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기억과 연대
작성일자 2018-08-16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기억과 연대

지난 3월 10일 견지동 평화박물관 평화공간(SPACE*PEACE)에서 송현숙 화백 작품『인천방직 사건』(1979년 作/ 서경식 교수 위탁)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이 행사는 서경식 교수가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인 송현숙 화백 작품 1점(동일방직 사건을 주제로 그린 그림)을 평화박물관에 위탁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셔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작품의 전달자인 서경식 교수(일본 도쿄 경제대학)와 동일방직 해고노동자인 심현례, 전창순, 최명희, 정명자, 최연봉, 김인숙, 이총각님, 한국노동운동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조화순 목사, 최현덕 박사(獨 코레아협의회 한국학연구센터 소장)와 평화박물관 회원등 동일방직 사건을 아파하고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특히 독일에 계시는 송현숙 작가는 작품 전달식에 참석하지 못함을 매우 아쉬워하시면서 30년전 동일방직 사건을 함께 아파하며 연대 투쟁을 벌였던 재독 한국여성모임의 ‘활동 책자’와 기록물들을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작품 전달식 행사 후기 및 사진, 송현숙 화백이 보내온 자료를 소개합니다. - 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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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쌓인 창문 먼지 틈 사이로 따스한 봄 햇살이 비치던 지난 3월 초, 견지동 평화공간(SPACE*PEACE)은 지극히 평범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낯선 여성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그들은 오랜 간만의 만남에 서로 반가운 눈짓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으며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동료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30년 전 ‘송현숙’ 작가가 그린 「인천방직」그림의 주인공들이다. 머리 끈 질끈 묶고 있는 이들이 한 무리의 군상들과 대치하고 있는 그림 속의 한 장면은 언뜻 보기엔 그리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송현숙 작가의 그림은 30년 전 그녀들 몸과 가슴에 새겨진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고, 그 기억들이 그림 속에 다시 살아나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듯 하다.



21살의 나이로 독일에서 이주 여성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송현숙 작가가 타인과 소통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언어가 ‘그림’ 이었다는 사실들을,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한편의 방송 다큐멘터리와 독일에서 보내온 그녀의 작품 도록 등을 보면서 새로이 알게 되었다. 낯선 땅에서 오직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질적인 문화, 차별과 소외 속에서 일상을 살던 송현숙 작가가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마저도 짓밟히고 있는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아픔에 붓이 아닌 가슴으로 함께 저항했음을 느끼게 된다. 30년이 지나서야 그 작품은 독일이 아닌 서울 종로의 한 전시 공간에서 우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최근 나에게 다양한 예술작품을 테마로 ‘이산’자의 존재와 삶을 고민하게 해 주신 서경식 선생님. 송현숙 작가의 작품은 선생님이 일본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평화박물관에 주고 가신 마지막 선물이다. 서경식 선생님은 단지 그림 한 점을 주고 가신 게 아니라 부조리한 파괴와 폭력의 기억들을 일깨워 주셨다.



행사가 끝난 후, 늦은 밤 집에 가는 내내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웬지 모를 가슴 먹먹함이 나를 짓눌렀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버린 동일방직 여성 해고노동자분들, ‘디아스포라’ 로서의 경험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소통하고자 한 송현숙 작가와 서경식 선생님. 그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의파’라는 생각을 되 뇌이면서 말이다.

 

이수효(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처장)



 [인천방직 사건] 송현숙 화백 作 1979年






  작품 위탁자 서경식 교수 인사말씀




 작품 설명에 귀기울이는 참석자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 투쟁의 기억과 연대 - 조화순 목자




 행사에 참석하신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




 드디어 위탁협정서 체결!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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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숙 화백이 독일에서 보낸 <동일방직 사건> 관련 시와 자료



시 1>

 


다시 동일 방직 쪼간이 딸들에게



 

고 은





우리 쪼깐이 딸들아

다시 너희들에게 어줍잖은 노래 바친다.

아니 두 번 세 번이 아니라

백번이라도 너희들에게

백번 골백번 싸우는 너희들에게 노래 바쳐야 한다



우리 쪼깐이 딸들아

이제 너희들이 스승이다. 지도자다. 선각자다.

이제 함석헌 선생이, 김수환 추기경이 지도자가 아니라,

너희들이 이 겨레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아니냐

나도 또한 너희들을 따라

부끄러우며

힘나며

불붙는 옳은 분노 터뜨리며

너희들의 길을 따른다.



너희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똥을 먹었다.

세계에서 사장 보배로운 똥으로 귀가 막혔다.

불한당의 똥 세례가

요단강 세례보다 거룩한 세례였다.

우리 쪼깐이 딸들아

똥을 이긴 딸들아.



이제 너희들은 동일방직 일꾼이 아니다.

풀빵 몇 개 라면 신세

천만번 그릇된 체불노임에

못된 기업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불쌍한

처녀들이 아니다.

못 배운 처녀, 못난 처녀, 지지리 못난 처녀 아니다.

마구잡이 짓밟히는 어리석은 처녀들이 아니다.

너희들은 겨레다.

너희들은 세상을 이기는 빛나는 겨레다.



우리가 어찌 빨갱이냐 외치며 보름동안이나

지하실에서, 사무실에서, 골방에서

명동성당에서 쓰러져 단식한 너희들은

빨갱이도 그 누구도 아닌 우리 겨레다.

우리 겨레임을 빈 배로 해골이 되며 밝혀 주었다.

역사 여기에 있다.

사랑의 아픔 여기에 있다.

우리 겨레의 아프고 아픈 뜻 여기에 있다.

우리 겨레 쪼깐이 딸들아

너희들의 어머니 조화순 목사와

너희들의 목숨 건 역사 여기에 있다.



우리 쪼깐이 딸들아

내가 인천산업선교에 가서

너희들의 맥박 재어 보고

너희들의 머리 쓰다듬어 줄 때

아니 너희들이 내 맥박 재주었다.

너희들이 쓰러진 채 내 약한 마음 강하게 만들었다.

너희들한테 배웠다.

참다운 것은 강하다는 진리를 거기서 배웠다.



우리 쪼깐이, 봄동산 진달래 같은 쪼깐이,

짙푸른 바다 벼랑 동백꽃 같은 쪼깐이

너희들한테 나는 민주주의 배우고

값비싼 자유 배운다.

나에게 통일 없으나,

너희들에게 통일 있어 나도 또한 통일전선에 뛰어든다.



우리 쪼깐이 딸들아

이제 너희들은 울지 말아라

그날밤 너희를 두고 헤어질 때 울 듯이 울지 말아라.

억울가 부르고, 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노래 불러라.

그 누구의 똥도 그 누구의 폭력도 야만도

너희들의 승리 앞에서 엎드릴 날 오늘이다. 내일이다.

그날이 온다.

우리 딸들아, 우리 딸들아.





시 2>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정희성





어머니

기억하세요

그 슬픔의 사슴 이야기를

그 때 저는 일곱 살이었어요

처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창경원을 구경하던 그날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우리도 서울서 살자고 떼를 쓰다 맞던 일도

어머니

저는 다 알아요

어머니의 거친 손을

소꼬없이 저는 울기만 했고

그리고 모든 걸 잊었지요

곰의 얼굴도

가엾은 사슴의 얼굴도

다 잊었지요

그리고 어머니도 저도

농사일에 바빠 다 잊었지요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기억하세요

그때 저는 일곱이었어요

어머니

모든 것이 달라졌네요

저 새도

저 원숭이도

새끼를 낳다 죽었다는 곰도

우리가 보던 것이 아니예요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제 나이 벌써 19

어머니가 돌아 가신 뒤

우리는 고향을 떠났지요.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에 취하셨고

그 정신에도 오빠를 가르친다고

논 밭을 다 팔아 날리고

어머니

그런데 오빠는 여기 없어요

월남이라는 나라에서 죽었대요

오빠가 왜 월남에서 죽어야 했는지

나는 몰라요

“순이야 오빠 나갈때 까지만

아버님 모시고 고생하거라“ 하시던

그 편지가 마지막일지도

저는 몰랐어요

제가 왜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야 했는지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나는 돌을 먹지 않아요” 하던 그 사슴은

어머니

저는 일곱이었어요

기억하세요. 어머니

그 뿔달린 꽃사슴을

누가 저 뿔을 잘랐을까 하고 저는 물었지요

그때 전 일곱이었어요

지금은 너무도 변했어요

사슴도 곰도 옛날 것은 아니고

벌써 저는 열 아홉인 걸요

이 손으로는 비단을 짜는 걸요

그러나 어머니

제 손을 보면

지난날 어머님의 거친손이 생각나요

논바닥처럼 갈라진 어머니의 손이

왜 왈칵 눈물이 솟는지

일 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노엽고 분했어요

오늘 경찰서에서 풀려 나온 후

실컷 울고 싶어서 여기에 왔어요

저 짐승들은

제 마음을 알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우리는 일하는 만큼 먹을 것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지요

공장측과 싸웠어요

몇끼니 몇끼니를 굶으면서도

쓰러지면서

어머니

그리고 우리는 당했어요

이거나 먹으라고

배 고프면

이거나 먹으라고

그들은 우리에게 똥물을 퍼 부었어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아실 거예요

함께 일하던 순이를

산 너머 먹골에 살던 그 애가

미쳐 버렸어요

모든 것이 것이 많이 달라졌으니

어머니

누가 그 사슴의 뿔을 잘라 갔을까요



: 이 시는 1978/1979년에 여성모임의 한 회원이 <민족문화의 밤>의 카세트 테이프 시 낭독을 감명 깊게 들으면서 메모했다가 다시 쓴 것입니다. 그래서 원본과 차이가 있겠지만 내용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이 충분히 전달된다고 판단하여 보냅니다. - 송현숙



당시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연대의 글>

 


결의문





우리는 서구에 살고 있는 한국여성들로 기술요원, 교직원, 예술인, 의사, 주부, 그리고 학생으로 합쳐진 모임으로서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과 현실을 관찰하고 학습해 오던 3만원 이하의 기아 임금에 허덕이는 700만 근로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이나 대우는 일제하에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일제 식민지하의 한국노동자들은 그 당시 하루평균 12시간 이상 노동을 했어야만 했고, 저 임금 노동자로서 일본 노동자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으로 혹독한 생활소에 시달렸으며 또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민족적 차별대우로 멸시를 받고 비참하게 살았다는 것이 역사속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있었다고 하겠지만 오늘날 일인당 국민 총 생산량이 1천불을 넘는다고 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실생활은 과연 어떠합니까?

노동자들은 국가 주역을 담당하며, 국가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있지만 기업주들의 횡포에 의하여 인권과 생존권을 유린당하고 인간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즉 노동 3권이 법률로 보장되고 있고, 그 권리를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도 제일 많은 노동시간을 한국의 노동자들이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곳 신문 (1.4 1978.S.Z)에 보도되었던 「동일방직」사건은 현재 노동자들이 실 상태 외에도 기업주와 노조가 공동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동일방직」근로여성들이(21.2.78) 당했던 똥물사태의 만행은 순수한 근로자들의 인권과 정당한 권리를 여지없이 짓밟은 기업주들의 허다한 관례 중 하나의 예 일 것입니다.



또한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씨의 분신자살은 노동자들의 처참한 상태를 완전히 폭로한 것으로 그의 죽음을 소수 부유층에게는 하나의 경종이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근로자들에게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성화로 된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독일 각지에서 비참한 한국 근로여성들의 실태를 여성회를 통하여 다루었고, 독일에 여론화 시켰으며 투쟁하는 국내 근로여성들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하여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요구

1. 노동조합은 근로인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 노조로 돌아가라.

2. 기업주는 하루 8시간제 노동시간을 지키며 근로인의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라.

3. 정부는 근로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라.

4. 남,녀 차별에 의해 여성근로자들을 저임금의 기아로 몰아 넣지 말라.



1978년 10월 재독한국여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