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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경식과의 대화] 화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발표/토론문)
평화박물관은 지난해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서경식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서경식 교수(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와 연속강좌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앞으로도 서경식 교수께서 서울에 방문하실 때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대화모임"(강좌)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초 서경식 교수의 짧은 서울방문 기간동안 아래와 같은 모임을 가지게 되어 소개드립니다. - 평화박물관


[서경식과의 대화] 화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진상규명 없이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화해는 종종 엄정한 진상규명, 처벌, 용서의 과정 없이 피해자들에게 강요되곤 합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가치로 여겨지는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용서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주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을 제외하고 과연 용서가 가능할까요? 누군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비인간적인 범죄행위를 저질렀을 때 용서하시겠습니까? 또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처벌은 복수와 함께 용서에 대립되는 게 아니라 제한됨없이 계속되는 복수의 응수과정에 개입하여 그것을 잘라내고자 하는 시작행위로서 용서와 함께 복수에 대립한다.”고 말합니다.


화해는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애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화해는 대등한 입장의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만나서 화해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것이 가능하다면 화해의 조건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의 화해는 개인적 차원의 그것과는 달리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다른 논리와 순서가 적용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늘 서경식, 한홍구 선생님을 모시고 한반도 역사에 얽혀있는 ‘화해’의 문제를 생각해봅니다.




○ 일 시: 2008년 9월 5일(금) 저녁 7시
○ 장 소: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관 7417호
○ 발표자: 서경식(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 토론자: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 순 서:


- 7:00~7:10 소개 및 인사
- 7:10~8:30 발표(서경식) 및 토론(한홍구)
- 8:30~9:00 질의응답




파일1 화해의_폭력_서경식.doc
 
파일2 한국형_과거청산의_특수성과_화해_한홍구.hwp
첨부파일
화해의_폭력_서경식.doc
한국형_과거청산의_특수성과_화해_한홍구.hwp
작성일자 2018-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