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72
제목 [서평] 세상을 바꾸는 길

2013 1월 18 - 17:05 익명 사용자

세상을 바꾸는 길



김영환(평화박물관 활동가)



지금부터 5년 전인 2007년 북녘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남과 북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어린이들이 어울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인도적인 지원 활동과 평화의 문화를 나누는데 힘쓰고 있는 ‘어린이어깨동무’라는 단체의 일원으로 나선 길이었다. 인천공항 출국 수속장의 항공사 카운터에 ‘평양’이라고 적혀 있는 행선지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항공권에도 평양, 출발 예정을 알리는 전광판에도 평양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남북 경의선 철도를 잇는 도라산역에 처음 갔을 때, 개찰구에 적혀 있던 ‘평양방면’이라는 글자를 처음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과 감동이 떠올랐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을 떠나 서해로 나아간 비행기는 곧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고 바로 북녘의 하늘에 접어들었다. 30분 남짓 지나자 북녘 땅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가까운 길이기에 그동안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절절히 느낀 순간이었다.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가 대기하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자 짐을 내리기 위해 비행기에 다가 온 몇 몇의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이다!!!”

 





발해의 씩씩한 소녀 홍라의 이야기 <나는 비단길로 간다>를 읽는 내내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지만 북녘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홍라와 함께 여정을 떠나는 무사 친샤, 수습 천문생 월보, 일꾼 비녕자, 승려 쥬신타가 모두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의 후예들과 당나라, 말갈, 흑수 서역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나라였다. 홍라가 만난 사람들도 소그드 사람 로크산, 위구르 사람 쿠트 영감, 신라 사람 김자인, 로마 사람 율리우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멀리 서역에서부터 발해와 당나라, 일본과 신라를 넘나들며 사람과 물자가 오고 가고, 그들의 문화가 영향을 주고받아, 다른 말들이 오고 가며 다른 옷차림과 다른 얼굴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어울려 살았던 홍라의 시대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홍라가 살던 시대는 몇 날 며칠을 말을 타고 달려야 갈 수 길을 이제는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하면 국경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사람들 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홍라가 활약하던 발해의 땅을 두고 이웃 나라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고, 홍라가 어머니를 잃은 그 바다를 두고는 또 다른 이웃 나라 일본과 첨예하게 다투고 있다. ‘국가’라는 장벽이 같은 바다에서 함께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고, 벌판에서 함께 말을 기르고 물건을 주고받던 사람들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



국가의 다툼으로 갈리고 나뉜 사람들이 서로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홍라가 살던 발해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살았듯이, 이미 우리 사회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녘 땅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일제 강점기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인 조선족 동포들도 있으며, 사할린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도 있다. 중소기업을 떠받치는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농촌을 지키는 여성들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의 식당이나 전철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 사람들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단지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은 없는지, 그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무시하고 한국 사람이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홍라가 만든 조각상이 상징하듯이, 십자가를 가슴에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처럼 다양한 문화가 섞이고 어울려 우리의 문화를 풍성하게 해 주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너한테도 생길 수 있는 일>은 학교폭력에 용기 있게 맞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러한 책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오늘의 학교를 생각하면 참담한 마음이 앞선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그저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한 말이 놀라우면서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 이야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어른 앞에서 이야기 한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왜 학교가 이처럼 병들었고, 학생들이 다른 친구를 괴롭혀야만 하는지 학생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이른바 ‘일진’이라고 여겨지는 학생들의 명단을 경찰에 보고하도록 한 교육 당국의 처사를 생각하면 분노를 넘어 슬픔마저 느껴진다. 눈곱만한 교육적 배려도 없는 관리자들의 눈에는 이른바 ‘문제 학생’들은 예비 범죄자일 뿐이며, 그들과 매일 부딪히며 학생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공권력에 맡겨야만 하는 무능한 사람들로 보일뿐이다.



학생들이 서로를 괴롭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학교는 어른들의 사회를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오로지 돈만을 추구하며 반칙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른들의 세상을 두고 아이들만 착하게 살 것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저당 잡히고 학교와 학원에만 묶여 살아야만 하는 우리 사회를 일컬어 “청소년은 없고 학생만 있는 사회”라는 말이 나온 게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일제고사로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 등수를 매기고, 학교에 서열을 매겨 입시 경쟁을 부추기고, 선생님들을 통제하기 위해 근무평가라는 이름으로 줄을 세우고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왕따가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 온 일본에서 은퇴한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교실에서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강한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면 다른 아이들이 나서서 막고 그만두게 했다. 나는 그것을 정의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약한 사람이 부당하게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면 당연히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나서는 것은 귀찮은 일이며 괜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정의’의 문제에 대하여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어떠한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보호를 받고 있는가.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과연 법 앞에 평등한가. 부당한 현실에 대하여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권리는 보호를 받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너한테도 생길 수 있는 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들 누구나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당신도 학교폭력의 가해자일수도 있다는 질문 가운데 “폭력을 멈추기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적이 있나요?”라는 문항이 있다.

이 질문은 비단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일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단순하고 소박한 바람 하나로 국가와 자본의 거대한 폭력에 저항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쌍용자동차에서는 일터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사람들이 스물 세 명이나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제주 강정에서는 고향 바다를 지키고 살고자 하는 섬사람들이 6년째 경찰과 국가의 폭력에 맞서고 있다. 밀양 산골 마을에서는 평화로운 삶을 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을의 뒷산을 파헤치고 있는 송전탑 건설에 맞서 산골 움막에서 한겨울을 나고 있다. 용산 참사로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진상을 밝혀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저항하며 철탑에 올라 겨울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



“결국 우리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니라 벗들의 침묵이다.”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은 부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우리들 모두가 곧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엄중하게 묻고 있다. 우리의 침묵이 계속된다면 바로 내가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사회에서 정의의 실현은 꿈꿀 수 없을 것이다.



홍라가 현실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사마르칸트로 떠나는 길처럼 새로운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늘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홍라가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처럼 세상을 바꾸는 길도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첫발을 내딛어 새로운 길이 열린다면, 훗날 사람들은 그 길을 홍라의 길이라고 부를 것”이라는 홍라와 같은 믿음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온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느리지만 좀 더 나은 쪽으로 조금씩이나마 변해 온 것이 아닐까. 거대한 폭력에 맞선 한 사람의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굳게 믿는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작게 나마라도 끊임없이 샘솟기를 바랄 뿐이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

‘평양방면’ 개찰구가 있는 도라산역의 한 쪽 벽면, 서울 56km, 평양 205km라는 이정표 위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휴전선의 철책에 가로막히고 국가가 쌓은 장벽에 가로막힌 상상력이 우리를 가둔 현실을 뛰어넘는 것도 결국은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발해의 소녀 홍라가 열어갈 새로운 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함께 꾸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폭력에 맞서는 용기와 정의를 향한 마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함께 손잡을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나는 비단길로 간다』 이현 글,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감수, 푸른숲, 2012

『너한테도 생길 수 있는 일』, 마이크 캐시디 지음, 이성우 옮김, 다른, 2012



김영환 | 일제 시대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발굴에 참가하며 맺게 된 인연으로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평화박물관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우며 일했습니다. 2007년 가을부터 인사동에 있는 평화박물관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과의 행복을 꿈꾸며 즐겁고 평화롭게 일하고자 하는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열린어린이>, 201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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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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