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연

제목 홍진훤 - 임시풍경 Temporary Landscapes
2013 4월 15 - 17:38 익명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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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사라짐과 탄생의 과정을 지켜보며 발견한 것은 도시의 모든 풍경은 그 자체로 임시적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존재증명과 부재증명의 수단이라면 도시의 풍경조차 그러하다. 부재를 위한 존재로서의 도시는 스스로 임시풍경이 되고 그 과정의 주체이자 객체인 도시인들 또한 스스로 임시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작가노트


홍진훤


임시풍경(Temporary landscapes)


참 오랜 기간 동안 개발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며 도심재개발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사라
짐과 탄생의 과정을 지켜보며 도시의 임시적인 오브제들을 찾아 떠돌았다. 그 시간을 거쳐 이제야 알
게 된 것은 도시의 모든 풍경은 그 자체로 임시적이라는 것이다.
사진이 존재증명과 부재증명의 수단이라면 도시의 풍경조차 그러하다. 개발은 파괴와 창조의 투쟁의
과정이다. 이 끝없는 투쟁의 특징은 모든 것을 임시적으로 만든다는 것에 있다. 개발의 주체이자 객체
인 정주적 인간의 삶은 이 도시의 변화와 함께 변화된다. 이 과정에서 매 순간 모든 것은 임시적 존재
로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모든 임시적 존재들은 일상 속에서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개
발의 과정은 우리에게 은폐되고 또한 도시적 풍경을 통해 시각적으로 반복학습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개발에 대한 각인은 철거민들의 이야기나 부동산경기 등의 뉴스거리로 대표되는 단
편적이고 파편적인 타자화된 도시 이야기들뿐이다.
정작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도시의 본질적 변화에 대한 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물론
이데올로기의 충돌과 다중의 욕망이 서로 얽혀 있고 이를 주도하는 이들은 건설자본과 그와 결탁한
세력이겠지만 우리 역시 그들의 결정에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녹록지 않은 삶을 구
원해 줄 메시아로서 우리는 도시의 개발을 받아들여 왔다.
그로 인해 우리의 정주적 공간은 해체되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되었으며 그 메시아의 요구에 따라 우
리는 조금씩 조금씩 주변부로 물러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노마드적 생활양식을 강요받았
고 이 도시인들의 노마드적 삶은 스스로의 삶을 위태롭게만 한다. 파괴를 위해 창조해야만 하는 도
시의 운명은 스스로 임시적 존재가 되었고 이를 추종하는 모든 이들의 삶조차 임시적으로 전락시키는
기재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도시인들인 우리들에게조차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괴기한 이 풍경들은 과거의 부재를 증명하고 또
한 스스로 부재될 운명을 존재로써 증명한다. 안타깝게도 이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러한 임시적인 풍경들일 뿐이고 스스로 이 풍경의 한 조각이 되어가는 임시적 존재로서의 자화상뿐
이다.
이 임시풍경으로 명명된 작업을 진행하며 도시의 시각화에 대한 고민들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도시의 스펙타클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현재의 도시는 더이상 도시인들에게 스펙타클로 다
가오지 않는다. 도심 개발이 시작되는 시절에야 사람들에게 63빌딩의 스펙타클은 그 자체로 가히 충
격이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100층이 넘는 건물에서 충격적인 스펙타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빼곡히 드러선 건물숲에서도 아무런 스펙타클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도시의 일부가 되었고 그것들은 더이상 시각적 충격의 꺼리가 되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도시의 일부로서 도시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풍경 속에서 일 것이다. 개
발이 만들어낸 의도하지 못한 파편적 흔적들. 그것을 찾는 것이 이 시대의 도시를 재인식할 수 있는
시각적 근거들로 판단되었다.
또 한가지는 도시에 대한 시각적 타자화의 경향이다. 이제 도시는 적어도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더
이상 타자화된 개념이 될 수 없다. 도시라는 시공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들에게 도시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유기적 관계 속에 있다. 그 관계 속에서 내 삶의 편린들이 곧 도시의 편린들이며 그 편린들
의 집합이 도시에 관한 사진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
타자화될 수 없는 도시는 더이상 적대시 될 수도 없다. 도시문명을 적대시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
가자는 선동에 불과하다. 도시를 살아내고 있는 또 살아나가야 할 우리에게 도시는 애증의 대상과도
같은 내안의 또 다른 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도시는 우리에게 적이 아닌 내면의 모순과도 같은 것이
다. 그 모순의 특질들을 찾아내고 기록하고 늘어놓는 것이 도시를 해석하는 사진가의 역할이라 생각
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 삶의 공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인
가이지 도시를 적대시하고 그 비인간성을 외쳐치는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가 서있는 곳조차 도시
의 시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적 타자화의 시도 속에서 도시는 철저하게 인간성과 감수성이
거세된 시공간이라고 규정지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 실존하는 도
시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 도시 안에도 분명 사람이 존재하며 인간성과 감수성이 존재한다. 모든 개발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
들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도시화된 사회와 다르게 발현될 수는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가 주는 획일화된 시각적 폭력과 현대적 속도
아래에서 은폐되어 잘 드러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술가는 이것을 들추어낼 수 있고 그 세밀
한 감수성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낼 책임이 있어 보인다.
이 도시에 대한 스펙타클적 접근과 타자화에 대한 지양을 시각적 토대로 작업을 진행했다. 정주의 개
념이 해체된 이 임시풍경 속에서 개발이 의도하지 않게 생산한 파편들을 기록하며 그 속에 우리의 삶
과 감수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 우리의 현재를 재인식하고 도시인으로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증명
하는 이 과정. 그것이 이 도시에서도 예술이 가능한 이유이고 가능해야만 하는 당위라고 믿는다.




■ 전시개요


○ 전 시 명 : 2013 평화박물관 기획 신진작가전
○ 주 최 : 평화박물관
○ 기 간
- 홍진훤 : 2013. 4. 16.(화)∼4. 25.(목)
- 윤동희 : 2013. 4. 30.(화)∼5. 9.(목)
- 이재환 : 2013. 5. 14.(화)∼5. 23.(목)
○ 장 소 : space99 (서울 종로구 견지동 99-1)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