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36
제목 [답사]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 4, 변상철 선생님과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

“아는 만큼 보인다”_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



2019년 3월 2일 토요일
변상철 선생님과 함께 한 서대문형무소


“저항과 처벌: 권력은 어떻게 저항세력을 규율하고 탄압하는가?


박물관 답사 <아는만큼 보인다>의 마지막 시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왔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지금 여기에> 사무국장을 맡고 계신 변상철 선생님께서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지난 답사를 안내해주신 박찬희께서도 함께해주셨습니다. 박물관 답사의 첫 시간부터 매주 함께해주셨습니다.


3.1절 다음 날이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습니다.

개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입장 대기줄이 꽤 길었는데요,

답사 안내를 해주신 변상철 선생님께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8.15 다음 날, 3.1절 다음날이 서대문형무소가 가장 붐비는 때라고 합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지만, 실내 역사관부터 일부 외부 옥사까지 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서대문 형무소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유관순, 한용운, 여운형 등의 이름을 답해주셨는데요,

그 외 김대중, 문재인 등 비교적 최근 인물들도 서대문 형무소와 인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되기 전, 서울 구치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뿐 아니라 7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까지 아우르고 있는 곳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 입니다.




과거 서대문 형무소는 현재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서대문 독립공원까지 전부 서대문 형무소 터였으나, 현재 일부만 축소되어 남아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큰 아파트 단지들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요,

지금 이 자리도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모두 철거하여 아파트가 들어설 뻔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철거 공사가 중단되어, 과거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1912년 현재 공덕 서부지방법원 자리에 감옥이 새로 지어지면서 '경성감옥'이란 이름을 내줬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서대문형무소의 건물 외벽과 바닥에 깔려 있는 빨간 벽돌에서 경성감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흐릿하지만 경성감옥을 상징하는 '경'자가 보이시나요?


경성감옥 때는 노역으로 벽돌 생산이 대표적이었고,

서대문 형무소 때는 옷감와 의복을 주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는 전국의 모든 형무소에서 군수물자 생산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1908~1987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서대문 형무소가 운영되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1945년 이전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1945년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붙잡혀 왔을 것입니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서대문 형무소가 목격했을 수많은 역사의 장면들을 떠올려 봅니다.




왜 1908년 이 자리에 서대문 형무소가 들어섰을까요?


어느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가보면 글과 사진이 담긴 여러 판넬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판넬들이 친절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전문가들이 선별한 중요한 사진일 텐데 설명이 따라오지 않아서 해설자가 없으면 일반 관람객들은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이 판넬에서도 변상철 선생님 머리 위에 있는 사진이 보이시나요.

왜 나무를 잔뜩 실어 나르는 사진을 넣었을까요?

왜 현저동 101번지에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온 것과 이 사진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과거 서대문 형무소 모형입니다.

지금보다 상당히 큰 규모였으나, 현재는 역사관, 옥사 그리고 사형장과 격벽장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오른편 위쪽 사진 2개는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하지만 뒷 배경으로 찍힌 건물의 외벽 색이 달라 보이지요?

한 때 서대문 형무소의 빨간 벽돌이 위에 타일을 덮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서대문 형무소의 마지막 모습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을지, 45년 모습으로 보존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지 기억하시나요?


답사 시작 첫 질문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서대문 형무소의 광복 이후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무려 1987년까지 운영되었는 데도 말입니다. 절반 가까운 시간의 기억은 왜 남아있지 않는 걸까요?


45년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 있나요?

"광복 이후 서대문 형무소는 좌우익의 이념 문제와 반독재 민주화운동 등 정치 사회적 문제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있었다."




2층 민족저항실 입구에 있는 사진입니다. 흑백 처리가 되어 있지만 아마도 모두가 잘 아는 사진일 겁니다.

영국의 종군기자 맥켄지가 양평군 인근에서 촬영한 의병대의 사진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어때 보이시나요?

낡은 한복이나 허름한 제복을 입고, 멀쩡한 게 없이 서로 다른 총을 들고 있는 의병들. 나이대도 성인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 사진 속 의병들이 당시 상황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일까요?

기념 사진이 아니라, 적에게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될 것을 각오하고, 목숨을 내놓고 찍은 사진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우린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13도 창의군 서울 진공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해주셨습니다.

양반과 평민, 신분제도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재명 의사와 강우규 의사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백범 김구 선생님과 이재명 의사와의 에피소드,

강우규 의사가 어떻게 폭탄 투척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가 한 달이나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는지 등

영화로 찍어도 좋을만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졌습니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

의열단과 김원봉의 이야기가 영화를 통해 최근 조금씩 소개되고 있지만,

그동안 교과서나 어디에서도 의열단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을까요?




다음 전시실로 넘어오니 굉장히 밝아졌습니다.

지난 박물관 답사를 다녀보신 분들은 아마도 눈치채셨겠지만,

이 전시실이 전하려는 내용은 다른 분위기이겠구나 하실 겁니다.

벽 면을 가득 채운 것은 <독립운동가 수형 기록표>입니다.

이 방의 가장 인기스타는 바로 유관순 열사였습니다.

벽에 가까이 서서 유관순 열사가 어디있는지 많은 분들이 찾고 계셨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 외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삶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퀴즈! 강우규 의사를 찾으셨나요?




드라마 <각시탈>, 경성트로이카의 이재유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재유는 말을 굉장히 잘하는 걸로 유명했다는데요, 심지어 말로 간수를 설득해 감옥에서 풀려나기도 했답니다.


미야케 시카노스케를 아시나요?

이재유를 수개월 간 자기 집 마루 바닥 밑에 숨겨줬던 경성제국대 교수의 일본인 교수 미야케 사카노스케.

잘 다루어지지 않지만, 식민지 조선의 투쟁 중에는 몇 일본인들의 도움도 한 몫했다고 합니다.




옥사 전시실로 이동했습니다.

실제 사용했던 옥사 중 일부를 남겨, 관람객들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개방해뒀습니다.

저희에게는 행운이지만, 보존의 차원에서는 걱정스러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방 안은 20~30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수용 인원이 많았을 때는 이 정도가 한 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모두가 동시에 누울 공간이 되지 않을 때는 돌아가면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방 안에 화장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요강을 사용해야 했고, 여름에는 구더기와 온 갖 벌레들, 겨울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구치소)의 만남은 무슨 잘못된 인연인지 언제나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에서였다"

"그런 탓인지 무악재 고갯마루에 비껴 서 있는 우중충하고 음산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를 회상하면 그 추위부터 생각난다"

"그곳은 진정 인간을 넣어둘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시체를 넣는 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비인간적인 독재정권 아래서 수천, 수만의 정치수, 사상수, 양심수, 확심수들이 처넣어져서 신음해야 했던 이 나라의 교도소와 형무소의 감방 독방의 모습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꽃봉오리들이 그런 관 속에서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판사님, 검사님들이 이 여름의 그 관 속이 싫다면, 댁에 있는 냉장고 속에 한 시간만 들어가 있다가 나와도 됩니다. 왜냐구요? 여름에 구더기가 산책하는 감방은, 겨울에는 밖의 온도가 영하 10도 일 때 안의 온도는 영하 3도 안팎이랍니다."

- 리영희 <우상과 이성> 중



(밖)


(안)


(안)


방 안과 밖으로는 이런 구멍들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는 구멍일까요?




밖으로 나와 독립옥사 외부를 돌아보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유일하게 중앙 간수소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옥사로 소위 '정치 사상범'이었던 독립운동가들이 집중 수감되어 특별 감시와 통제를 받았던 곳이다." - 서대문 형무소 안내문

왜 독립옥사를 사용했을까요?




벽에 남아있는 자국은 무슨 자국일까요?




사형장 가는 삼거리입니다.

사형 집행되는 날 면회왔다고 하며 양 쪽에 간수들이 팔을 끼고 걸어가는데,

이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면회, 오른쪽 팔에 힘이 들어가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사형이었다고 합니다.

재소자들 또한 사형이 있는 날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형이 있던 날에는 규정된 시간에 밥이 나오지 않고 30분 정도 늦어졌다고 합니다.




사형장과 통곡의 미루나무입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던 해는 1997년입니다.

올해 2019년으로부터 22년 전 입니다.

인권단체 엠네스티는 10년 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사형폐지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형제가 있는 나라가 더 많을까요? 없는 나라가 더 많을까요?

유럽연합 EU는 사형제를 유지하는 나라를 회원국으로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형제도 폐지국가가 많지만,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 중국 미국 등 사형제가 있는 나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마치 사형제가 당연하고 주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형제도에 대해 많은 질문을 변상철 선생님께서 던져주셨습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수감자들이 운동하는 공간이었던 격벽장입니다. 현재는 축소된 상태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는 모습과 살짝 위로 올라와 보는 모습이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수감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의 편의를 위해 여러개의 칸막이 벽(격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답사를 마무리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감옥이라는 공간이 단지 유쾌한 공간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감옥, '서대문형무소'에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지 되짚어보시길 바랍니다.

감옥에서 보아야 할 것은 재소자, 사람입니다.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면 그 시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감옥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씀을 해주시며 긴 답사를 마쳤습니다.



지난 4주동안 함께 해주신 참가자분들과

하나라도 더 보여주시려고 열정적인 안내를 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현장에서 우연히 함께했던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또 뵙겠습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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