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 [보도]"제1회 한경희 통일평화상" 시행공고
2016 2월 12 - 18:04 peace518

1. 귀하(또한 귀 단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은 올해 2016년부터 매 해 ‘한경희 통일평화상’을 시상하기로 하였습니다.

3. 고(故) 한경희 여사는 1982년 안기부가 조작한, 그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송씨 일가 간첩단’의 총책이었습니다. 이후 2009년, 송씨 일가 간첩사건 관련자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사건 당시 이미 사망하여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던 한경희 여사의 명예 회복의 길은 찾을 수 없습니다.

4. 그리하여 고 한경희 여사의 차남 송기수와 그 가족들은 분단으로 고통받은 이 땅의 수많은 ‘한경희’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한 많은 삶을 기리고자 이 상을 제정하기로 하고, 그 운영을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에 맡겨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 별첨
1. 한경희 통일평화상의 취지문
2. 고(故) 한경희 여사는 누구인가
3. 송씨 일가 간첩단사건이란
 
별첨 1. ‘한경희 통일평화상’의 취지문

우리는 오늘 분단의 비극을 온 몸으로 떠안아야 했고 죽은 뒤 간첩의 누명까지 쓰게 된 한 여인을 기리는 작은 몸짓을 시작하려 한다. 고 한경희 여사. 살아서는 월북자의 아내로 네 자식을 홀로 키워야 했고, 죽어서는 간첩단 두목의 누명을 쓰고, 자식 셋도 간첩이 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여인을 이제 우리는 광장으로 불러낸다. 간첩으로 몰렸던 자식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건만, 죽어서 누명을 썼기에 재심조차 받을 길 없어 영원히 간첩단의 여두목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 여인 한경희. 골수염을 달고 살아 성인이 되어서도 다리를 저는 막내아들 송기수를 끔찍이 걱정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 한경희는 1977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기적처럼 아들의 병을 가져가 송기수의 병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막내아들의 병은 가져갔지만 자식들을 덮칠 더 큰 불행을 어머니는 막을 수 없었다. 1982년 9월 안기부는 서울-충북을 거점으로 하는 초대형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는데, 고 한경희 여사의 네 자녀 중 위로 셋이 간첩이 되었고, 5년 전 작고한 한경희 여사는 간첩단의 여두목으로 지목된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송씨 일가 간첩사건 관련자들은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진실규명을 거쳐 2009년 8월 28일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 한경희 여사의 세 자식은 다행히 27년 만에 재심에서 누명이 벗겨졌지만, 사건 당시인 1982년 이미 사망하여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던 한경희 여사에게는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의 길조차 막혀있다. 이 불행한 여인의 명예는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한경희 여사의 막내아들로 간첩 누명을 썼던 송기수와 그의 딸 송유리, 아들 송현석은, 분단으로 인해 살아서는 뼛속까지 고통 받고, 죽어서는 간첩단의 총책이라는 터무니없는 누명까지 쓴 고 한경희 여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분의 한 많은 삶을 기리고자 한경희 통일평화상을 제정하였다. 또한 기금은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사건의 진실규명에 노력한 한홍구 교수가 관계하는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과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에 기부하여 한경희 통일평화상을 운영토록 하였다.

분단으로 고통 받은 어머니들이 어디 고(故) 한경희 여사뿐이랴. 분단은 이 땅에 크고 작은 무수히 많은 한경희들을 낳았다. ‘여간첩’ 한경희의 이름으로 주는 이 상은 분단으로 고통 받은 수많은 어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여간첩’ 한경희의 이름으로 주는 이 상은 모진 고문에 의해 자신을,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해야 했던 수많은 ‘조작된 간첩’들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다. ‘여간첩’ 한경희의 이름으로 주는 이 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여 간첩으로 만든 자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애국자라고 행세하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별첨 2. 고(故) 한경희 여사는 누구인가

1919년 OO월 OO일 충북 청주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고 한경희 여사는 청주여고와 공주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로 일하며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다. 성악에 남다른 소질을 가진 고(故) 한경희 여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 무사시노 음악학교(武臧野音樂學校)에 유학할 무렵, 니혼대학(日本大學) 법학과에 유학 중이던 동향 출신 한 살 연하 송창섭을 만나 사랑에 빠져 1941년 송창섭과 고향 청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분단과 전쟁은 식민지 시기 도쿄에서 성악을 공부할 정도로 유복했던 신여성 한경희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수많은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송창섭은 사회주의에 빠져들었고, 전쟁 중 북으로 떠나버렸다. 고 한경희 여사는 이제 월북자의 아내로 고단한 생을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식 넷을 가진 30대 초반의 과부 아닌 과부로서, 월북자 가족이라는 딱지에다 본인 또한 전쟁 기간 부역혐의로 조사받은 전력만 남게 된 것이다. 당시 여성으로는 보기 드문 인텔리였으나, 전쟁 후 그가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방 마담이나 암달라상 같은 일밖에는 없었다. 월북했던 남편 송창섭은 1960년 4월 혁명 후 절친한 친구 김영선이 민주당 정권의 장관이 되자 그를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을 타진할 목적으로 남파되었는데, 이 때 아내와 당시 고등학생이던 큰 딸 송기복을 잠깐 만나고 갔다. 김영선은 송창섭이 다녀간 사실을 당국에 신고했다. 당국은 송창섭이 부인 등 가족을 만났을 것으로 추측하고 고 한경희 여사를 여러 차례 연행하여 신문했으나, 남편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 큰 곤욕을 치를 것이 두려워 그때마다 완강히 남편을 만난 적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이 비밀을 간직한 채 고 한경희 여사는 1977년 음력 2월 22일 고혈압으로 큰 딸 송기복의 집에서 갑자기 숨을 거두고 말았다. 평소 혈압이 높아 고생하긴 했지만, 조금 전까지 엘리트 공군중령인 사위의 공군대학 졸업논문을 걱정하던 그가 57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갑자기 마감한 것이다.

고 한경희 여사의 고난은 그의 별세 후 오히려 증폭되었다. 1982년 안기부는 서울-충북을 거점으로 하는 고정간첩단 29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간첩단의 총책은 이미 5년 전 세상을 떠난 고 한경희 여사였으며, 큰 딸 송기복, 큰 아들 송기홍, 작은 아들 송기수 등 자식 넷 중 셋도 간첩이라는 어마어마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자란 송기복, 송기홍, 송기수는 전두환 군사정권에 잡혀가 조작간첩 역사에서도 기록적인 최장 4개월간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고문은, 이들 남매를 홀로 고생하며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한많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마저 간첩으로 만든 것이다.

별첨 3. 송씨 일가 간첩단사건이란?

10ㆍ26사건으로 권력 내부에서 위상이 실추된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름을 바꾸고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여러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82년 9월 10일 발표된 서울-충북 거점 고정간첩단 사건(송씨 일가 간첩단사건)이다. 안기부는 ‘한경희는 정계, 송지섭은 군사, 송기준은 산업계, 송기섭은 공무원 층, 한광수ㆍ송기복은 학원 등에 침투케 하여 국가기밀을 수집 보고하는 등 25년간 고정간첩단으로 장기 암약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공소장 어디에도 이런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1심에서 이들은, 기소 내용은 모두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1심재판부는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사형 2명 등 중형을 선고했고, 2심은 사형을 징역 25년으로 감경했으나 여전히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유일한 증거인 자백이 불법구금에 의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은 '상급심은 하급심을 기속한다’는 법원조직법 원칙을 무시하고 이례적으로 하급심이 상급심을 치받아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다시 무죄를 선고했지만 서울고법의 재파기환송심은 또다시 유죄를 선고했고, 세 번째 대법원에서 열린 재재파기환송심에서 유죄로 형이 확정되었다.

공안사건으로는 드물게 총 7차례의 재판이 진행되어 '핑퐁재판’으로 많은 논란을 빚었으며, 이 사건은 2007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에서 조작된 것으로 규명되었고,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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