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제목 [문화공간의 혁신] ④ 하얄리아 부지, 문화발전소로 (부산일보 20071122)
2008 2월 14 - 10:46 익명 사용자

[문화공간의 혁신] ④ 하얄리아 부지, 문화발전소로 "미군부대 시설물 재활용 예술촌 만들자" 대규모 개발 위주 정책 도시경관 망쳐 사하구 신평공단 '아트팩토리 숨' 대안

위 사진은 하얄리아 부지. 아래 사진은 빈공장을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바꾼 아트팩토리 숨. 하얄리아 시민공원도 아트팩토리 숨 같은 문화발전소가 될 수 없을까? 사진=김경현·정종회기자 view@   부산, 기억이 없는 도시 아침 출퇴근길 부산 남구 문현동 로터리를 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어느샌가 마천루처럼 쭉쭉 뻗은 아파트들에 가려 하늘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생각.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 부산 전역은 마천루 숲으로 변하게 될 거다. 그래서 이곳이 부산인지 서울인지 도쿄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로 비슷비슷해져 정체성을 상실한 판박이 도시가 되는 것이다. 도시의 기억을 상실하고, 부수고 새로 만드는 데만 익숙한 토건국가적인 발상이 가져온 결과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이전에 있던 사람은 떠나고, 삶의 연속성이나 도시경관의 지속성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김명건 다움건축 대표는 "그동안의 도시개발은 아파트 재개발 같은 큰 개발 위주로 진행됐다. 지금은 작은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속성의 가치를 보존하고, 확 바뀌지는 않지만 깊이있게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쉽게 허물어버리지 않고 아껴쓰고 바꿔쓰는 유럽의 리모델링 문화공간을 찾아나섰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한 발전소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져와 발전소의 공간적 이미지를 미술공간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테이트 모던을 비롯해 제분공장을 미술관으로, 탄약공장을 미디어아트의 요람으로, 양조장을 복합예술단지로 만든 영국과 독일의 도시들은 그런 과거의 기억을 미래의 에너지로 바꿔나가고 있었던 거다. 부산에도 기억의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 재생과 치유의 공간으로 남겨진 하얄리아 시민공원 부지다. 하얄리아 시민공원 어떻게 되나? 하얄리아 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 경마장으로,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군의 훈련장과 야영지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물자와 무기보급 관리 업무를 맡았던 캠프 하얄리아라는 미군부대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지난해 8월 기지가 폐쇄된 뒤 부산시는 54만3천360㎡의 이 공간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바로 시민공원이다. '아름다운 초원'이란 하얄리아의 명칭처럼 도심의 허파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경설계전문가인 제임스 코너의 설계안에 따라 기억, 문화, 즐거움, 자연, 참여의 길이 있는 흐름과 쌓임의 비옥한 충적지란 공원의 콘셉트도 잡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안타깝게도 하얄리아 시민공원 역시 역사적 맥락과 관계없이 건물들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그 위에 공원을 만드는 기존의 방식을 택했다. 전면 철거 재개발하는 방식이다. 다만 역사전시관으로 바뀔 마권판매소 건물 한 동만 철거 대상에서 살아 남았다. 김승남 일신설계 이사는 "하얄리아 시민공원 설계를 맡은 제임스 코너를 만났을 때 '어떤 비전이나 요구 조건도 없이 그저 멋진 세계적 공원 하나 만들어달라는 청을 받아 황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제임스 코너가 설계를 맡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주변에선 그저 타당성 용역조사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곧장 기본설계, 실시설계까지 넘어와 버렸다"고 했다. 하얄리아 시민공원의 역사성에 대한 고려는 물론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너무나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부산시의 도시개발계획처럼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거다. 하얄리아 시민공원을 문화발전소로 23일 오후 4시30분 부산발전연구원 9층 회의실에서 부발련과 비전과 연대21이 '문화도시 부산 21'을 주제로 부산시 관계자와 간담회를 연다. 이날 자리에서 비중있게 이야기할 주제 중 하나는 하얄리아 시민공원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발칙한 상상. 예술가들에게 실험의 장으로, 광장으로 열어 놓는 발상이다. 회화 판화 목공예 인디밴드 힙합 클래식 재즈댄스 극단 독립영화사 문화기획자들이 북적거리는 예술촌을 만들자는 것. 멀티플렉스형 소극장도 만들고, 예술도서관도 구비하자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 건물을 최대한 재활용하자는 발상이다. 하얄리아는 주거 식당 사무실 운동시설 등 마을에 필요한 공간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단위 공간의 특성을 살려서 문화공간으로 전환시킨다면 미군 부대로서 섬처럼 존재했던 하얄리아부대의 부지가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촉망받는 예술가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국제적인 레지던스 공간인 베를린의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과 '타헬레스'도, 일상이 문화가 된 '우파 파브릭'과 '쿨투어 브라우어라이'도 건물 철거에 반대하고 그 공간을 점유했던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 덕분에 살아남았음을 기억한다. 부산시에선 이미 내년 2월 실시설계가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얄리아 시민공원의 설계가 바뀔 여지는 없다고 했다. 예술단체의 문제제기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베를린의 우파 파브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실험과 토론이 진행돼 왔다. 하루아침에, 단박에 세계 최고, 세계 일류가 된 것이 아니다. 김명건 대표는 "리모델링은 개발 시점을 후대에 유예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물론 예술가들의 실험이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런 에너지가 소멸할 때 생겨날 또 다른 에너지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기억을 간직한 맥락있는 도시로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서도 리모델링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다. 365일 24시간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일본 가나자와의 시민예술촌은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해 드라마공방 뮤직공방 아트공방 멀티공방으로 만들었다. 군수창고와 양조장을 개조한 중국 베이징의 따산즈 798 예술단지와 지우창 예술단지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에도 기억을 간직하려는 실험들이 한창 진행 중이다. 동네 주민들이 목욕탕에 오듯 편안하게 온다는 '대안공간 반디'는 목욕탕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성공한 경우이고, 배밭과 그에 딸린 빈 축사를 레지던스 공간으로 만든 '오픈 스페이스 배'의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음울한 회색빛의 빈 공장을 화사한 작가들의 공간으로 바꾸는 '아트팩토리 숨'의 실험도 주목의 대상이다. 아트팩토리 숨은 내달 7일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으로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이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신평공단 내 서봉리사이클이란 재활용업체가 선뜻 내준 빈 공장이다. 인근에 고철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공단의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이다. 건물만 리모델링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자재들도 여기저기서 쓰다 버린 것들이다. 공장 입구 녹슨 폐컨테이너도 없애지 않고 작은 카페로 만들 생각이라 했다. 텅빈 공장 건물은 벽면에 거울을 단 무용단의 연습실로, 이층침대가 들어선 작가들의 숙소로 변신했다. 물론 공장에 굴러다니던 값싼 베니어합판으로 바닥을 깔아 삐걱거리긴 하지만. 이 공간에 미술작가는 물론 무대미술작가 영화시나리오작가 스트리트댄스팀 등이 입주해 있다. 부산대 미대 졸업반인 김진희(25)씨는 "회화뿐만 아니라 여러 전공자들이 함께 있어서 뜻밖의 발상을 할 수 있고, 먼지 날리는 작업도 공장이라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무대미술을 하는 김재한씨의 작업을 도와주는 대신 벽을 치는 작업은 김재한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상생의, 소통의 작업이 시작됐다. 단지 작가들이 싼맛에 활용한다는 의미의 레지던스 공간은 닫힌 공간일 뿐이다. 아트팩토리 숨 차재근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춤을 추는 스트리트 댄서들은 미술작가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작가들은 그들에게 미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의 영역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잿빛 공단지역도 바꿔나갈 거라 했다. 아트팩토리 숨의 실험은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맥락없는 거리에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라, '오래된 새로움'처럼 역사와 미래가 한 자리에 서 있는 그런 도시의 시발점이 될지 모른다. 문화 따로, 일상 따로, 따로 국밥이었던 우리의 문화도 바뀔지 모른다. -끝-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 했습니다.   / 입력시간: 2007. 11.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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