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67
제목 구럼비는 그렇게 쉽게 깨지는 바위가 아닙니다

2012 7월 20 - 10:12 익명 사용자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너는 부서지고 깨어져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일어서리라 우린 너와 함께 하리라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 강우일 주교 글 가운데서

 

오늘도 강정은 싸우고 있다.



지난 5월말 다시 강정을 찾았다.

올 해 들어 끝내 구럼비는 깨지기 시작했고, 해군기지 공사는 강행되고 있었다. 레미콘에 올라가거나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레미콘을 몸으로 공사를 막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수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고 많은 주민들이 ‘전과자’가 되었고, ‘종북좌파’의 낙인이 찍혔다. 너무나 억울한 주민 한 분은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부의 지시로 무리하게 공사는 계속 강행되었고, 우근민 지사의 공사중지명령에 한 줄기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의 뜻은 철저하게 배반되었다. 제주도청 앞에서 매일 천 번의 절을 올리며 지사에게 읍소를 거듭했던 주민들의 마음을 끝내 무시한 것이다. 도지사에게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며 강동균 마을회장을 비롯하여 고권일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영희 여성위원장까지 눈물을 흘리며 삭발을 감행했다.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을 떠올리게 하는 장벽 안쪽에서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크레인이 구럼비 바위를 깨는 굉음이 들린다. 3만년의 삶의 역사를 안고 있는 구럼비 바위가 깨지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으며 농사를 지을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구럼비 바위 앞바다를 무지막지하게 매울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흉물스럽게 널려 있다. 평화의 마을 강정에서는 오늘도 고향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처절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고립되어 가는 강정의 싸움에 힘을 보태기 위해 전국의 평화활동가들이 강정에 모였다. 올 해 들어 강정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강정지킴이’들도 함께 했다. 공사장 주위가 모두 집회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합법적인 집회를 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공사를 막을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댔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공사를 막으려 했지만,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금이라도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레미콘을 막는 것뿐이다. 공사장 정문에서 매일 열리는 천주교 미사 시간 한 시간 남짓은 레미콘이 출입하지 않기로 약속이 되었다고 한다. 그 한 시간 만이라도 공사를 늦추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다.



다음 날 오후에는 성공회 미사가 열렸다. 어제 사제서품을 막 받으신 신부님이 그 길로 강정으로 달려오셨다. 자신의 신부의 삶을 바로 지금 가장 고통받는 아픔의 땅 강정에서 시작하신다는 신부님의 고귀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오늘은 미사에도 아랑곳 않고 레미콘이 육중한 몸집을 이끌고 줄지어 공사장으로 들어간다. 공사장 정문에는 회사에 고용된 거대한 몸집의 젊은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사장 건너편에는 서울에서 건너온 육지 경찰의 경찰버스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40-50여명의 사람들을 막기 위해 대략 300-400여명쯤의 경찰이 ‘진압군’처럼 늘 대기하고 있다. 이미 경찰은 삼성과 대림 두 건설업체의 하청용역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건하게 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해군기지 결사반대’가 적힌 깃발과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차들과 올레꾼들에게 강정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미사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한 명의 활동가가 ‘해군기지 결사반대’의 깃발을 들고 공사장으로 향하는 레미콘을 막아섰다. 그는 조용히 손을 모으고 레미콘 앞에 엎드려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더 이상 공사를 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호소인 것이다. 뒤이어 20여명의 활동가와 주민들이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레미콘의 운전기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한 명의 활동가가 그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제발 공사를 하지 말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다. 끈질긴 그녀의 설득에 끝내 운전기사도 눈물을 흘린다. 너무 마음이 괴로워 해군기지 공사 일을 그만 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누가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괴로운 상황에 몰아넣은 것인가.





 


순례자처럼 땡볕 아래에서 절을 올리는 이들 앞으로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레미콘이 멈춰 섰다. 곧이어 경찰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해산하지 않으면 금새 연행이라도 할 태세이다. 미사가 끝날 무렵 신부님들께서 레미콘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 곁으로 오셔서 한 명 두 명 손을 잡아 주시며 안아주셨다. 그 들의 손을 꼭 잡고 사람들 속으로 안내하신다. 절을 마친 이들, 곁에서 타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이들, 손을 잡아주시는 신부님 모두의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한 신부님께서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우신다.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손을 꼭 잡고 걸어 나오는 사람들 뒤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경찰들이 폭력으로 위협하는 그 곳에서 한 치의 굽힘도 없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절을 올리는 그 들의 모습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걸어 나오는 그 들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평화의 얼굴을 보았다.

 

 

“구럼비는 그렇게 쉽게 깨지는 바위가 아닙니다.”



지난 3월, 구럼비 발파 소식에 모두가 실망하고 있을 때, 강동균 마을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의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아주 소박한 바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이제 6년째로 접어들었다. 국가에 의해 마을 공동체가 산산이 찢기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제주 섬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전과자’ 와 ‘종북좌파’의 마을로 낙인찍혔다. 건설회사의 용역으로 전락한 경찰의 폭력과 연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께 영혼이 없는 듯한 젊은 용역이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시비를 거는 야만이 횡행한다.

“이 싸움은 이미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국가폭력에 대해서도 평화의 마음으로 이미 이긴 것이다.





강정마을에서는 매일 하루를 마감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문화제의 끝에는 모두 함께 강정댄스를 춘다. 하루 종일 싸움에 시달렸던 모든 이들도 이 순간만은 참으로 밝고 행복한 평화의 얼굴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밝은 빛이 넘실대던 이 땅에 어두움이 느닷없이 덮쳐도

함께 살던 공동체를 지키려 너도나도 힘에 힘을 모았네

여기는 강정 살맛나는 마을

어두움을 이겨내어 살리세 두리둥실 한맘으로 살리세



이번 여름에는 모두가 강정으로 달려가 마을 주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덩실덩실 강정댄스를 추었으면 한다. 그 곳에서 평화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강정은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그 곳에서는 이미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고 있다.’

 

김영환(평화박물관 활동가)



● 이 글은 “역사교육” 2012년 여름 97호에 실린 글을 일부 뽑은 것입니다





* 7월30일부터 8월4일까지 "강정평화대행진"이 열립니다.

많은 분들의 참가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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