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

번호 165
제목 <서평> 아침을 여는 아버지와 기차에 새겨진 기억

2012 6월 15 - 18:21 익명 사용자

아침을 여는 아버지와 기차에 새겨진 기억



김영환(평화박물관 활동가)



어릴 시절 나는 매일 새벽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 연기와 라디오 소리로 아침을 맞았다. 부모님은 지방 도시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로 우리 여섯 남매를 키웠다. 아버지는 도매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기 위해 매일 이른 새벽 집을 나섰는데, 잠에서 깨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늘 담배를 입에 물었고, 나는 잠자리에서 어렴풋이 담배 연기를 맡으며 새벽을 느꼈다. 가게에는 아버지 키 높이에 맞춰 만든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그 방에서는 부모님과 형과 나 이렇게 넷이서 잠을 잤고, 누이 넷은 길 건너 낡은 한옥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늘 밤새 라디오를 켜 놓았는데 해외동포나 이산가족을 찾는 사회교육 방송이었다. 왜 그러실까 궁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이 된 당신의 하나 뿐인 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북한으로 갔을지도 모를 형을 꿈결에서나마 찾고자 했던 아버지의 말 못할 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아버지가 새벽에 도매시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어머니의 아침이 시작된다. 재래시장 가게라 채소들을 덮어 두었던 포장들을 다 걷어내고 가게 문을 연 어머니는 여섯 남매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많을 때는 매일 아침 열 개 넘는 도시락이 좁은 가게를 꽉 채웠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교복을 입고 다니던 누이들의 스타킹을 사러 달려가던 것도 나의 중요한 아침 일과 중 하나였다.



학교 갈 준비가 끝날 무렵 아버지가 이른 새벽 도매시장에서 사서 보낸 갖가지 채소들을 아저씨가 손수레 한 가득 싣고 와 가게 앞에 풀어놓으면 기다리던 손님들이 달려들어 어머니와 물건을 흥정하곤 했다. 단골손님들의 대부분은 중국 음식점을 하던 화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그 분들이 늘 중국말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었다. 강한 억양의 중국말이 왁자지껄 오가는 활기찬 가게의 풍경이 나의 아침을 열어 주었다. 짐 싣는 자전거를 타고 도매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출출함을 달래려 집 앞 막걸리 집으로 향하곤 하셨다.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에는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재래시장에서 대하던 정겨운 모습들이 들어 있어 흐뭇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조카들은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대형 마트에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또 무척 좋아한다. 화려한 조명아래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는 빵 코너를 지나 깨끗하게 씻겨 다듬어진 야채와 사시사철 계절에 관계없이 나오는 울긋불긋한 과일들을 고르고, 붉은 조명 아래 싱싱하게 빛나는 외국산 고기들을 담는다. 세계 먼 바다에서 잡혀 온 생선들은 날 잡아가세요, 하며 즐비하게 널려 있고, 종류를 셀 수도 없는 과자와 음료수, 라면들이 아이들을 유혹한다. 카트 한 가득 물건을 싣고 계산대에서 삑-삑- 계산을 끝내면 플라스틱 카드로 계산을 하고 박스에 포장을 한 뒤에는 음식 코너에 가서 주린 배를 채운다.



시장 골목 가게 어귀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향해 호통을 일삼는 생선가게 아저씨, 동네의 온갖 소문은 다 꾀고 있는 정보통 미용사 아주머니, 큰 소리로 매일 같이 부부싸움을 일삼지만 누구보다 화목한 과일가게 아주머니 부부, 대나무로 만든 넝마를 지고 다니며 종이를 주우러 다니던 넝마주이 아저씨가 그립다. 해질 무렵 장을 보러 와서는 이 가게 저 가게를 다니며 한참을 이야기하는 어머니들은 전업주부의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어내곤 했다. 옆 집 일을 내 일처럼 거들어 주고 참견하며 지지고 볶고 사는 보통사람들, 이 세상의 주인공인 사람들의 일상이 거기에 있었다.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스타 연예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오로지 유일한 ‘성공’의 기준이 되며 아파트 평수로 친구들 사이가 갈리는 세상에서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시골 농부와 공장 노동자, 자영업자의 자식들이었다. 땀 흘려 일하는 엄마 아빠의 일을 도우며 자랐고, 늘 돈에 쪼들리며 살아가는 부모님에게 수업료와 참고서 살 돈을 달라 하기가 미안하여 몇 번이고 주저했을 터이다.



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어느 어머니는 늘 아들에게 대학에 가서 절대로 데모를 하면 안 된다고 귀에 박히도록 말을 했다. 새벽 첫 차를 타고 퇴근할 때까지 몸 누일 곳도 없어 계단 구석 한 귀퉁이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던 어머니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학교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어머니는 비로소 그 때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하는 우리 동네 엄마 아빠를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세상, 엄마 아빠의 오늘이 바로 자식들의 내일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존중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꿈일까? 그러한 사랑을 꿈꾸는 작업에 이 책이 작지만 소중한 버팀목이 되기를 빌어본다.


일하는 사람들은 첫 차를 타고 아침을 열어간다. 버스 종점에서, 지하철역에서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주인공인 일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듯이 예전에 시골에서는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달려라! 기관차 힘센다리>는 세상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아침을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한 기차 힘센다리가 주인공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는 일이 마냥 즐거운 증기기관차 힘센다리는 오늘도 가축과 쌀, 사과를 싣고 골짜기 마을 조그마한 역으로 달려간다. 산골 마을에는 힘센다리를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마을 아이들이 있다. 손님들한테 바다를 보여 주고자 달리는 특급열차 빠른다리와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밤이 되면 일을 마치고 자신들이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차고에서 기차들은 어느 날 무서운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빠른다리의 객차에는 승객들 대신 군인들이 몸을 실었고, 힘센다리는 전쟁에 쓰일 물건을 싣고 힘들게 다녀야 했다.



하늘에서 폭탄이 비처럼 떨어진 어느 날, 힘센다리는 빠른다리가 폭탄에 맞고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친구를 잃어버린 힘센다리는 눈물을 흘리며 어두운 터널 속을 달렸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빠른다리는 끝내 차고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 평화로운 세상에서 힘센다리는 길을 고치고 집을 새로 짓고 병원과 학교가 새로 생기는 마을에 열심히 짐을 날랐지만 새로운 디젤기관차가 들어오면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운명의 끝을 예감하고 실망한 힘센다리는 ‘철길끝’ 표시가 보이는 작은 차고까지 며칠을 달려갔다. 혼자 남겨진 힘센다리가 실망에 젖어있던 어느 날, 힘센다리는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빠른다리의 객차와 하나가 되어 다시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게 된다.



기차가 일상생활에서 아주 친숙한 일본에서 힘센다리의 일생은 전쟁을 경험한 일본 사람들의 기억과 심정을 잘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는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던 힘센다리는 전쟁과 함께 군수물자와 군인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게 되어 너무나 힘겨워 한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을 때 힘센다리와 빠른다리가 실어 나른 사람들은 비단 군인뿐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기차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땅을 빼앗긴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등져야 했다.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닿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일본 땅에서 또 하염없이 기차를 타고 몇 날 며칠을 달려 일본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삶의 터전을 잡아야 했다.



강제연행으로 끌려 온 청년들 가운데는 고향 땅 논밭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가는지 영문도 모르는 채 가족들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끌려 온 사람들도 있었다.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기 전에 탈출을 하기도 했으며, 일본 땅에서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달리는 기차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을 친 사람들도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처음으로 닿은 땅 큐슈(九州)에서 홋카이도(北海道)까지는 1주일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언제 돌아올 지도 모르는 길을 달리는 기차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힘센다리도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전쟁이 끝난 후 힘센다리에 몸을 싣고 고향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그리고 강제노동의 현장에서 그리고 ‘위안소’에서 목숨을 잃어 두 번 다시 고향으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없었다. 그리고 60만이 넘는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땅에 남겨져 오늘도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힘센다리가 싣고 오간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속에는 전쟁의 기억이 아로 새겨져 있다.




새벽을 여는 첫 차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첫 차에 함께 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사람들의 상쾌한 출근길을 열어주는 청소부 아주머니, 싱싱한 야채와 생선을 사기 위해 도매시장으로 향하는 식당 아저씨, 건축현장으로 공구를 들고 가는 건설노동자 아저씨, 새벽 강의를 들으러 학원으로 향하는 취업준비생, 신문을 배달하는 엄마와 우유를 배달하는 아빠, 아침밥을 짓고 있는 전업주부 엄마 그리고 시골 농부 아저씨는 이미 첫 차가 떠나기도 전에 땀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정겨운 이웃 사람들인 이 세상의 주인공들이 새 아침을 열기 위해 오늘도 첫 차를 탄다. 이제는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가 매일 아침을 열던 담배 연기가 새삼 그립다.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철수와영희, 2012

『달려라! 기관차 힘센다리』, 코카제 사치 글, 아이자와 미미코 그림, 김정화 옮김, 키다리, 2011



김영환 | 일제 시대 강제연행 희생자들의 유골발굴에 참가하며 맺게 된 인연으로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평화박물관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우며 일했습니다. 2007년 가을부터 인사동에 있는 평화박물관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과의 행복을 꿈꾸며 즐겁고 평화롭게 일하고자 하는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월간 열린어린이>, 2012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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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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