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여쪽 수사 기록 발견, 기적이었다"
[인터뷰]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 무죄 선고... 전 진실위 조사관 전명혁 박사
11.01.14 22:15l최종 업데이트 11.01.15 10:47l
김성수(wadans)
무죄판결에 기뻐하는 유가족들
▲ 무죄판결에 기뻐하는 유가족들
ⓒ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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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중정)는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전략당)'을 '간첩사건'으로 발표한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재혁씨 등 13명을 3일에서 50여 일 동안 구금,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등 반인륜적 고문을 자행하고 '국가 전복을 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이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권재혁씨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69년 11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무기형을 선고받은 이일재씨는 20년 징역을 살았고 석방된 후 후유증으로 병원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10년을 선고받은 이강복씨는 1971년 암으로 옥중 사망했다. 이형락씨는 1978년 만기출소 후 지난 1985년 자살한다. 20여 년 감옥생활 후 석방된 김병권씨는 2005년 뇌졸중 투병 생활 중 비참하게 운명한다. 이들은 모두 지난 독재정권시대 저주받은 비극의 희생자들이 된 것이다.
이로부터 41년이 넘은 지난 2009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는 1968년 중앙정보부가 권재혁씨 등 13명을 강제 연행하고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힌다.(관련기사)
딩시 진실위는 "검찰이 중앙정보부의 불법수사 및 인권침해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무리하게 기소했고, 법원은 위법한 수사를 한 수사기관의 진술조서 등에만 의존해 중형을 선고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조처 등을 국가에 권고했다. 또한 진실위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해 사형 등의 중형을 선고한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국가는 이들의 명예회복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물론 이 사건은 박정희 군부독재시절 공안분위기를 형성하고자 정권이 조작한 사건이다. 그 결과로 그 후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40여 년을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지난 1월 14일 이 조작사건'에 연루된 이일재, 고 이강복, 고 이형락, 고 김봉규씨 등 4명이 법원으로 부터 4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동안 진실위에서 이 사건의 조사를 책임졌던 전명혁 박사는 "오늘의 무죄판결이 진실의 승리이지만 아직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고 권재혁 선생님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전명혁 박사와 지난 14일 이메일로 나눈 인터뷰전문이다.
"진보적 경제학자 미발표 논문이 전위정당 강령으로 둔갑"
권재혁 선생
▲ 권재혁 선생
ⓒ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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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오전 10시 재심 최종공판에서 무죄판결이 났는데 먼저 이 사건과 "통혁당지하간첩단사건"(통혁당)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 사건의 발단은 중정에서 통혁당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권재혁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중정에서도 전략당이 통혁당과 무관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분리하여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그런데 중정은 검찰에 송치할 때 이미 전략당이 통혁당과 무관함을 알고 있음에도 언론에 통혁당의 하부조직처럼 발표했다. 이것은 잘못된 피의사실을 사전에 공표한 것으로 형법 제126조를 위반한 것이다."
- 중정이 고문을 통해 이 시기에 이 사건을 조작하게 된 배경은?
"중정이 이 사건을 조작해 발표한 1968년 8월은 1968년 북한의 무장부대 32명이 청와대공격을 시도한 '1.21사태'와 1월 23일 푸에블로호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남북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9년 3선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위해 마침내 '전략당사건'을 통혁당사건에 포함시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명칭도 결국 철저한 허구인가?
"상식적으로도 전술보다 높은 수준의 '전략'과 전위정당으로서의 '당'이란 표현을 결합한 '전략당'이란 명칭 자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리고 주모자로 사형당한 권재혁 선생 조차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이름을 "남산(중정)에서 처음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권재혁 선생은 당시 항소 이유서에서 중정 수사관 장모씨가 자신의 미발표 원고 '조선혁명전략론'과 학술카드 메모 "오늘의 정치정세와 우리들의 혁명과업"을 보고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명칭을 허위로 조작하였다고 강변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박점출의 항소 이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박점출은 1968년 8월 10일 중정에서 취조를 받을 때에는 '사회주의혁명(전위)당'으로 신문조서를 작성하였는데 갑자기 수사관들이 회의에 갔다 오더니 당명을 '남조선해방전략당' 으로 고치기로 실장실에서 결정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박점출의 피의자신문조서를 통해 실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남조선해방전략당 강령의 실체는 무엇인가?
"1969년 9월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당강령'으로 채택되었다는 '3대혁명의 특징'과 '5대모순'이 언급되었는데 이것은 권재혁 선생의 미발표 논문인 '조선혁명전략론'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작성 시기는 1968년 1월에서 3월경 사이였기 때문에 '남조선해방전략당'이 창당되었다는 1967년 1월 1일에 이 강령이 채택되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재혁이란 진보적 경제학자의 미발표 학술논문을 전위정당의 강령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 주모자로 알려진 고 권재혁씨는 아직 무죄판결을 받지 못했고 현재 대법원의 재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왜 권재혁씨는 이번에 무죄판결을 받지 못했다고 보나?
"애초에 권재혁 선생의 유가족들도 고등법원에 재심 신청을 하였는데, 이일재 선생을 비롯한 다른 분들은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되었다. 권재혁 선생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스스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사형선고를 내려 형을 확정하였기 때문에 권재혁 선생에 대한 재심을 고등법원에서 대법원에 신청하게 하였던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권재혁 선생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여겨진다."
"1만여쪽 수사 기록 발견, 기적이었다"
희생자 이일재 선생
▲ 희생자 이일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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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 조사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록과의 싸움이었다. 2007년 5월에 내가 진실위에 들어가서 처음 맡았던 사건이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이었다. 내가 맡기 전에 이미 두 명의 조사관이 이 사건을 담당했고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인데 사건의 '수사 및 공판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기록원, 국정원, 서울지검 등에 기록요청공문을 수차례 보냈는데도 사건의 수사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1970년 이전의 수사기록은 대부분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가기록원에서도 없다고 하고,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수사기록을 은폐한 것이 아닌가 회의도 했었다.
그래서 직접 서울지검의 지하 서고에 들어가서 수사기록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권재혁 선생의 장남인 권병덕 선생과 몇 차례 만나면서 권병덕 선생에게 서울지검에 민원신청을 해볼 것을 권유한 바 있는데 얼마 후에 서울지검에서 기록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1만여 쪽의 수사 및 공판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기적이었다. 이 사건의 표지에 1970년대 초 김낙중 선생 사건의 표지가 있어 기록담당자도 몰랐던 것이었다. 과거 공안사건의 상당수가 조작되었다고 했을 때, 그 조작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수사 및 공판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기록을 발견하고 나서는 이 사건의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왼쪽은 이형락 선생의 미망인 한기명 선생님, 오른쪽은 전명혁 박사
▲ 왼쪽은 이형락 선생의 미망인 한기명 선생님, 오른쪽은 전명혁 박사
ⓒ 전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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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년간 진실위 조사활동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은 감회가 있다면?
"오늘 아침 한겨레 신문에 1981년 재일동포간첩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이헌치 선생이 1월 1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기사를 보았다. 2010년 3월 진실위를 그만둘 때까지 2년 10개월간 위원회에서 여러 사건을 담당하였는데 그만두기 1년간은 재일교포간첩사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TF팀이 만들어져서 내가 그 책임을 맡았다.
그런데 위원장이 안병욱 위원장에서 이영조 위원장으로 바뀌면서 TF팀이 해체되고 말았다. 나는 위원회에 재직할 때까지 180여 쪽에 달하는 재일교포사건(재일한국인양심수동우회관련자 12명)에 대한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런데 이후 재일교포간첩사건을 모두 개별 사건으로 분리하여 12사건 가운데 이철, 김종태, 김원중, 이동석, 박영식, 허철중 사건에 대해서는 조사개시 자체를 기각하고 김태홍, 이헌치사건에 대해서는 조사중지를 허경조, 강종헌, 박박, 조일지 등 사건에 대해서는 일부 진실규명을 결정하였다.
진실위에서 조사 중지된 재일교포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는 것이 상징하듯이 위원회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사건을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하였는지가 여실히 증명된 것이다. 앞으로도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신 재일동포 여러 선생님들의 진실이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전명혁 박사
현 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 및 역사학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한국근현대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 역임
성공회대 연구교수 및 민주자료관 부관장 역임
저서 : 1920년대 한국사회주의운동연구
공저 : 함께보는한국근현대사,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한국민중사의 새로운모색과 역사쓰기
논문 : 1920년 코민테른 2차대회시기 박진순의 민족 식민지문제 인식,
산수 이종률의 민족해방운동과 민족통일전선론 등 다수
또한 내가 담당했던 사건 가운데 '황태성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어서 진실위가 의지만 있었으면 진실규명을 할 수 있는 증거자료도 많았고 2000년도에 MBC의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에서도 방영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영조 위원장 체제의 진실위는 이 사건을 재심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사개시 자체를 각하했다. 앞으로 이 사건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걸릴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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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성수, #통혁당, #진실화해, #전명혁, #남조선해방전략당
기사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9721&PAGE_CD=&BLCK_NO=&CMPT_CD=A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