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41
제목 [디아스포라의 눈] 민중예술의 부활을 꿈꾸며
2017. 11. 24. 10:13
 
지난 4월 25일부터 6월 26일까지 모두 5회에 걸쳐 [서경식과의 대화]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를 진행하였습니다. 한겨레신문 7월 7일자 신문안 섹션 '책과 생각'에 서경식 선생께서 이번 강연과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였기에 옮겨 싣습니다.



[디아스포라의 눈] 민중예술의 부활을 꿈꾸며
 

 
 » 황재형 작 〈앰뷸런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 연속강연을 했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했다. 강연시간이 평일 오후였기 때문에 참가자 중엔 시민운동 활동가들이 많았으나, 그중에 활동가 같지 않은 중년 남성이 한 사람 섞여 있었다. 편의상 ㅊ씨라고 해 두자. 어느 날 강연 뒤 모두 식사를 함께 했을 때 물어봤더니, 그는 딱히 활동가라곤 할 수 없고 어느 기업 기술분야에서 일하는 보통의 회사원이라고 했다. 예의바른 태도에 말수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회 때의 자유토론에 앞서 나는 청강자들에게 감상문을 제출하도록 부탁했는데, 그중에서 ㅊ씨의 긴 감상문은 내겐 의외였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저의 고향은 남한 제일의 탄광지대로 알려진 강원도 태백입니다.” 그는 그렇게 썼다. 이 한 줄을 읽는 순간, 얼마 전에 본 그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올해 2월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민중의 힘과 꿈’이라는 전시회에 가봤다. 나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한국 민중미술운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 알고 있는 화가나 작품은 별로 없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한 화가의 작품이 눈을 끌었다. 색채감각이 다른 화가들과는 달랐다. 〈앰뷸런스〉나 〈겨울 사북〉이라는 작품은 독일 표현주의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를 연상시키는 색채감각이었다. 어두운 전등불 밑에서 가난한 가족이 식사하는 풍경을 그린 〈식사〉는 반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그것은 이 화가가 키르히너나 반 고흐를 모방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과 같은 보편적인 감동을 준다는 의미다.



“연장에서 만난 태백사람과 전시회에서 만난 태백화가. 그들에게서 지금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광부들의 피와 땀·고통을 보았다. 민중예술의 시대는 지났다고? 형태를 달리할 뿐 변화된 상황 아래서 소외와 착취는 계속 되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민중예술은 가능하며 그 광맥은 소진되지 않았다.”

 

 
 » 황재형 작〈식사〉



화가의 이름은 황재형이라 했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다. 실제로 탄광부 생활을 체험했고 지금도 태백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 화가에 대한 흥미를 억누를 길이 없어 전남대 신경호 교수의 소개로 전화로 통화까지 했다. 그때 전화로 언젠가 일본에 돌아가기 전에 태백을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 뒤 바빠져서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그런 기억이 생생했는데, ㅊ씨의 감상문을 뜻밖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ㅊ씨의 부친이 고향을 떠나 태백에서 탄광부가 된 경위, 가난하고 힘든 일가의 생활이 담겨 있었다. 흡사 황재형 화가가 그린 세계 그대로인 듯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소리를 듣고 컸습니다. 그 소리는 망루에 걸어놓은 사이렌 소리였습니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면 광부의 부모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은 우르르 탄광으로 몰려갑니다. 사이렌 소리는 탄광에서 사고가 났음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탄광 갱구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굴에 갇힌 광부의 식구들이 울며불며 가슴을 칩니다. 주검으로 변한 광부들의 시체를 동료 광부들이 업고 밖으로 나오면, 죽음을 당한 광부의 가족들은 미쳐 날뜁니다. (중략) 이 체험이 저에게 고통과 기억의 연대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요?”



ㅊ씨에 따르면, 1988년에는 전국에 347곳의 탄광이 있었으나 1998년에는 11곳로 줄었다. 태백지역에서는 45곳이었던 탄광이 지금은 3곳만 남았고, 1만8천명이던 탄광부는 2천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태백시 인구도 1987년의 12만명에서 2005년에는 5만2천명으로 격감했다.
 

 
 » 황재형 작〈퇴근버스〉



“1960년대에서 1980년 초까지 광부들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군으로, 피와 땀을 바쳐 국가발전을 위해 탄을 캤습니다. (중략) 그들은 피와 땀을 흘려 국가의 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되었건만, 국가는 많지 않은 돈으로 광부들을 보상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헌신짝처럼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오랜 탄광 일로 폐에 탄가루가 박혀 지금도 많은 광부들이 진폐증으로 고통당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주 5·18에 앞서 1980년 4월 사북탄광에서는 어용노조와 저임금에 저항하는 항쟁이 일어났으나 계엄사령부의 가혹한 탄압을 받아 모두 91명이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그 사람들과 가족의 운명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사북사태라 불리고 있는 이 항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탄광부의 피와 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ㅊ씨는 연탄구이 식당에 갈 때마다 ‘고기를 굽는 저 검은 연탄에 광부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 태백에 지금은 거대한 카지노 건물이 솟아올라 전국에서 도박 중독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모텔이나 사우나에서 숙박하면서 끝없이 일확천금의 꿈을 쫓고 있다. 무자비한 산업자본의 폐허 위에 지금은 금융자본의 채무노예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황재형 화가한테는 〈퇴근버스〉라는, 특히 인상깊은 작품이 있다. 피곤에 찌든 노동자들을 태운 소형 버스가 석양을 향해 시골 길을 달려가고 있는 장면이다. 그 앞길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모습의 소외와 착취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중예술운동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그렇게 묻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확실히 1970년대, 80년대 상황과 현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새로운 상황 아래서 과거와는 형태를 달리한 착취와 소외가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민중예술은 가능하며, 그 광맥은 소진되지 않았다. 나는 ㅊ씨의 감상문에서 그것을 배웠다.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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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한겨레, 기사등록 : 2007-07-06 오후 06:52:55



위의 그림들이 흑백으로 되어 있어 칼라로 된 그림들과 황재형 화가의 다른 그림들을 저희 세미나 게시판에 올립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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