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235
제목 [답사] 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 3, 한홍구 선생님과 함께 한 민주인권기념관

“아는 만큼 보인다”_강의와 함께하는 근현대 박물관 답사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한홍구 선생님과 함께 한 민주인권기념관


“남영동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박물관 답사 <아는만큼 보인다>의 세번째 시간에는 남영동에 위치한 <민주인권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의 책임편집인을 맡고 계신 한홍구 선생님께서 기념관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지난 답사를 안내해주신 박찬희, 배성호 선생님과 마지막 답사 <서대문형무소> 안내를 해주실 변상철 선생님께서도 함께해주셨습니다.



세번째 박물관 답사지는 <민주인권기념관>입니다.

남영역에서 나와 우측 골목으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기념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검은색 벽돌로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변 건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창문도 특이한 모양이었습니다.

남영역에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골목 안 쪽에 위치해 있어 큰 길에서 눈에 띄지 않았고요.


앞서 다녀온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과는 조금 다른 공간인 것 같지요?


1976년 10월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지어진 이곳은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했던 장소로 악명을 떨치던 공간이었습니다.

영화 <1987>에서 다루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사건의 배경이 된 장소가 바로 이 곳, '남영동 대공분실'입니다.




2005년까지 경찰 보안분실로 사용되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경찰이 과거 청산의 의미로 그해 10월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인권 탄압의 주체였던 경찰청이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계속 되어 왔고,

지난 해 6.10민주항쟁 31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인권기념관을 만들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었고 정부가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공공기관, 인권단체들, 고문피해자와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이 공간을 만들고 키워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돕겠습니다."

- 2018년 6.10민주항쟁 31주년 대통령 기념사 중에서, 대통령 문재인


<경찰청 인권센터>는 2018년 12월 26일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이관되었습니다.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관리와 운영을 맡아, 2022년 건립을 계획으로 새단장을 준비 중입니다.


(현재 관람 가능합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한홍구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소개해주신 특별한 분이 계십니다.

학림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피해를 심하게 당하셨고,

70년대 노동현장을 고발한 책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저자 유동우 선생님이십니다.

유동우 선생님께서는 현재 민주인권기념관의 '문지기'를 맡고 계신다고 스스로를 소개해주셨는데요.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더더욱 이곳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들어올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문'입니다.

담벼락 안 쪽으로 아주 특별한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요, 그 두께가 어마어마 합니다.




이 건물은 당대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합니다.

보통의 건물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원근법 때문에, 위가 더 좁게 보이는데요,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원근법이 느껴지지 않도록 위의 면적을 더 넓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뒷 문을 이용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문은 연행자 전용 출입문이라고 합니다.

대공분실까지도 이곳이 서울인지 서울 밖인지 모른 채 끌려왔다는데요,

뒷 문에 들어서자 또 하나의 충격적인 구조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나선형 계단입니다. 이 계단을 이용해 조사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직접 계단을 오르다보니, 가파른 경사 때문에 약간 겁이 나기도 했고

방향감각이 사라져 몇 층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5층이었습니다.

실제로 연행자들이 이 계단을 올를 때의 공포감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515호실, 김근태 선생님께서 고문당하셨던 방에 들어왔습니다.

현재는 <근태서재 시 소리 숲>이라는 제목으로 추모 전시로 꾸며져 있습니다.

김근태 선생님의 따님이신 김병민 큐레이터와 <평화박물관>에서도 전시하셨던 이부록 작가님께서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벽면에는 김근태 선생님께서 수감 중에 읽으셨다는 시집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515호실은 2000년경 리모델링 되어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않지만, 전시 공간으로 꾸미면서 일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벽면에 아주 좁은 창문이 보이시나요?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폭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공분실의 창문이 이렇게 좁아진 데에는 '최종길 교수 사건'이 있다고 합니다.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조사를 받다가 창문으로 투신했다고 알려진 사건인데요,

아직도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많은 논란이 남아있습니다.


최종길 교수 사건 이후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고문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 수사실의 지하화와 사람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창문의 폭을 좁게 변경했다는 겁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수근의 제자들은 "건물을 운영한 사람이 잘못이지 건물을 지은 사람이 무슨 죄냐"고 하지만,

김수근 건축가가 과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설계했을까요?




김근태 선생님이 계셨던 방을 한홍구 선생님께서는 대공분실의 '특실'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대대적인 전기고문과 물고문이 이루어졌고, '칠성판'을 사용할 수 있는 넓은 방이었다고 합니다.

칠성판은 '본래 시신을 눕히기 위해 관 바닥에 까는 얇은 널빤지'인데, 영화 <낭영동 1985>에도 등장했던 고문도구입니다.

피해자들은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알몸으로 끌려와 칠성판 위에서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물리적 고문이 없어진 시대이지만,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다"는 말은 김근태, 권인숙, 박종철의 결정적 기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정말 많지만 제대로 그 일들을 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잊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고문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을 모두 기억하고 증언했다는 점, 김근태 선생님이 특별한 이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세세하고 구체적인 것까지 기억했던 것은 다음 세대들이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물고문 당시 얼굴에 덮었던 수건입니다.

칠성판에 온 몸이 묶여 누워있는 상태에서 얼굴에 노란 수건을 덮고 주전자로 물을 부어 고문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김근태 선생님의 유품과 영상 자료, 관련 서적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공분실 5층에는 모두 16개의 조사실이 있습니다.

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지 않은데요, 혹시라도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각 방을 지그재그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또 일반 아파트 문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문구멍이 나있지만,

이곳은 복도에서 안을 감시할 수 있도록 반대로 문구멍이 나있습니다.





509호실은 박종철 군의 방입니다.

빨간 타일과 욕조 등 과거의 모습들이 남아있었습니다.

현재는 이 방만 80년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뿐, 나머지 조사실에서는 리모델링 후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4층으로 내려가 <박종철 기념 전시실>을 둘러보았습니다.



4층에는 80년대 시대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신문 기사 자료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박종철 군이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와 여러 유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한홍구 선생님께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명대사를 들려주셨습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80년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박종철이라면,

2000년대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세월호일 것입니다.

특히 세월호는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6월 항쟁 이후 아쉬운 실패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세월호 이후 만큼은 잘 살려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과제가 될 거 같습니다.



열정적으로 해설을 해주신 한홍구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다른 모든 참가자분들께도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답사, 변상철 선생님과 <서대문형무소>에서 뵙겠습니다.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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