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이 지난 오늘…국가의 고문은 끝났습니까 [커버스토리]

신문A5면 TOP 기사입력 2019.07.27. 오전 6:00 최종수정 2019.07.28. 오후 3:37

ㆍ‘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 생존자들 인터뷰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갔다. 국가는 “너를 간첩이라 부르기로 했으니 간첩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고문받을 때 질끈 감아 견뎌낸 눈가엔 어느덧 주름이 들러붙었다. 이 가족은 지난 세월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다루는지 바라만 볼뿐,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했다. 사진 위부터 ‘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의 생존자 박동운씨, 박미심씨, 허현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동운씨(74) 가족은 38년째 싸우고 있다. 상대는 국가다.

　법정에서 국가는 여러 번 얼굴을 바꿨다. 평범한 일가족을 고문한 뒤 간첩이라고 했다가(1981년) 아니라고 했다가(2009년), 죄 없는 이를 괴롭혔으니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했다가(2012·2013년)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2014·2015년).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사건에선 배상하는 게 맞는다고 하더니(2018·2019년) 일단 한 번 더 재판을 해보고 결정하자(2019년)고 했다. 언제 결론을 내릴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안 했다는 것인지 국가가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이 박동운씨 가족의 삶도 격변했다.

　농부이거나 회사원이었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20년간 암약한 가족간첩단이 됐다. 가장이자 아버지였던 이는 18년의 수감생활 후 아내와 아들, 딸을 잃었고, 붙임성 좋고 성실했던 농사꾼 부부는 이웃의 조롱거리가 됐다. 행방불명된 남편 없이 두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간첩의 아내’라는 누명을 쓴 뒤 모든 것을 잃고 절로 들어갔다.

　국가가 ‘법대로’ 이들을 괴롭히는 동안, 박씨 가족은 호주머니를 털어 인권단체를 만들고 용산참사 피해자들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산업재해 피해가족들을 도왔다. 다시 농사를 짓고 땀 흘려 일하고 고문으로 무너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다니고 대출금을 갚고 세금을 낸다. 그리고 여전히 법정에서 국가와 맞서고 있다.

　지난 10일 전남 진도에서 ‘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의 생존자 3명을 만났다. 1981년 박씨 가족 중 최소 8명이 불법 감금돼 고문을 당했고, 그중 5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박씨 가족이 재심을 통해 ‘간첩’이라는 멍에를 벗은 것은 2009년이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군사정권 시절 사람이 사람을 고문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3명은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박씨에게 1심에서 받은 손해배상금을 돌려내라고 판결했다. 박씨 가족과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법논리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청와대와 사법부의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과거사를 바로잡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에선 이 판결이 잘못됐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지만, 국가 소송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지난 5월 또다시 상고를 제기해 배상금 지급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오래된 사건이어서가 아니라 국가폭력 피해자를 여전히 ‘법’으로 쥐락펴락하는 국가의 행위를 납득하기 쉽지 않아서다. 박씨 가족이 서슬 퍼런 안기부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하고 간첩으로 둔갑한 것이 38년 전이다. 2019년 현재, 국가의 고문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첩” “아니다”…“배상하라” “토해내라”…피맺힌 가족수난사

박동운씨와 박씨의 고모부 허현씨, 고모 박미심씨(왼쪽부터)는 1981년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이들은 38년째 ‘가해자’ 국가와 싸우며,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국가가 저지른 범죄 최종완성처

대법관이란 사람들이 젤로 미워”

“대한민국 법은 미친 법…

사람 살리는 법 아니라, 미친 법”

“어쩌고 이런 법을 만들어 갖고

기가 막힌데…어쩌겄소”

　박동운씨(74)는 열네 번째 판결문을 기다리고 있다. 진도가족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박씨는 1981년부터 2019년까지 13개의 민사·형사·가사(실종선고)·헌법소원 판결문(결정문)을 받았다. 지난 38년 간 박씨는 피고인이었다가 원고였다가 다시 피고가 됐다. 지난 4월 받은 13번째 판결문(국가배상사건, 승소)을 끝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의 판결문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지난 5월 국가(법무부)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박씨는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전두환 정부에서 시작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소송중인 박씨 가족은 묻는다. “국가는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국가는 늘 뒤통수를 쳤다

　박씨 가족은 이번만큼은 국가를, 정부를 믿고 싶었다. 법무부는 2018년 1월 ‘과거사국가배상 패스트트랙’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과거 국가권력의 조직적 인권침해사건에서 국가배상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취지라고 했다. “무리한 상소를 자제”하고, “재판 대신 화해나 조정 등으로 해결”하며, “원고의 주장을 변론 또는 재판 준비절차에서 인정(청구인낙)”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패스트트랙 도입 후 실제 상소율이 줄었으며 국가배상 사건 처리속도가 빨라졌다는 홍보자료도 내놨다.

　박씨 가족은 그야말로 국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법무부가 대법원에 낸 4쪽 분량의 상고이유서는 대부분 사건 진행결과 요약으로 채워져 있다. 상고이유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은 단 한 문장이다. “소멸시효 항변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은 이 사건 및 관련사건의 통일적 법적용을 위해 필요한 것인바, 피고는 이상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상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이 문장의 뜻은 이들의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한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을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법무부는 왜 이런 억지를 부릴까.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먼저 2013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던 2013년 대법원은 갑자기 과거사 배상사건의 청구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는 법논리를 만들어냈다.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안(그 기간에 형사보상청구를 한 경우에는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제기해야만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였다. 이 논리를 발명한 사람은 박병대 전 대법관이다. 이후 박씨 가족은 2심까지 승소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2014년 패소(대법원)했다. 국가로부터 고문 범죄를 당하고 33년을 기다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대법원이 갑자기 만든 기준으로 인해 ‘2개월’ 늦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박씨 가족의 손해배상 청구가 늦어진 것도 법원 탓이었다.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서는 박동운씨의 아버지 박영준씨에 대한 실종선고가 필요했는데, 법원은 실종선고청구를 받아놓고 1년 넘게 끌었다. 법원의 늑장이 빚은 결과에 대한 책임마저 피해자들이 떠안게 된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이 만든 이 괴상한 판결의 존재 이유는 2015년 7월 드러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을 앞두고 법원행정처가 만든 문건을 보면 “그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라며 “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정립(국가배상 제한 등)”을 강조하고 있다. 대법원은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정권의 입맛에 맞춰 국가폭력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상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논리를 만든 뒤,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이 문건을 만든 법원행정처의 당시 처장은 박병대 전 대법관. 그는 지금 ‘사법농단사건’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박씨 가족을 변론한 조용환 변호사는 이 사건을 헌재로 가져갔다.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청구권을 박탈한 근거가 된 민법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2018년 8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규정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과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에 일반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박씨 가족은 헌재 결정을 근거로 서울고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4월 승소했다. 법무부가 상고만 하지 않았다면, 지극히 상식적인 흐름으로 이 사건은 일단락됐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여기서 대법원과 헌재의 오래 묵은 ‘격’ 싸움을 악용한다.

　최고법원의 위상을 두고 헌재와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라고 해석할 경우 위헌이라고 보는 것)’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무부의 속내는 대법원이 헌재의 위헌 결정을 한정위헌 결정처럼 간주해 효력을 부인해서 민사 재심의 요건으로 인정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멸시효 제한에 걸리지 않는 다른 사건들은 어쩔 수 없지만, 배상하지 않을 수 있다면 최대한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조용환 변호사는 “정권은 달라졌지만, 법원과 검찰이 조작사건 피해자들에게 갖는 뿌리 깊은 불신과 무시, 적대감의 산물이라고 본다”며 “대법원이 한정위헌결정의 효력을 무시하는 것을 이용해 결국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양승태 대법원에서 만든 사법농단 판결을 이용해 과거 검찰과 법원이 ‘함께’ 만들어낸 조작사건에 대해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9일 국회 사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이 사건에 대한 법무부 상고를 비판하자, “알아보고 조치하겠다”고 했으나 7월 26일까지 법무부는 상고를 취하하지 않았다.

　박동운씨의 고모부인 허현씨(83)는 끝나지 않는 ‘법의 굴레’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 법이 미친 법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살리는 법이 아니라…미친 법이라고요.”

■비극의 시작

　1981년 3월 7일 오전 5시 박동운씨는 권총을 찬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끌려갔다. 농협에 재직 중이던 박씨는 막 계장으로 승진했고, 아내는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양쪽 볼에 불그스레한 빛을 띠며 고요히 잠들어있는 아들(당시 5살)과 딸(당시 3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박씨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안기부는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박씨의 아버지 박영준씨가 간첩이며, 이 가족이 간첩활동을 돕거나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박동운씨와 어머니 이수례씨, 남동생 박근홍씨, 작은 아버지 박경준씨와 작은 어머니 한등자씨, 고모 박미심씨, 고모부 허현씨, 외삼촌 이영남씨까지, 가족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소 8명이 안기부에 잡혀갔다. 박동운씨는 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27일 집을 나간 후 소식이 끊긴 아버지가 폭격을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건너 듣고 제사를 지냈을 뿐, 왜 일가족이 갑자기 간첩단 혐의를 받게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박씨 가족을 치료한 의사 오동민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람이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사람한테 했다고 할 수도 없는” 고문을 최소 33일~최장 63일까지 당했다. 결국 허위자백을 한 박동운씨를 포함해 5명이 형사재판에서 간첩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경향신문을 포함해 언론은 ‘진도가족간첩단’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박씨는 1981년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98년 광복절특사로 풀려났다.

　고문당할 때 옆방에서 나는 비명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던 가족은 광주교도소 수감 당시 ‘가족좌담회’라는 이름으로 몇 개월에 한 번씩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교도관은 이들의 대화를 기록했다. “딴 생각 말라는 의미로 만든 자리였던 것 같다”고 박동운씨는 기억했다. 가족들은 고문 관련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지내는 방이 불편하진 않은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만 물었다.

“국가가 잘못했다” 우리가 원하는 손해배상은 이 한 줄의 진실

　박동운씨가 17년 5개월 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먼저 출소한 가족들의 삶도 감옥 안보다 낫다고 하기 어려웠다. 집행유예로 먼저 풀려난 허현씨는 마을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얼마나 혹독한 고문을 받았는지 아무리 얘기해도 “설마 그랬겠느냐”며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허씨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은 “저기 안기부에서 두들겨 맞아서 미친놈 지나간다”고 놀렸다. 허씨와 아내 박미심(77)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이웃집들이 텅 비어있었다. 간첩 옆집에 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부부가 집을 비운 동안, 동네 아이들은 허씨 부부의 아이들을 줄에 묶어 끌고 다니며 “간첩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박미심씨는 말했다. “이런 비니루(비닐) 봉지 하나도 씻어서 널어서 쓰고, 쌀 한 톨도 흘리면 주워서 밤이고 낮이고 모르고 일만 하고 살았는데, 이런 법을 맹글어갖고 애기들을 잘 가르치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죄가 있는 놈을 벌주고 죄가 없는 놈은 벌을 안줘야 하는데, 어쩌고 이런 법을 만들어갖고 진짜로 기가 막힌데 어쩌겄소.”

　출소 후에는 보안관찰을 당했다. “경찰들도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형식적으로 묻고 찾아오고 불러대는” 몇 년이 계속됐다. 나쁜 일을 당하기 전 동네에서 붙임성 좋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났던 부부는 악착같이 살았다. 허씨는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 이장을 지냈다. 중간에 몇 달씩 그만두었다가도,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이 다시 그를 찾았다. 박미심씨는 “울 애기들(두 아들과 딸)이 그 ‘불’ 속에서도 착하게 자라줘서 그것이 젤로 고맙다”고 했다. 허씨 부부의 사위는 경찰관인데, 전두환의 경호 업무를 오래 담당했다. 사저 앞도 지켰고 백담사도 따라갔다. 이순자가 종종 좋은 옷감을 챙겨주었다. 부부의 딸은 부모는 전두환 때문에 고초를 겪었는데, 남편은 전두환 부부를 지키는 상황을 애통해했다.

　박동운씨의 어머니 이수례씨는 4년형을 살고 나왔다. 교도소에서 환갑을 지내고 나온 이씨는 두 아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절에 들어가 밥 짓고 청소하는 공양보살로 살았다. 남편이 실종된 뒤 두 아들을 홀로 키우고 손주까지 본 것을 행복이자 보람으로 알고 산 이씨는, 느닷없이 간첩과 동침하고 두 아들을 간첩으로 키운 여자가 돼 있었다. 그보다 괴로운 것은 어릴 때 헤어져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고통을 겪으면서도 부모 원망 한번 하지 않는 아들들의 깊은 속이었다.

■피해자들의 품격

박동운씨의 어머니 이수례씨의 묘소 앞에서 세 사람은 모였다 흩어졌고, 흩어졌다 모였다. 모여선 웃으며 얘기했고, 흩어졌을 땐 말없이 땅과 바다를 보고 있었다. 고문피해자로 4년형을 산 이수례씨는 2010년 세상을 떠났다. 박동운씨 가족은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아버지 박영준씨를 종이형상으로 만들어 이씨의 곁에 합장했다. 이준헌 기자ifwedont@kyunghyang.com

　박씨 가족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20여년을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7년형을 살고 먼저 출소한 숙부 박경준씨는 탄원서를 들고 전국을 쫓아다녔다. 1988년 열린 한국형사정책학회에서 사건의 진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고, 조작간첩의 존재를 믿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공식적인 수사기록 한 장 얻기 힘든 때였다. 박경준씨의 지독한 노력 덕분에 재심을 위한 토대가 만들어졌지만, 그는 1998년 고문후유증으로 재심을 청구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박동운씨의 동생 근홍씨도 3년 6개월 형을 살고 나와 기록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박동운씨가 1998년 출소하면서 비로소 가족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가족들은 실낱같은 증거자료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맸다. 유일한 공식자료는 검찰이 갖고 있었지만, 검찰이 기록복사를 불허해 소송까지 해야 했다. 가까스로 기록을 받게 됐을 때는 1만 쪽이 넘는 자료를 복사했다. 복사비만 100만원이 넘었다.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송소연 총무가 진도에 살다시피 하면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을 함께 했다. 박씨 가족에게 송 총무는 “우리보다 우리 일을 더 잘 알고, 기억해주는 친구이자 딸 같은 존재”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박씨는 2005년 가족들의 사건을 ‘85’번으로 접수했다. 박동운씨는 “아무도 이 사건의 재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맡으려고 하지도 않을 때 조 변호사님이 맡아줬다”고 했다. 박씨는 처음 조 변호사가 한 말을 지금껏 기억한다. “무죄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제가 장담은 못하지만, 이 일을 맡았으니 죽을 때까지 가 봅시다.”

　박씨 가족 사건은 2009년 11월 13일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1년 11월 3일 서울형사지법이 박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지 28년만의 판결이었다.

　재심을 준비하며 박동운씨 가족과 조용환 변호사, 송소연 총무는 ‘미래’를 꿈꾸며 약속을 했다.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지고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으면 그중 일부를 떼서, 국가폭력피해자들을 돕는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평생을 ‘고문피해자’ ‘간첩혐의자’로 산 이들에게 의미 있는 명함을 갖게 하자는 의미도 있었다.

　2009년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설립됐다. 다른 고문피해자들과 함께 박씨 가족들도 참여했다. 손해배상 재판결과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진실의 힘은 10년 동안 과거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재심을 돕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임을 열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피해자들, 산업재해 피해자들을 지원했고 세월호 참사의 모든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펴내는 작업도 했다.

　박동운씨는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감옥에 있을 때 국제엠네스티라는 곳에서 엽서를 받았어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보고 힘내라고,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영원한 친구라고 써서 보냈는데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한 거죠. 나도 나가면 뭔가 해야겠다.” 박씨의 어머니 이수례씨는 요양병원 침상에서 재심 결과를 들었다.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뒤였다. 이씨는 2010년 세상을 떠나기 전 유언처럼 여러 번 “우리처럼 억울한 사람들 지발(제발) 도와주라”고 말했다.

　허현씨는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 사건을 박정희 때부터 준비했다고 하더만요. 어디선가 우리들처럼 억울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세상이 될까봐. 또 무슨 사건이 조작되고는 있지 않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박동운씨는 현재 진실의 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보람 있게 사는 것 같고, 이 일이 제가 죽을 때까지 해야 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반성하지 않는 국가

고문의 흔적 세상 어떤 가족의 조카와 고모부가 같은 고문 흉터를 갖고 있을까. 각목과 쇠막대기에 짓눌린 허현씨 다리의 흉터. 정강이를 누르던 각목은 사라졌지만, 법은 아직 이 가족을 짓누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조작간첩사건과 같은 과거 국가폭력피해자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친다. 법원에 재심(형사재판)을 신청하고, 재심개시 결정을 기다린다.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다. 무죄판결을 근거로 국가에 형사보상금을 신청한다. 형사보상금을 받는다.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민사재판)을 청구한다. 손해배상 판결을 통해 배상을 받는다. 간단해 보이지만, 한 단계마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박씨 가족의 경우 재심을 신청해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내는 데에만 2년 2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지 10년이 된 지금까지 손해배상 재판은 마무리 되지 않았다.

　허현씨는 “우리 고문했던 그 사람들 보다도 지금 법무부 직원들이 더 밉다”고 했다. 박동운씨는 “대법관이란 사람들이 젤로 미워요.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최종완성처가 대법원 그 사람들이에요”라고 했다. 박씨 가족은 1981년 1심 법정에 갔을 때 법원은 다르리라 희망을 걸었다. 판사 앞에서 고문당한 흔적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판사는 못하게 막았다. 박씨 가족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김헌무 판사다.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국가는 반성하지 않는다. 적어도 박씨 가족들에게 전두환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승태 대법원과 김명수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박씨 가족에게 뿐만이 아니다. 억울함에 사무친 이들에게 ‘재심’은 최후의 희망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이후 수백 건의 재심이 이뤄졌으나 잘못된 재판에 대해 검찰과 법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경우는 거의 없다. 검사도 판사도 모두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속아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식이다. 종종 재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며 피해자들에게 과거 사법부의 잘못을 사죄하는 발언을 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변호인들 역시 혹시나 법원에 밉보일까 싶어 당시 법관이나 법원의 배상책임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이른바 ‘엘리트들’과 학력도 재력도 없이 조작간첩으로 몰린 이들을 대하는 판사들의 태도와 재판 처리 속도가 다르다고 재심 사건을 진행하는 변호인들은 입을 모은다.

　국가는 반성하지 않지만, 책임을 물을 때는 발 빠르다. 박동운씨 가족은 2012년 7월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하고, 배상액의 절반을 가집행으로 받았다. 1981년 이후 이들의 경제상황은 사실상 파탄지경이었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급했다. 그러나 2014년 대법원이 손해배상을 패소판결한 뒤, 국가는 이들이 가집행 받은 배상금을 ‘부당이득금’이라고 규정하고, 박씨 가족에게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놀란 가족들 중 일부는 빚을 내서 이 ‘부당이득금’을 갚았다. 흐른 세월만큼 이자가 불어 원래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갚아야했다. 조용환 변호사가 나서서 일부 변제 방식으로 원금부터 갚아나가는 데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법무부는 거부했다. 이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동운씨는 안기부에 잡혀갈 때 헤어진 아내, 자녀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박씨가 출소한 뒤, 아내는 집에 목사를 데려왔다. 그 목사는 박씨에게 반공교육을 시키려했다. 아내는 시댁식구들이 모두 잡혀간 뒤 교회에 의지해 홀로 세 아이를 키워왔다. 서로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이해’ 하기 힘든 날이 계속됐고, 부부는 결국 이혼했다. 아버지가 잡혀갈 때 태중에 있던 아들은 긴 세월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차마 아버지가 간첩죄로 복역 중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박씨는 자녀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박씨의 아내는 현재 암투병중이다. 박씨는 다른 조작간첩사건 피해자가 했다는 말로 심경을 전했다. “이것은 죽어야 풀리는 문제에요. 자식하고 맺힌 것은 젤로 가슴 아프고 치유가 되지도 않아요.”

박동운씨는 1998년 출소 후 20여년간 양봉을 했다. 그는 비 온 다음이면 더 사나워지는 벌통의 벌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열심히 연기 풀무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매케한 연기를 맡은 벌들이 침을 낮추고 달라들지 않는다고 했다. 문득 이 가족이 38년을 국가가 풀무질한 연기 속에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박씨는 출소 후 어머니를 만나러 자주 절에 가다가, 스님에게서 양봉을 배웠다. 수감 전 농협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던 박씨에게 벌에 자주 쏘여야 익숙해지는 양봉일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박씨는 그 일이 마음에 들었다. 양봉은 혼자 할 수 있었다. 법원에서 무죄가 났음에도 “그래도 뭔가 있겠지. 그래도 간첩은 간첩이지”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돼 좋았다. 게다가 벌의 세계는 민주적이어서, 힘센 한 마리가 먹이를 독식하지 않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일벌들이 중심이 돼 나눠먹는 것이 좋았다. 벌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박씨는 지금도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벌통을 보러 간다.

　박씨의 고모 박미심씨는 간경화 말기다. 고문 받을 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해서 머리에 생긴 이를 잡으라고 준 약을 통째로 먹었고, 죽다 살아났다. 그 때문인지 고문 때문인지 온몸이 성치 않은데 고문만 받고 기소는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보상금 한 푼 받지 못했다. 국가의 손익계산법이란 이렇다.

　허현씨는 “진도가 징글징글하다.” 그래도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징글징글한 땅에서 해결을 보고 싶다. 허씨는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는 살아있을랑가” 싶다가도, “재판이 끝나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손해배상은 ‘돈’이 아니라 “우리는 결백하고, 국가가 잘못했다”는 한 줄의 진실을 찾는 것이다

　박씨 가족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일본 오사카 동포 간담회에서 과거 재일동포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뉴스를 봤다. 박씨 가족은 궁금하다.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한 대통령이, 일본까지 가서 간첩 조작사건에 사과를 하는 대통령이 왜 자신의 행정부에서 국내 조작간첩 피해자를 끝까지 괴롭히는 법무부는 왜 두고 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진도 | 글 장은교·사진 이준헌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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