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김구와 윤봉길이 꿈 꾼 나라> 토크 콘서트
작성일자 2018-08-17

<김구와 윤봉길이 꿈 꾼 나라> 토크 콘서트









깨어진 민주주의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경교장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공간이다.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 이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한 길에 나섰다. 백범 선생이 안두희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곳 또한 이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거 위기의 경교장을 서울시 문화재로 만들고 삼성 재벌로부터 지켜낸 한 시민의 노력이 우리가 이곳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82년 전, 12월 19일 아침 7시 27분에 조선독립을 꿈꾸던 청년 윤봉길이 일본에서 총살당했다. 12월 19일은 역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자, 2012년 12월 19일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4년 12월 19일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선거로 뽑힌 정당이 권력 앞에 강제 해산된 날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특별한 12월 19일, 경교장 바불마루에서 서해성 작가의 사회로 평화박물관이 주최하는 <김구와 윤봉길이 꿈 꾼 나라> 행사가 열렸다. 이 날 행사는 1부 음악회(김숨 소리꾼의 소리, 김예인, 공채린 예술가의 해금과 가야금 합주)와 2부 토크쇼(사회 서해성 소설가,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 김인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로 이루어졌고, 한켠에는 임시정부와 전시작전권을 주제로 전시도 열렸다. 토크콘서트에서는 윤봉길 순국의 의미, 경교장을 지키고 찾은 이야기, 임시정부의 군사주권과 역사 속 작전지휘권 등 주권을 되찾으려는 임시정부의 노력과 이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아래 행사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윤봉길 의사 순국 82주년 추모 토크 콘서트'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윤봉길 의사 의거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임시정부가 굉장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사와 함께 상하이 의거를 도모했다는 점이다. 이 의거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의 강한 독립의지가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김구 선생은 당당히 장제스를 만나 독립투쟁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도움을 요청하여 광복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장투쟁이 합의될 수 있었다. (이후 충칭에서 1940년에 광복군이 만들어진다.)

일본군은 1931년의 만주사변, 1932년 상하이 사변으로 상하이를 완전히 주둔했고 윤봉길 의거는 그 때에 일어났다. 재미있는 것은 의거가 있던 4월 29일, 윤봉길 이외에도 한국의 아나키스트 조직도 폭탄을 던지러 그 자리에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군대는 당연히 없었고, 일본에 항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의열투쟁(부정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은 "테러")뿐인데 일본 수뇌부를 향해 던질 폭탄이 같은 날 2개나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통해 조선의 강한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조선의 각각 독립운동단체에서 독자적으로 결정되어 왔던 전시작전권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옮아간다.

당시 전작권은 어디에 있었을까?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총을 쏜 것은 그 누구의 허락아래에서가 아닌 안중근의 독자적인 작전 판단이다. 윤봉길의 항거는 실제로 김구 선생의 지시를 받았을 뿐, 의거가 중국 땅에서 이루어진다 하여 중국의 허락 혹은 개입을 필요로 하진 않았다. 중국과 장제스가 도시락 폭탄이 터지고 나서야 임시정부와 윤봉길, 김구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히 드러난다.

4월 29일 항거이후 장제스가 "중국군 100만 명이 해내지 못한 것을 조선 청년 1명이 해냈다"고 말한 것은 중국 땅에서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행위를 존중했다는 것이고 이는 독자적인 작전권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나아가 장제석은 카이로 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상하이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조선 청년 윤봉길을 언급하며 조선의 독립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고 해서 조선이 독립이 된 것도, 일본이 항복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반문하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하고 있는 전시사진에는 분명히 윤봉길 의사가 있다. 시케미쓰가 항복을 서명하고 있는 사진의 의자에 걸린 지팡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중국 공사에 있었던 일본 외무성의 시케미쓰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중상을 입고 다리 한 쪽을 절단하게 되며 그 때문에 지팡이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후에 공식적으로 항복하러 오는 시케미쓰의 발걸음과 그가 짚은 지팡이가 바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윤봉길 의사로 대표되는 조선독립운동이 있고, 조선독립운동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민중들의 반제 투쟁이 거기에 있다.

한반도 유사시 군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한국군의 작전권은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으로 나뉘는데, 그 중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는 전시상황은 데프콘3(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긴장상태가 전개되거나 군사개입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이 발령되었을 때를 말한다. 한 국가의 전시작전을 온전히 그 국가에서 선택하고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김구와 윤봉길이 꿈 꾼 나라는 기본적으로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것이 바로 12월 19일 윤봉길 의사 순국 82주년을 맞아, 우리가 전시작전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늘 날 또 다시 슬픈 것이 있다.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설령 우리가 찾아올 수 있게 되더라도, 깨어진 민주주의의 그릇이 그것을 잘 담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참고」"광복군도 월남전 한국군도 작전지휘권 우리한테 있었다."(2014.11.18.)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65113.html

 

고통과 기억의 연대|평화박물관 peacemuseum@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