에는 독립운동가들, 1945년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섰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들 치루었던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를 향한 투쟁의 역사가 담긴 곳이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입장권 뒷면을 살펴보시면 서대문 형무소의 명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적혀있습니다.




현저동 101번지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곳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입니다.


이곳은 서대문 안과 밖을 동서남북으로 잇는 주요한 교통로로, 사신들이 들어올 때 지나오던 영은문과 그들이 묵었던 모화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영은문의 기둥만 남아있고, 그 뒤로는 독립문이 서있습니다.

조선이 진정한 자주 독립 국가라는 뜻으로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걸까요?

형님의 나라가 일본으로 바뀐 것 뿐이라는 의미는 아닐지요?




성 안에서는 나무를 벨 수 없기에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성 밖에서 사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연료를 거래하던 중요한 시장이 서대문 형무소 앞 영천시장이었던 것이죠.

이 현지동 101번지가 어떤 공간이었는지 그려지시나요?


왕이 사는 궁 바로 옆, 북적북적한 시장 앞에 감옥이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위치 선정입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시대였기 때문에 있을 수 있던 일이지 않을까요.




과거 서대문 형무소 모형입니다.

지금보다 상당히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역사관과 옥사 그리고 사형장과 격벽장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2층 민족저항실 입구에 있는 사진입니다.

영국의 종군기자 맥켄지가 양평군 인근에서 촬용한 의병대 사진입니다.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등장했었던 장면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우린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전국 의병전쟁 거의도입니다. 13도 창의군 서울 진공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셨습니다.


서울 진공작전은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이인영의 부친상이었습니다.

이인영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갔고, 서울 진입을 코 앞에 두고 지휘부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양반 유생들은 평민들과 어울릴 수 없다며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신분제도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강우규 의사와 이재명 의사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두 분의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독립운동가 수형 기록표가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넘어왔습니다.

한쪽 벽면으로는 큰 창으로 통해 밝은 빛이 들어오고,

세 벽면에는 빼곡히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형 기록표를 들여다보면 독립운동가들의 눈빛이 선명하게 살아있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죄를 지어 감옥에 잡혀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다 잡혀왔기 때문에,

그들의 눈빛에서 우리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아니라 당당함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20194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계신가요?


그 주역은 신한청년단이었습니다.

그들은 2.8독립선언과 3.1운동을 일으키는 진원이기도 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나라를 크게 움직일 때에는 항상 청년들이 중심에 있었다는 변상철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경성트로이카 - 미야케 시카노스케


미야케 시카노스케를 아시나요?

그는 드라마 <각시탈>의 주인공 이재유를 수개월 간 자기 집 마루 바닥 밑에 숨겨주었던 경성제국대 일본인 교수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인 중에서도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도 굉장히 유명한 사진입니다.

독립운동을 설명할 때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 사진인데요.

이 사진이 언제, 어디에서 찍힌 사진인지 알고 계신가요?

바로 이들은 해방 다음날 나온 정치범들로,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사진가에 의해 연출된 사진이라고 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던 이들의 사진입니다.

 



지하로 내려오니 지하 고문실이 아주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은 흥미를 보이는 전시공간이었습니다.


고문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지금과 같이 직설적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고민해봅니다.




지하고문실에서는 노덕술과 박처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셨습니다.

1949년과 1987년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

친일청산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옥사전시실로 넘어갔습니다. 

이 전시실에서는 수감자들의 의복과 식사량 등을 통해 감옥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상 저희가 서 있는 자리에 간수 책상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판옵티콘 구조를 갖추고 있어, 중앙에서 사방의 통로를 모두 한 눈에 감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옥사 내부를 둘러보며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몇 구절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옥사 밖으로 나와 정치사상범들이 격리되어 수용되었던 독립옥사 외부를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사형장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의 답사를 마무리 하며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본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옥을 둘러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그 시대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서 감옥,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며 서대문 형무소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주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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