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08
제목 [답사] 일본이 기억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잊혀진 조선인 원폭피해자들

2015 7월 31 - 14:18 PEACE518


광복 70년, 원폭 70년을 맞이하여, 오는 8월 평화박물관에서는 70년간 소외되고 잊혀진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관한 전시를 시작합니다. 그 준비를 위하여 7월 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이 기억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기억하지 않는, 그리고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조선인 원폭피해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위의 사진을 참조하여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 7월 4일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은 강렬한 시각 전시물로 시작된다. 원자폭탄(이하, 원폭)이 떨어지고 나서 아무것도 없는 히로시마 시내 모습을 축소 전시한 것으로부터 피폭되어 피부가 녹아내린 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재현까지. 보는 순간 누구나 원폭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사진1)

한국인 피폭자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무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한 지를 생생하고도 집요하게 보여주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자료실을 보는 순간부터 불편함이 올라오기 시작해 전시관을 다 둘러본 후에는 불쾌감마저 들었다. 그 곳에는 마치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갑자기 떨어진 것 마냥 피해의 모습만을 나열했을 뿐,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 자신과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본에 강제 징용되었다가 피폭당한 한국인의 모습은 없었으며, 잔혹한 수탈 정책으로 고향을 떠나 일본에 왔다가 원자폭탄에 희생된 한국인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평화기념자료관이 위치한 평화공원 안의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가 19년 동안 평화공원 밖에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이어지며, 한국인으로서 비감만이 몰려왔다. (사진2)

7월 5일 나가사키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

히로시마에서의 불편함을 뒤로하고 나가사키로 이동했다. 같은 원폭을 맞은 도시지만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분위기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평화마케팅을 한다면, 나가사키는 좀 더 차분하고도 담담하게 원폭을 대한다고 해야할까? 그 차이는 ‘전쟁가해자로서의 일본’을 고발하는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하, 오카 자료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진3 탄광을 재현한 모습)

오카 자료관은, 전후 70년이 지나도록 일본의 침략과 전쟁에 희생된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외면으로 일관해 온 일본의 무책임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 일생을 바친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사(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평화운동가)가 유지를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일본의 가해 책임을 호소하기 위하여 시민의 손으로 설립된 작은 자료관이다. 오카마사하루 기념관은 히로시마평화자료관, 나가사키 추도기념관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초라한 곳이지만, 일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료들로 가득했다. 조선강점과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위안부 피해자, 남경대학살 등 일본 침략전쟁의 실상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작은 공간 안에 계단 벽까지 빼곡하게 이어져 있었다. 한국인도 기억하지 못하는 강제동원된 한국인 징용자들과 원폭피해자들을 오카 자료관에서는 하나하나 차분히 그 흔적들을 모으고 있었다. (사진4)

그리고 이어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평화기념관(이하 국립 나가사키 기념관). 일본 정부에서 지은 건물답게 피해자의 기억들로 시작된다. 전날, 잔혹한 장면을 많이 보아서일까? 무감각해진 상태로 전시관을 보는데 히로시마와의 차이점이 하나 둘 발견된다. 잔혹하고 자극적인 전시들이 많았던 히로시마 평화자료관에 비해 나가사키 기념관은 피해 모습들을 차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원자폭탄 투하로부터 피해까지,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호소’ 코너 (사진5), ‘일본인들의 피해만 잔뜩 늘어놓았겠지‘란 비소로 다가간 그 곳에는 뜻밖에 외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증언 코너가 있었으며, 한국인 원폭피해자들 10여인의 증언도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곳에서 왜 원폭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지만, 가해의 역사는 지운 채 피해의 역사만 늘어놓은 히로시마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이는 이어지는 전쟁 코너에서도 다시 드러난다. ’forced labor’, ‘comfort women’ 등의 용어가 등장했으며, 대동아 전쟁도 일본에 의한 침략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731부대의 생화학 실험 등도 언급하여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모습을 담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보려면 오카 자료관에 일본 시민들이 더 힘을 모아주는 것이 빠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국립 나가사키 기념관을 나섰다.

인류 최고의 재앙 ‘원자폭탄’을 기억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두 국가 자료관과 그리고 한 곳의 민간 자료관은 주체가 다른 만큼 기억의 내용도 달랐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역사는 거대하고 화려한 국가 자료관이 아닌 작고 어쩌면 초라하게 보일 지도 모르는 민간 자료관에 모여 있었다. 결국 역사의 진실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나가사키 원폭피해자 추모비 이야기로 이번 답사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나가사키에는 1979년 8월 9일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세운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피해자 추모비(사진6)가 있었다. 나가사키 폭심지 근처의 그 추모비와 표지판은 오래 되어 낡고 잘 보이지 않았다. 이는 광복 7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소외받고 방치되어 있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과 겹치며,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현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나가사키의 뜻 있는 시민들이 이 추모비를 세웠다면, 지키고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광복 70년이자 원폭 70년인 올해, 한국인들이 힘을 모아 나가사키의 이 추모비라도 나가사키 평화공원 안으로 옮겨 제대로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희생당한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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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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