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연

제목 이시우_주체사상主體寫象
2012 11월 16 - 19:30 익명 사용자






“ 이시우 개인전_ 주체사상主體寫象 ”


- 5년여를 준비한 이시우 작가의 21세기 ‘주체’ 담론의 미학적 상(像) -
- 분단체제의 극복과 통일한국의 실천적 상상을 위한 ‘주체’에의 화두 -


⁍ 왜, 이시우인가?
․ 이시우는 “평화를 담는 사진작가”, “평화활동가 이시우 사진작가”, “통일 사진작가”라고 불립니다. ‘평화’와 ‘통일’, ‘사진작가’라는 세 개의 명사가 그를 밝히는 정체성의 말들입니다.
․ 2010년 그는 (사)통일맞이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제15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늦봄통일상 심사위원회는 그에 대해 “단체나 조직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 개인 작업의 지난한 역정 속에서도 한 번 획득한 가치 지향성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외롭게 통일운동을 추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 그런 그가 이번에 ‘주체사상’를 화두로 내세웁니다. 2007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무죄를 받는 동안 그는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고민하다 문득 ‘국가보안법 가지고 놀기’를 상상합니다. 주체사상전은 ‘주체’의 개념을 형상으로 그려내는 작업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진 작업을 해 오면서 단 한 번도 ‘평화/통일’ 담론을 추상화 한 적이 없습니다.
․ 수년 전부터 준비한 이번 전시의 ‘주체’라는 주제는 우리 내부의 ‘금기어’이면서 동시에 ‘평화/통일’ 담론을 이끌어 갈 주체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상과 실천은 오직 이시우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이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이며 지금 우리가 새겨들어야 화두이기도 합니다.


⁍ 전시 개요
․ 전 시 명 : “이시우 _ 주체사상”
․ 기 간
- 아트스페이스 풀 : 2012. 11. 20. ~ 12. 14
-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 2012. 12. 17. ~ 2013. 2. 3.
- 아트스페이스풀 오프닝 : 2012. 11. 20. PM 4:00
-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오프닝 : 2012. 12. 17. 시간 미정. 추후공지.
포럼과 작가와의 대화 등의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전
․ 주체사상이란 말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이승만은 일민주의라는 사상을 제창했고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제창했습니다. 오늘날 일민주의는 전문가들에게 조차 잊혀진 이름입니다. 주체사상은 객관적인 연구자체가 금기시된 이름입니다. 그와 함께 주체란 개념 자체도 자기검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느낍니다. 계몽주의적인 80년대를 거쳐, 90년대를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반성되는 지금, 주체는 시대사상의 중요한 화두임을 예감합니다.
주체의 영어단어는 subject입니다. 아래에(sub) 던지다(ject) 혹은 던져지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이전까지 이 단어는 피조물, 하인, 피지배자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근대를 전후하여 주인, 주체의 뜻이 추가됩니다. 정반대의 의미가 한 단어에 겹친 것이지요. 절벽 끝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떨어지는 경우와 스스로 뛰어내리는 것의 차이입니다. 백범이 말한 “절벽에서 잡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는 게 장부다.”라는 비유는 수동이 아닌 능동, 하인이 아닌 주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3권에서 정치의 당사자인 시민은 지배하는 존재이자 지배당하는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는 스스로의 자유와 공동체에의 복종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주체는 이처럼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헤겔은 이러한 모순을 주체가 자기반성을 통해 해결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즉 기존의 개념틀로 설명되지 않는 모순에 직면하여 자기반성을 통해 새로운 개념틀을 만들어야 모순이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해탈, 양명학의 자득과 같은 개념이 이에 비견되리라 생각됩니다. 주체를 둘러싼 금기를 넘어 자유롭게 주체를 상상하기. 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취지입니다.


⁍ 몇 개의 ‘주체’ 담론들
․ 주체의 푯말(명패) : 작가는 집 근처에 버려진 나무 판넬을 주워 ‘주체’라는 글씨를 새깁니다. 새긴 나무 푯말을 들고 프랑스 파리로 간 뒤, 러시아를 횡단하고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합니다. 유라시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그는 주체의 푯말을 곳곳에 세우고 기댑니다. ‘주체’를 세우는 행위가 푯대, 표상이듯이 그는 공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주체’의 혁명성/역사성을 호명합니다. 개선문과 주체,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동상과 주체, 야스쿠니와 주체, 맥아더 동상과 주체…. ‘주체’는 집단화 되고, 혁명화 되고, 역사화 되고, 권력화 되었으나 그 자리들에서 우리는 찾을 수 없는 ‘주체’의 허상에 놀랍니다. 그가 세운 푯대는 어떤 ‘주체’의 상일까요? 과연 ‘주체’는 내부혁명을 위한 유효한 상상일까요?


․ 개선문의 빈 통로 : 파리의 개선문은 수많은 유사 개선문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독립문도 개선문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개선문은 이제 빈 통로일 뿐 개선(凱旋)의 함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제 개선은 ‘애국’의 이데올로기이거나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한 표상일 뿐입니다. 이 시대, 누가 개선문의 주체일까요? 과연 시민은 그 개선문의 주체일까요? 아니, 주체의 개선문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 기념비로서, 기념비로서 : 그의 작품들에는 기념동상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동상은 물론이요, 많은 장면들에 ‘기념비성’의 구조물들이 등장합니다. 국가는 국가주체의 이데올로기를 바로세우거나 선전하기 위해 기념비적 구조를 세웁니다. 그 구조물 앞과 뒤, 혹은 곁에 선 ‘주체’의 푯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구조물의 ‘기념비성’을 뒤흔듭니다. 우리의 근대화-산업화, 자본화, 도시화-의 표상들이 흔들립니다. 주체의 기념비들 앞에서 푯말 ‘주체’는 주체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온 저 수많은 상들이 표상하는 주체는 무엇이었을까요?


․ 산에서, 집에서 : 그는 푯말 ‘주체’를 내려놓고 산으로 갑니다. 집으로 갑니다. 솔잎으로 얼음으로 긴 줄로 ‘주체’를 써 봅니다. 흩어지거나 녹아 사라지거나, 초점을 상실하는 ‘주체’는 우리가 왜 다시 주체를 상상해야 하는지를 되묻습니다.


․ 유라시아 : 주체는 새로운 개념틀을 창조함으로서 시대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개념틀로 유라시아체계를 제출합니다. 그가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 그는 수년 동안 ‘주체’의 푯말을 들고 이곳저곳,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의 주제별 얼개를 따라 두 개의 공간에 나뉘어 전시됩니다.
․ ‘주체’의 실체와 환영을 개념미술/설치미술로 풀어낸 사진들 중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에는 전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만을 엄선하여 아카이브 공간에 배치합니다.
․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에는 ‘주체’의 푯말을 들고 파리의 개선문에서 러시아를 횡단하여 일본 야스쿠니신사에서 평양과 인천의 맥아더동상까지 주체의 의미를 쫓은 사진들을 비롯해 ‘주체’의 맥락을 구성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전시합니다.
 




백두산 김일성_이시우


서울 이승만_이시우
 


파리 개선문_이시우


평양 개선문_이시우


서울 독립문_이시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_이시우


파주 인민군 중공군 묘지_이시우


강     화_이시우


강    화_이시우  


강  화_이시우


강 화_이시우


강화_이시우
 
 
 
작가의 작업노트 보기
 
이시우 홈페이지
첨부파일
작성일자 2018-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