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일본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 한국에도 있다? (오마이뉴스)
2009 8월 26 - 12:30 익명 사용자

홍성담 화백의 순회 전시 '야스쿠니의 미망' 중 '캉코쿠 야스쿠니'일부.

그림 속 인물들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고, 그림 중심에 불타오르는 건물은 용산참사의 현장이다.   올해로 64번째를 맞는 광복절은 언제나 그렇듯이 기쁨과 슬픔을 함께 안고 현재로 다가왔다. 한 해에 국가지도자 둘을 잃기는 참 드문 일이거니와 국민 입장에서 그 정서를 아무리 달래려 해도 역시나 상처일 뿐이다. 이제는 건국이 중요하다니 뭐니 광복의 의미조차 희석되는 이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를 따갑게 일깨워주는  전시가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 홍성담 화백. 민중미술 1세대이면서 또 유일하게 남은 한 명이기도 한 그가 지난 2006년 한국·대만·일본 3국 공동의 '야스쿠니반대행동'의 결성과 함께 땀과 눈물로 걸었던 야스쿠니 주제의 그림들을 내놓았다. 전시는 '야스쿠니의 미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5일부터 이 달 30일까지 조계사 가는 길목인 종로 견지동 평화공간(02.735-5811)에서 계속된다. 광주항쟁으로 인해 간첩으로 몰리고, 고문과 징역살이에 곤욕의 세월을 보낸 홍성담 화백이 어느 글에선가 "다시 오월이 아니라 아직도 오월이다"라는 말을 했듯이 그가 8월 광복절을 맞아 서울 복판에 야스쿠니를 내건 까닭은 야스쿠니의 미망을 통해서 야스쿠니에 대한 경종, 일본에 대한 경고를 하고자 하는 준엄한 선언이 아닐까 싶다. 전시에는 야스쿠니 연작 17편과 '강코쿠 야스쿠니'라는 대단히 위험해 보이는 그림까지 포함해 총 18작품이 걸려있다. 침략과 강점의 36년과 그에 의한 무수한 말살과 수탈 그리고 끝내는 강제징용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패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시절과 먼 세대라고 할지라도 전통이랄까 막연한 반일정서야 여전하다지만 우리 사회는 서서히 일본을 향한 시선이 흐릿해지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서, 화집이라고는 할 수 없고 해설문과 함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본다면 야스쿠니가 왜 중요한지, 아직도 오월이라는 생각 분명한 홍성담 화백이 3년간 온갖 고생을 다해서 야스쿠니에 천착한 까닭을 가슴으로, 다시금 분노로 느끼게 된다. 우리 쪽에선 그동안 정권이야 어떻든 8월 광복절 행사를 해왔지만, 정작 중요한 대상인 일본에서의 표정은 잘 읽지 못했다. 그러나 8월 15일을 전후해 동경 야스쿠니 신사를 가본 사람이라면 그 간담 서늘한 느낌을 오랫동안 떨치지 못할 것이다. 평소의 일본인은 매우 순하다. 한국인에 비해 100배는 더 순할지 모른다. 물론 야스쿠니 주변을 종일 돌아다니며 차량 스피커로 떠들어대는 일본 극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스쿠니 참배객들은 그 순한 표정 그대로이다. 그러나 수십만의 일본인들이 그 순한 얼굴을 하고 야스쿠니에 몰려드는 그 무거운 의미를 그 안에서 느껴본다면, 적어도 일본인 그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일본과 함께 세계대전을 발발한 독일은 일본과 다르다고 홍화백은 말한다. "독일은 그들 군대에게 나가서 죽으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일본 천황은 자신의 군대에게 나가 죽어 야스쿠니의 사쿠라로 피어나라고 한다. 이 얼마나 반생명적인 패륜인가"라고 분을 삼킨다.

"우리는 죽어서 야스쿠니 뜰에 사쿠라 꽃으로 피어 다시 만나자"

동아시아 전쟁을 일으키기 전 일본에 있어 사쿠라는 생명. 생산, 다산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군국주의자들의 조정에 의해 마침내 죽음의 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홍화백의 전시작에는 공통적으로 결코 아름답지 않은, 우리가 여전히 속고 있는 기존의 사쿠라 이미지와는 다른 사쿠라 꽃잎이 뒤덮고 있다. 그것은 즉 죽음이 뒤덮여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천황과 히로시마 원폭'이라는 작품은 원폭과 천황, 그리고 히로시마 피폭일본인 세 개의 소재가 등장한다. 작품의 중심에 놓인 천황의 가슴팍에는 3가지의 것. 천황의 신물만이 소중하게 보호될 뿐 헐벗고 죽어가는 일본인들은 안중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해 역사를 조금만 들쳐봐도 알 수 있다. 일본천황은 애초에 국민들의 생명 따윈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홍성담 화백의 '야스쿠니와 군위안부' 야스쿠니 신사와 군 위안부를 그렸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이 침략했고 동아시아 전쟁의 직접적 피해자인 한국, 대만, 오키나와 등에도 얼굴을 감추고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제국주의 망령 즉, 야스쿠니의 미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여름 날씨에도 등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원폭을 초래하고 수십만의 자기 백성을 죽인 일황이나 80년 광주에서 가깝게는 용산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몬 누군가는 다를 바가 없다고 홍화백의 그림은 말한다. '캉코쿠 야스쿠니'는 한국에 존재하는 야스쿠니를 드러내고 있다. 일제의 잔재라는 우회적 단어보다 한국의 야스쿠니라고 하니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그림을 책 읽듯이 할 수는 없지만, 잘 먹고 잘 살아온 우리들의 달콤한 시간 뒤에 정말 얄팍한 막에 덮인 야스쿠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홍성담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분명히 경계해야 할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느슨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단순하게 분노와 선언인 것은 아니다. "피카소의 유일한 실패작인 '한국에서의 학살'의 전철은 밟지 말자"고 다짐하고 시작한 홍화백의 야스쿠니 작업은 사회에 대한 발언 말고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리얼리즘의 부활

80년대, 사회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민중문화운동, 그중 민중미술은 한때 불길처럼 타올랐으나 현재는 그 명맥이나 겨우 잇는 형국이다. 그런 탓에 "광주에서도, 모진 고문의 감옥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에 가슴을 날카롭게 베여가면서 이번 작업들을 했다"고 고백하는 홍화백의 시선이 평소와 달리 젖어있다. 홍성담 화백은 일련의 야스쿠니 작업을 통해 힘겹게 민중미술의 현재를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의 미망'을 통해 구현된 홍성담식 민중미술의 양식에 대해 '샤먼 리얼리즘'이라  명명한 소설가 서해성에  홍화백 역시 동의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범람기에 리얼리즘은 좀 생소할 수도 있다. 게다가 샤먼 리얼리즘이라니. 그러나 아직도 미해결의 역사를 잔뜩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홍화백은 '다시 리얼리즘이다!'라고 외치는 듯 하다. 물론 홍성담의 샤먼 리얼리즘과 80년대 민중미술과의 혈연관계는 앞으로 더 시끄러워져야 할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그들 속에서, 그리고 그림을 구경하는 우리들 속에서. 그렇지만 복잡한 갑론을박은 좀 미루더라도 당장은 외로움 혹은 그리움에 사무친 1세대 민중미술가 한 명이 손들고 나섰다는 것에 역사의 짧은 한 줄은 내주어야 할 것이다. 이 달 말까지 서울에서의 전시를 마치면 부산.광주 등 국내 다른 곳에서의 전시도 모색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는 동경과 대만 그리고 하반기에 독일 순회전시를 계획하는 홍성담 화백의 '야스쿠니의 미망'은 한국 리얼리즘의 부활을 말하고 싶어 한다. 홍화백은 한국사회에 예술가와 예술이 복무해야 하는 본질에 대해서 말한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자이다. 자기 자신조차 쉼 없이 부정함으로써 예술행위를 유지하는 것인데, 정치권력쯤이야 언제든지 불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한다. 그의 리얼리즘은 다시금 저항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홍성담의 '야스쿠니의 미망' 18점 그림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 누구나 보면 이해할 수 있고, 화가의 마음을 자기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샤먼 리얼리즘 이전에 그점이 우선은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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