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보도]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비정규직 사회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전 (주간한국, 2011-03-09)
2011 4월 18 - 16:05 익명 사용자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비정규직 사회<바늘 하나 들어갈 틈> 전 김영글 등 5人 정규직, 비정규직 양립 노동현장의 다양한 모습 담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지금도 농성을 하고 밥을 굶으며 투쟁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의 머리띠를 맨 이들이 "안 돼!"를 외쳐온 것은 벌써 수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나 고용의 질 개선은 아직도 요원하다. 대신 이들을 마뜩잖은 눈으로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얼마 전 49일 만에 타결된 홍익대 미화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는 시민단체의 조직적 연대가 아니라 시민 개인의 자발적 지지가 늘어나 변화된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됐음을 보여주는 변화상인 셈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사회가 확산되고 일반화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새로운 난제에 부딪혔다. 비정규직이 자신의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를 타자화하고,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 주류에 편승하는 신자유주의적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의 부조리한 노동 환경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에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자아내게 한다. 지난 2월 24일부터 종로의 평화박물관 space99에서 열리고 있는 '비정규직 사회에 대한 긴급보고서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은 바로 이 같은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냉담한 사회적 시선들을 예술가의 눈으로 여과시킨 의미 있는 전시다.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의 얼굴을 비롯해 학교의 청소 노동자, 기아 모닝차를 만드는 동희오토 노조원, 임대아파트 주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대별되는 노동현장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동희오토 농성 장면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절대권력인 자본의 실체를 가시화한 김영글 작가의 'Invisible'은 누군가와 맹렬히, 그러나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흐릿하게' 담고 있다. 영상에서 싸우는 이들의 정체는 분명하다. 100% 비정규직 기업이자, 최저임금과 해고 천국으로 악명 높은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싸우는 대상은 당연히 이들의 고용주인 기업이지만, 이들이 몸으로 부딪치는 실체적 적(敵)은 이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찰이나 용역 깡패들이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원할 때마다 자신을 숨기면서 책임에서 벗어나는 사람(기업, 자본)이 있는가 하면, 원하지도 않았는데 투명인간 취급당하는 사람(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고 설명하며 "여기서 주목한 것은 사용자도 노동자도 아닌, 권력 그 자체가 작동하는 파편적인 광경들"이라고 덧붙였다. 안보영과 임흥순 작가는 언제나 존재했으면서도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으며 이들의 정서와 이들에 대한 사회의 무감각한 시선을 역으로 포착한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청소 용역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안보영 작가의 'Crack'은 별다른 기교나 연출보다는 오로지 청소노동자의 모습을 관조하는 시선만 있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길게 펼쳐진 복도 여기저기서 묵묵히 청소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보인다. 어떤 장면에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빈 공간에 퍼지는 소음을 담으며 이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소리와 흐릿한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은 다시 한번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이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조습 작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된 노동 현장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에 대한 사색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작품화했다. 2009년 작인 '따봉'과 '포옹'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모내기'는 작가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수많은 목장갑을 그대로 작품에 옮긴 것으로, 노동자의 피를 상징하는 목장갑을 묘목으로 처리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이다. 한편 전시장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규환 작가의 '당신이 쓰다 버린 냉장고 아래 살아 있습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모습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파견미술가로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동참해온 나규환 작가는 낡고 비좁은 냉장고 폐기물을 뒤집어 쓴 채 천형처럼 묵묵히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비정규직의 초상으로 완성시켰다. space99의 신성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냉담한 사회적 시선에 중점을 두면서, 그 시선에 숨어 있는 권력이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하며 "비정규직 사회에 대처하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예술가들의 현재진행형 보고서가 될 것"이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주최 측은 이번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들과 각계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사전 워크숍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울노동문제 연구소 하종강,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대표, 진은영 시인은 한국 비정규직의 상황을 함께 고민하며 이번 행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작가들은 전시 개막 후에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공동주최하는 비정규 투쟁 노조와의 대화에 참석해 전시공간에서 예술과 현장이 만나는 새로운 시도들도 예정돼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최소 570만 명(통계청, 전체 임금노동자 중 33%)에서 최대 860만 명(한국노동사회연구원 조사, 50.4%)에 이르는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모든 사람이 계속 고민해야 할 동시대 공통의 현안이 됐다. 이번 전시는 복지가 최대 화두인 시대, 더 이상 '그들의 문제'일 수 없는 비정규직 문제를 직접 고민하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