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여, 기록하다”…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증언 보고서 나와

기사입력 2019.10.14. 오전 9:39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여주시유족회 발간…71명 증언 담아

인민군에 의한 우익인사 희생은 채록 대상자 아니어서 안실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여주시유족회가 발간한 민간인 희생 증언 보고서.(유족회 제공) © News1 김평석 기자

(경기남부=뉴스1) 김평석 기자 = #!.“형 도망가”라고 했지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도망 가냐”면서 치안대에게 끌려갔어.

허술한 새끼줄로 손을 묶어 놓아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지, 이후 끌려간 사람들은 장풍리 골짜기에서 여덟 명씩 한 줄로 세워 놓고 M1총으로 쏴서 죽였어.

#2.느닷없이 미군들의 총탄이 쏟아졌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 쓰러졌지. 스물여덟이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 겨울바람에 찢겨진 문풍지처럼 새어나왔던 그 목소리, “빨리 도망가”라는 그 말만 듣고 무조건 뛰었지. 쓰러져버린 어머니 등에서 떨어져 차디찬 얼음바닥을 기어 다니며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는 갓난아이 여동생조차 뒤로하고 무조건 뛰었어.(증언 채록 중에서)

한국전쟁 전후 경기 여주지역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증언들을 정리한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여주시유족회는 지난 4월부터 북내·대신·흥천·금사·산북면 지역에서 증언 채록 사업을 진행해 최근 1차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4일 밝혔다.

보고서에는 여주지역 곳곳에서 일어난 당시의 민간인 희생과 학살에 대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유족회는 “증언자들은 대부분 고령이었지만 생생하게 당시 참상을 그대로 전했다. 특히 국군과 경찰, 치안대가 행한 민간인 학살 증언은 비극의 현대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주지역 민간인희생사건과 관련해 신청인 참고인 조사, 자료조사,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말부터 1951년 2월까지 모두 98명 이상의 여주지역 주민들이 부역혐의자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국군과 여주경찰서의 지휘를 받았던 치안대에 의해 지역 곳곳에서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여주시유족회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를 토대로 북내, 대신, 흥천, 금사, 산북지역을 1차 대상자로 선정해 지난 4월부터 증언 채록 사업을 벌여 모두 71명의 희생자 유족과 목격자 등의 증언을 이번 보고서에 담았다.

여주 시내지역인 얼음 창고가 있던 세종고 뒤 남한강변에서 인민군에 의해 우익인사도 다수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채록 대상지가 아니어서 이번 증언록에는 실리지 못했다.

정병두 여주시유족회장은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 희생과 학살은 그동안 ‘좌익과 우익’, ‘가해자와 피해자’로 편이 갈리면서 국가는 물론이고 지역과 지역, 심지어 이웃과 이웃 그리고 가족, 형제까지도 관련 사실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증언 채록사업은 피해와 갈등, 통곡과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 이를 교훈으로 다시는 서로를 파괴하는 전쟁의 과오를 범해서 안 된다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게 하고 평화의 가치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시유족회는 내년에도 중앙동, 여흥·오학동, 점동·가남·능서·강천면 등 나머지 지역에서 증언 채록사업을 진행해 백서로 완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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