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회 "과거사법 조속한 개정을" …유해 들고 상복 입고 상경 투쟁

기사입력 2019.05.22. 오후 5:30 최종수정 2019.05.22. 오후 8:37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회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과거사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학살 피해자 유해 40여구를 담은 플라스틱 상자를 가져와 상복을 입고 집회를 열었다. /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족들이 조속한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했다.

‘한국전쟁유족회 국회 특별법추진위원회’(추진위원회)는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서 정리 기본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며 상경 투쟁을 벌였다. 고령의 유족들은 대전과 홍성에서 발굴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해 40여구를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와상복을 입고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의 민간인 학살 유족회 회원 3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지만, 문재인 정권 3년차에 다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경주유족회 회장인 김하종 특별법추진위원장(86)은 “20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유족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도 “(한국전쟁 이후) 69년이 지난 지금도 유족들은 용공분자로 손가락질 받으며 냉가슴을 앓고 있다. 유족들의 간절한 숙원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국회는 아직도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80세를 전후한 유족들이 또 얼마나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민간인 희생자 유족과 모든 과거사 피해 유족이 명예를 회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했다.

진화위법 개정안 등 과거사법 7개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추진위원회는 “지난 14일 열린 법안소위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참석하지 않아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됐다”고 했다. 과거사법은 19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날 집회에는 ‘유민아빠’ 김영오씨도 참가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부터 딸 유민이가 발견된 4월24일까지 8일 동안 애가 탔다. 지금도 그 시기만 되면 가슴이 아프다”며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가족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고 싶은 심정을 69년 동안 안고 살아온 분들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어 “전 국토가 100만 학살 피해자의 무덤이라는 현실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죄송하고, 참혹한 진실을 모르고 외면하는 현실에 부끄럽다”고 말했다.

1966년 인도네시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베드조 운퉁 YPKP65 대표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피해자 베드조 운퉁 YPKP65 대표의 연대 발언도 나왔다. 운퉁 대표는 “과거 벌어진 학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피해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7년 ‘제7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운퉁 대표는 1965~1966년 벌어진 인도네시아의 민간인 학살 당시 투옥 생활을 했다.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와 군부 등은 반공주의를 명분으로 무고한 민간인 등을 50만명 이상 죽이고 100만명을 적법한 절차 없이 가둔 것으로 알려졌다. YPKP65는 이 학살 사건의 증언을 수집·기록해 알리고 학살지와 매장지 등을 찾는 일을 하고 있다.

운퉁 대표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제주 4·3사건 관련 행사에 참가하면서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알게 됐다”며 “진화위법과 같은 특별법이 없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학살 사건을 덮어놓고 공개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우파·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등 가해자들이 사회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제대로 된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학살의 피해자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아직도 믿는 사람이 많다.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노력에도 각종 압박이 들어온다”며 “일부 젊은 층에서 페이스북 등 온라인을 통해 진상규명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에선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다수를 이루고 있다. 법의 우산 아래서 진상규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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