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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사] 70년의 고통. 한국인 원폭피해자, 드디어 빛을 볼까?
작성일자 2018-08-17




[행사] 70년의 고통. 한국인 원폭피해자, 드디어 빛을 볼까?









지난 9월 8일 오전, 2015년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낯선 그러나 어떤 이는 평생의 숙원을 이룬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일본 최고재판소의 ‘한국 거주 원폭피해자 의료비 전액 지급 판결’. 그리고 오후의 ‘한국인원폭피해자 및 자녀를위한특별법 제정 촉구집회’와 ‘한국과 일본의 원폭피해자들의 만남’까지,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원폭피해자’에 관한 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 때문일까? 이날 오후 ‘한국인원폭피해자 특별법제정 촉구집회’와 ‘한일 원폭피해자’의 만남에는 KBS, SBS, 동아일보 등 대형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와 관심을 보였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 이후 이들에게 이렇게 뜨거운 조명이 쏟아진 적이 또 있었을까?

70년만의 주목

9월 8일 잠시나마 ‘한국인원폭피해자’ 그들이 주목받은 날을 재구성해보자.

하나. 일본 최고재판소의 “한국 거주 원폭피해자 의료비 전액 지급 판결”

2015년 9월 8일은 한국인원폭피해자들의 투쟁의 역사가 다시 쓰인 날이다. 일본 정부는 전후 원폭 피해자 지원을 ‘일본 거주인’으로 한정해 사실상 한국인 등 외국인을 배제해왔다. 이에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1970년대부터 줄기차게 소송 등 재판투쟁을 통하여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청해왔고, 이번 판결로 피폭자 건강수첩을 교부받은 한국 거주 피폭자도 의료비 전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9월 8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피폭자원호법)에 따라 피폭자 건강수첩을 교부받은 한국 거주 피폭자 3명에 대하여 의료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40년에 이르는 이 투쟁에 한국정부는 없었으며, 이 결과는 전적으로 한국인원폭피해자 당사자들이 스스로 싸워 얻어낸 결과다.

둘. 한국인원폭피해자및자녀를위한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

“우리는 원폭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도 아닌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70년인데 70년동안에 국가는 뭐했습니까? 한번도 실태조사도 안했고, 인원이 몇명인지도 모르잖아요.” “국회에서 빨리 특별법을 만들어서 다만 위령탑이라도 만들어서 제사라도 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좀 만들어줬으면 싶은데 이 일본의 소송마저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우리 개인이 소송하고 오히려 일본에 계신 분들이 우리 한국에 정치하는 분들, 국회보다 더 도와주고 말이지. 우리가 총 칼을 들지 않는 전쟁을 지금도 원폭피해자들은 70년 동안 계속하고 있거든요.” 위의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에 대한 한국인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 지부장의 말이다. 일본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 의료비 전액 지원 판결’이 나온 이 날, 한국인원폭피해자 1세와 2세는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한국인원폭피해자 및 자녀를위한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특별법은 한국인원폭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실태조사, 진상규명 등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17・8대 국회에서 발의 되었으나 폐기되었고 19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한국인원폭피해자특별법연대회의에 따르면 19대 국회의 법안 담당인 보건복지위에서 법안심사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셋. 한일 원폭피해자의 만남. ‘서울에서 만난 한일원폭피해자’

한일 원폭피해자들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같은 듯 다른 두 나라의 원폭피해자들이 9월 8일 저녁 7시 평화박물관 전시공간 스페이스99에 모였다.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 김봉대·이곡지 부부( 이곡지 -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 김봉대- 한국인원폭2세환우회 고문, 고 김형률 부모), 한정순 한국인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 오나카 신이치 일본 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사무차장, 나가하라 토미아키 일본 히로시마현 피폭 2·3세의 모임 이사가 바로 그들이다.

각기 원폭으로 부모·형제를 잃거나 자식을 잃었고, 자신이 원폭 후유증을 앓거나 자녀가 그로 인해 성치 않은 경험을 함께 하는 사람들, 이들은 입을 모아 원폭 피해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의 경험은 2·3세로 이어지고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원전밀집도 1위의 한국 역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더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자국 정부의 외면 아래 사회적 차별이라는 고통이 추가 된다. 한정순 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은 말한다. “광복 70주년은 다른 의미로 원폭 피해의 고통이 70년이나 됐다는 뜻입니다.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죠.” 이날 행사는 전무후무한 원자폭탄이라는 살상무기에 희생된 이들이 모여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평화에 대한 갈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또한 원자폭탄이라는 아픔을 겪고도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금 전쟁국가로 회귀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한 일본피폭자들의 비판과 반성도 있었다.

원폭 이후 70년의 세월이 흘렀고 피해자들은 대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기억은 사라지고 상처는 대를 이어 물려진다. 일본에서는 전향적인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간에서도 교류를 통해 과거에 대한 반성 속에 미래를 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정부가 답할 차례이다. “한국인원폭피해자및그자녀를위한특별법” 제정을 통해 한국인원폭피해자 및 그 후손들에 대한 지원, 실태 조사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나아가 그들과 함께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때가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진정으로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일 것이다.


글쓴이_김남수(평화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