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긴급조치 피해, 국가배상 책임 물을 수 없어”

기사입력 2019.06.17. 오후 1:06 최종수정 2019.06.17. 오후 1:17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유신 정권 '긴급조치'로 고초를 당한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습니다.

법원은 특히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해석 논리를 김 전 대통령 등 사례에도 적용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1976년 수감됐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 13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이 소송에는 선고 사흘 전 별세한 이희호 여사와 올해 4월 별세한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 씨, 2·3남인 홍업·홍걸 씨 등이 원고로 참여했습니다. 문익환 목사, 함석헌 선생 등의 유가족과 함세웅·문정현 신부 등 75명이 원고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9호가 위헌으로 선언됐다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고 전제한 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이 국가배상 요건을 엄격하게 봤던 판례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 판례가 나온 이후 일부 하급심 판결들은 반대되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대법원 판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발령행위가 그 자체로 국가배상법에서 말하는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국가에 민사상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당시 긴급조치 9호에 따라 피해자들이 영장 없이 구금되고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당시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수사기관이나 법관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 등은 1976년 2월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자유 민주주의와 삼권분립 제도가 말살됐다"는 내용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그해 3월 명동성당 미사에서 낭독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당시 김 전 대통령 등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후 유족들과 일부 생존 인사들이 재심을 청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실형 확정 36년 만인 2013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이번 판결로 국가의 민사상 손해배상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채린 기자 (dig@kbs.co.kr)

 





기사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712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