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목 진정한 명예회복은...
작성일자 2018-08-16

진정한 명예회복은...

지난 3월 10일(월) 있었던 「인천방직사건」(송현숙作, 1979) 전달식(동경경제대학교 서경식 교수 위탁)에서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여러분의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 평화박물관





주진우(사회자): 말씀으로는 마지막 순서가 될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이름이 아프고도 아마도 굉장히 자랑, 자부스러울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동일방직해고노동자’라는 이름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정명자: 저는 여기서 얘기하면 제가 제일 막내일 거예요. 저는 노동조합에서 해고당할 때 조합간부도 아니었고 들어가자마자, 사회 첫발을 동일방직에서 내딛었는데 주변 상황에 의해서 그때 처음 사업장에서 해고당한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원하는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 그 삶이요, 저한테 밑거름이 되었고요. 지금은 오늘 일을 하고 왔는데요, 취약계층 취업을 알선해주는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우리가 해고는 당했지만 그것이 우리 삶에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도 우리 삶을 이렇게 이끌어 주는 이정표가 된다고 생각했을 때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그런 일이지만 저희한테는 또한 생명과 같은 그런 일이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오늘 또 이 자리에 저는 늦게 왔는데 마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이름은 정명자 입니다.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이총각: 예, 저는 이총각입니다. 오늘 여기 함께 하진 못하셨지만 송선생님하고 또 우리 (서경식) 선생님께 감사드리고요. 아까 그 목사님이 아주 한참 저희들 얘기를 많이 하셨고 또 아주 저희들로 인해서 이제 목사님이 많이 배우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제 목사님을 만난지가 정말 음… 40… 66년도에 제가 목사님을 처음 뵜어요. 제가 동일방직에 들어갔는데 목사님 그때 30대셨죠. (웃음) 일주일에 한번씩 오셔가지고 이렇게 교양… 이제 나눠주시면서 그때 만나서 4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목사님하고 함께 있다라는게 저한테 참 큰 버팀목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또 하나는 이제 아까 목사님 말씀하신대로 처음서부터 저희들을 그렇게 강하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했고 그냥 정말 단순무식해가지고 이거 해야된다, 하자 하면 대가리 처박고 밀어붙이는 걸로 이렇게해서 우리가 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을 알았고 또 노동조합을 알기 전에는 나의 가난이 나의 팔자고 부모탓이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았는데 노동조합을 알면서 ‘아… 이 가난은 나의 운명도 부모님 탓도 아니고 상대적인 가난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이제 깨닫게 되면서 노동조합을 이제, ‘노동조합은 생명과도 같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제가 40년동안에 정말 그런 그 크게 얻은 거는 그 당시에는 너무너무 탄압과 핍박속에서 도망가고 싶고 뭐 포기하고 싶고 저희들도 하고 그랬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 내가 생각을 하면은 얼마나 소중한 그런 시간이었던가, 그래서 그 사건을 통해서 아까 우리 정명자씨가 얘기를 했지만 삶의 이정표가 됐고 또 누구한테도 구애됨없는 자유로운 삶과 또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되는 아주 소중한 삶을 그 동일방직 투쟁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금까지 현장을 이탈하지 않고 정말 현장이 아까 우리 목사님 소중하다는 것 말씀하셨는데 정말 소중하다고 저도 뼈저리게 느낍니다. 앞으로도 제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러분들하고 함께 현장에서 힘을 같이 나누면서 싸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심현례: 심현례입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목사님 30년만에 뵙습니다. 결혼하고 저는 처음으로 이제 이렇게 이 자리에 와서 뵈니까 너무 감개무량하고 이 상영 바라보면서 아까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우리들은 정의파다>(여성영상집단 ‘움’제작, 이혜란 감독, 2006) 상영이 작품 전달식 전에 있었습니다: 편집자) 그리고 이제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하고 나온 후에 저는 그냥 결혼을 했어요, 5월달에. 그래서 그 후로 많이 고생들 하신 걸 몰랐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얼마전에야 여기 우리 김인숙씨 언니를 만나서 그런 자초지종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보면서 너무 죄송스런 마음만 들고 그랬어요. 30년전 일이지만은 참 그 짧은 시간동안, 지금 2~3시간 동안에 30년의 세월을 참 더듬으면서 그때 당시 목사님 뵐 때가 40대 초반이었어요. 저는. 그때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주셨던 모든 말씀들이 저는 지금까지도 삶의 푯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 목사님 오신다고 그래가지고 필히 다른 약속 다 제치고 목사님 뵐라고 오늘 왔어요. 그리고 또 오늘 이렇게 이 자리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이렇게 우리 함께 이총각 우리 언니랑 우리 모든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정말 이 자리가 정말 결혼생활에 있어 30년동안 살아왔지만 정말 최고에 감개무량한 그런 시간인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최연봉: 최연봉입니다. 저는 이 그림 전달식이 있다는 행사 소식을 들으면서요, 굉장히 궁금했어요. ‘어떤 그림일까? 도대체 어떤 그림일까?’ 생각을 하면서 메일로 온 그림을 보면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좌중 웃음) 지금 가만히 쳐다보니까 ‘아니야! 저거 내 손이 번쩍 올라간 것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뜯어보니까 살아있는 우리가 정말 아우성치던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을 제가 잘 볼 줄 몰라서… 그림을 보시는 분들은 정말 이렇게 좋은 그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요. 제가 우리들이 지금까지 동일방직에 복직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희만의 싸움이 아니었어요, 동일방직싸움은. 계속 함께 했던 분,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분들은 동일방직에 대한 어떠한 하나의 추억거리를 다 가지고 계실 거예요. 동일방직 때문에 같이 싸움을 하다가 잡혀갔다던가 매를 맞았다던가, 뭐 이런 과정들을 다 함께 겪으셨고 또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힘이 굉장히 되어서 지금까지 버티고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30년이 지난 후에도 여러분들이 동일방직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를 드리고요. 또 그 ‘달콤쌈싸름한 음식’ 기사를 봤어요. (서경식 교수의 칼럼, <한국음식의 달콤쌉싸름한 추억>(한겨레신문, 2008.03.01)) (좌중 웃음) 그런데 이런 그림을 이렇게 저희들을 보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그 앞으로도 저희가 복직싸움을 계속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 너무 질기게 싸움을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한데요. 아직도 복직… 동일방직이 그 자리에 있고 또 우리의 명예회복이라는 부분들이 정말 명예회복이라는 공문서 하나 이걸로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명예회복은 돈도 아니고 그런 공문서도 아니에요. 동일방직에 들어가서 하루를 일하고 눈이 침침해서 실을 못 이어서 하루만에 쫓겨난다 하더라도 다시 내가, 내가 사직서를 쓰고 나오는 것. 이것이 정말 진정한 명예회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법정으로도 싸움을 하려고 하고요, 그런 준비를 하려고 하고는 있어요. 그리고 30년 기념식을 말은 하고 있었어요. 제가 한 번 2년 전엔가 임종문(?) 교수님을 오랜만에 뵈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많이 연로하셨더라고요. 우리 어렸을 때 젊은 모습을 보다가 오랜만에 만나서 보니까 가슴이 굉장히 제가 저렸어요. 그래서 이런 우리 때문에 고생하신 대책위원분들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이 아프시기도 하고, 돌아가시기도 하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을 모시고 정말 이렇게 복직이 되어서 현장에 돌아가서 동일방직 마당에서 그분들과 함께 어깨춤을 추면서 잔치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30년이 지났는데 안 이루어져서 조촐한 식사자리라도 만들어서 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함께 하고 있었어요. 언제… 조만간에 그 자리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오세요.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최명희: 최명희입니다. 회사는 오래 다녔지만 날짜와 햇수, 년수로는 9년 6개월 3일 다녔어요. 그리고 해고됐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에도 뭐 주는대로 받지 뭐 이런 거 잘 몰랐어요. 그런데 또 산업선교 알고 또 교육을 통해서 또 노동운동을 통해서 많은 삶과 경험 그리고 뭐 어떤… 지금에 와서는 어떤 뭐 가난속에라도 어떤 일을 해서라도 모든지 다 이겨낼 수 있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 남은 거는 복직. 앞에서 많이 좋은 얘기 많이 했지만 다 같은 동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고요, 싸움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잘 살거예요.

동일방직해고노동자 김인숙: 김인숙입니다. 저도 사실 그 사진, 아니 그림이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한겨레신문을 보고서는 저도 그림에 대해서 잘 몰라가지고 아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강한 힘이… 우리의 그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을 좀 느꼈어요. 그리고 화백님이나 교수님한테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고요. 30주년 조금 아까 최연봉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준비를 할 생각을 했는데 미리 이렇게 만남의 장소를, 이렇게 만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화순 목사: 여기와서 처음 들어. 30주년 한다는 것을. 좋으면서도 약간 서운해. (좌중 웃음) 얘기라도 좀 하지.

동일방직해고노동자 전창순: 전창순입니다. 이렇게 어려분이 우리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렇게 힘을 써주신데 대해서 너무너무 감사드리네요. 그리고 그 때 사건 그 이후로 삶이 어떻게 사는게 똑바로 산다는 것. 단지 그것 때문에 지금도 뭐 어떤 상황을 접해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그 정신으로.
 

 


[동영상]

* 위 내용을 촬영한 것입니다.